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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Feb 10. 2016

교환학생의 의식주

교환학생 일기#8 2016.2.8

익숙한 한국을 떠나서

머나먼 지구 반대편, 덴마크로 온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처음엔 이곳에서 버스 타는 방법, 외국인들의 파란 눈동자, 심지어 기숙사의 문 손잡이 방향까지도 어색했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간다.


매일 점심마다 저녁엔 뭐 해먹을지 고민하지만, 그것 외에 고민할 것이 없다는 게 참 좋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바쁘게 만들었을까. 평소에 말로만 여유를 갖는 삶을 살겠다고만 했지 정작 여유롭게 지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혹은, 억지로 여유를 가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리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팍팍하게 짜인 시간들이 지나고 난 뒤에 바쁘며 힘들어했던 기억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포장되고, 또 하나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사실에 자기 위안을 얻곤 했다. 누구보다 한 학기를 바쁘게 살아온 나를 보는 친구들, 후배들, 어른들의 부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눈빛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매 학기 바쁜 일정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없는 와중에는 나의 감정을 온전하게 다스릴 시간조차 없었다. 다스린다기 보다 온전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시간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내 감정에서 생각을 걷어내고 솔직한 감성만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무엇이 나를 바쁘게 만들었던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시간표에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빈칸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느낀다.

매일매일이 비슷해도 별다른 고민 없이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곳에서 조금 배워간다.



위에서 이미 적었듯이, 이곳에서의 생활은 평소 내가 살던 방식과 다를 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느낀 여유들과 생활하는 방식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찍은 사진들과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교환학생으로 살아보겠다는 큰 결심을 한다면, 나는 그 누군가의 삶에 큰 여유를 선물한 셈이 될 테니까.



1. 내가 살고 있는 곳


왼쪽에 알파벳이 적힌 초록색 상자들이 캠퍼스빌리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학교 안에 위치한 캠퍼스 빌리지이다. '빌리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알록달록한 북유럽의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작은 마을 같은걸 상상했는데, 그냥 컨테이너들이 배치된 공간이었다. 컨테이너라고 해서 딱히 불편한 건 없다. 부엌에는 온갖 식기와 접시들이 구비되어있고, 이미 살던 친구들이 정립해 놓은 질서와 규칙들만 지킨다면 평소에도 청결하게 유지된다. 샤워 부스도 두개 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씻으러 갈 때 누군가 씻고 있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기분탓이겠지...;;)






이곳의 날씨는 보통 흐리지만, 가끔 별을 쏟아내는 하늘을 볼 수 있다.

같은 컨테이너에 사는 친구들과 미디어랩에서 피자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별이 잘 보이길래 방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추운 날씨에 별 사진을 찍느라 고생을 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내가 알던 캠퍼스 빌리지가 맞냐고 물어본다.







날씨는 별로 좋지 않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 끼는 날이 많고, 비도 가끔 오지만 한국에서처럼 큰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를 맞고 다닌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우산을 쓰지 않고 그냥 맞으며 다니고 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이곳에서 우산은 여성스러움의 상징이기 때문에 남자가 우산을 쓰면 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북유럽이라 많이 추울까 봐 전기장판을 가지고 올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혀 필요가 없었다. 기숙사 안은 매우 따듯하고, 창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오히려 조금 건조하다.



2. 식생활


요리라고는 계란 프라이와 라면밖에 할 줄 모르던 나에게는 이곳에서  먹고사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필요한 재료의 양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상해서 버린 재료들도 많고, 복잡한 요리들은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러 가지 요리에 도전하면서 한국에서 맛보지 못한 다양한 맛(?)을 느껴보고 있는 중이다.


외국인 친구들이 처음 선보였던 피자. 마트에 가면 작은 피자 3판에 5천 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게 파는데 토핑이 너무 빈약해서 치즈와 버섯, 베이컨 등을 따로 올려야  먹을만하다. 오븐에서 갓 구워나온 피자는 정말 꿀맛이다.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을 때 멕시코 친구 나탈리가 해준 타코.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았는데도 정말 맛있었다. 소스에 노하우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레시피를 물어봐야겠다. 타코를 먹은 뒤에는 이란에서 온 친구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는데, 너무 맛있길래 너희 나라에서는 케이크를 보통 집에서 만들어 먹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사 먹는다고 대답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한국음식은 언제쯤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웃음과 함께 조만간 해주겠다는 말로 대충 넘어갔지만 근사한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머릿속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조만간 불고기를 시도해서 대접해야겠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먹는 파스타. 위 사진은 처음으로 시도해본 카르보나라이다.

가장 요리하기 간편한 것이 파스타이다. 요리하는 시간도 짧은 편이고, 재료도 얼마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실패할 확률도 가장 적다.  토마토파스타뿐만 아니라 까르보나라, 올리브 파스타 등 아직 시도해야 할 분야가 많이 남았음에도 파스타가 조금씩 질리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파스타인데... 그래도 배고플 때 먹으면 정말 맛있다.




무엇인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이 음식은 '라쟈냐'다. 마트에서 포장된 채로 팔기 때문에 오븐에 넣고 굽기만 하면 되지만 오븐 사용이 미숙하여 속은 잘 안 익고 겉 치즈는 타게 되었다. 반 정도 버렸지만 다시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외국인 친구들과 만들어먹은 피자가 자꾸 생각나서 한국인 친구들과 만들어먹은 피자. 파프리카와 고추, 감자도 썰어 넣으니 맛이 더욱 그럴싸했다.






레베카라는 친구가 인도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이 이 음식 이름이 물어보니 시종일관 'Rice and Chicken :)' 이라고만 대답한다. 레베카는 음식이 너무 짜게 되었다며 우리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맛임에도 정말 맛있었다.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왼쪽은 리조또 오른쪽은 볶음밥. 리조또에 치즈를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해진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무리 새로운 음식들을 많이 접해도 한국의 음식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는  견딜만했지만 앞으로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국 식재료를 주문하였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라면...

빨리 와라...


3. 의 생활


의 생활에 있어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평소에는 여학생들도 화장을 별로 하지 않고, 자신들이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화려하고 하늘하늘 거리는  긴치마를 입고 등장하는 여학생들이 가끔 보인다. 파티를 제대로 즐기라는 배려 차원인지, 옷을 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거나, 맡기는 곳이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곳에 가서 옷을 맡기면 번호표 같은 것을 주고, 다시 그 번호표를 주면 옷을 찾아주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방학이 좋은 이유는

아마도 완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표라는 것을 만들기 전까지, 방학중엔 해야 할 일도,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렇다. 이런 생활의 단점이라면 조금 게을러진다는 것? 이제 완전하게 이곳에 적응해버려서 일찍 눈이 떠지지도 않는다. 영어회화 자료를 인쇄해서 가끔 들여다 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다 보지 못했던 '꽃보다 청춘'을 보며 여행의 꿈을 그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생각보다 빨리 적응한 학교

 또다시 스스로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동아리를 들어갈까 생각 중이다.

 배드민턴? 탁구? 사진? 클라이밍?



음,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해먹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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