3. 세 번째 연애편지
안, 녕!
우리가 ‘여행’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도시’를, 너는 ‘자연’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 대학교 2학년 때 무모하게 떠난 유럽여행에서 나는 스위스라는 나라가 꽤나 지루했다고 이야기를 꺼냈어. 광활한 자연이 물론 첫날엔 좋았지만, 일주일 내내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 속에 있어서 재미가 없었다고 말이야.
나의 말에 너는 무척이나 놀라했어. 너는 알프스를 등반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몽골 초원에서 생활한 너는, 말을 껴안고 말의 심장을 듣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어. 티베트 히말라야 산맥의 정상에 갔을 때 느꼈던 고되지만 행복한 감정을 말했고, 국내 곳곳에 숨어있는 산들을 다니면서 어디 산이 이쁘고 어디 산은 등산을 잘 안 해본 나도 오를 수 있다고 격려하듯 이야기했어. 한라산은 성판악보다는 관음사를 루트로 가야 지루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너의 감정이 아마 이런 ‘다름’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어. 화려하고 늘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나란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조금은 깊이 생각해보았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주었잖아.(그 날 내 손톱에 칠해진 새빨간 매니큐어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가정해봐.)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말들에 따뜻함이 느껴져서 그런 마음은 조심스레 걱정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그건 내가 고양이 집사라서 동물을 좋아하니까 자연도 좋아할 거라 네가 섣부르게 결론을 내린 건 아닐까?)
코로나(COVID-19)가 내 삶에 준 긍정적인 영향은 정말로 한 개도 없지만, 그럼에도 긍정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너와 같이 자연을 많이 느끼러 다녔다는 거야. 천천히 고요하게,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제 역할에 충실한 자연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아니다. 코로나가 준 선물이 실은 어마어마한 것 같아. 네가 나에게 말해준 시의 한 구절처럼 너의 일생이 나에게 왔으니 말이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너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너의 미래가 나에게 와주었기에, 지난 시간들에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이 함께 와주었기에 고마워. 네가 힘들었던 그 시절을 잘 버텨주었기에, 또 내가 아팠던 그 시간들을 잘 지내주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거야.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따사로운 햇살과 거친 풍랑과 낮은 오름과 높은 산들을 두 손 잡고 잘 견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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