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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Feb 15. 2016

How to Study in Europe

교환학생 일기#9 - 조금 지루할 수 있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

2016년 2월 11일, 여행으로는 배울 수 없는 새로움을 만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대학교에 입학한 지 1년도 채 안되었을 때 나는 LG Dream Challenger라는 '꿈 찾기 캠프'에 참여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수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멘토 형 누나들을 알게 되어서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 버킷리스트 만들기였다.  이때 만든 버킷리스트는 아직 우리 집 피아노 위에 액자에 담긴 채로 놓여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학생활 중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라 다짐했던 목록들 중 하나가 바로 '교환학생 경험'이었다. 사실 막연하게 교환학생을 가고만 싶었지 콕 집어 '이 나라에 가고 싶다'라고 할 만한 나라는 없었기 때문에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어떤 나라를 선택할지,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엑셀에 학교 목록들을 정리하고 영어를 사용하는지, 물가, 치안, 볼거리, 교통편, 학교 지명도, 막연하게 가고 싶은 정도 등의 항목들을 만들어 점수를 매겨서 정해보려고도 했으니 꽤나 열정적으로 고민한 셈이다.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이 '미국'을 갈지 '유럽'을 갈지 였는데 유럽여행을 꼭 하고 싶었던 나는 유럽에 더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던 부모님께서는 학기 중에 수업을 밥 먹듯이 빠지며 매일같이 여행을 다닐 나의 모습을 상상하셨는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교환학생 기간 동안에는 교환학생 생활에 집중해 보는 것이 어떠니? 


라고 말씀하셨다. 




예전 이야기를 갑자기 들춰내는 이유는, 덴마크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2주가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그때 부모님께서 하신 그 말씀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에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12시간씩 수고스럽게 날아와서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나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동의를 할 수 있을 리가. 그렇게 나는 부모님께 'F를 5개 들고 올지도 모른다'며 말도 안 되는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부모님께서도 뭐가 되었든 많은 경험을 하고 건강하게만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여보니 생각했던 것처럼 여행을 매일같이 가기도 쉽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학교 생활 자체도 꽤나 즐겁다. 일단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DTU에서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출석 점수가 따로 없으니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수업을 빠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강제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 굉장히 좋다. 오히려 여행을 가지 않는 날에는 수업에 가서 뭔가 배우겠다는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아직 학기 초라 그런 것 같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는 겪을 수 없는, 오로지 교환학생(또는 유학생)으로서만 체험 가능한 경험들이 존재한다. 외국 대학교의 캠퍼스 문화, 동아리, 수업방식 등을 느껴 볼 수 있다는 것은 교환학생의 큰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외국 대학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는 그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세계의 대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지내다 보니 이들이 공부하는 방식이 우리가 공부하는 방식과 꽤나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보이지 않던 차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고작 한 두 번의 수업만으로도, 그들이 공부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열정적인 토론 

모두에게 익숙한, 조금은 뻔한 답일지도 모른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마이클 센델의 '정의는 무엇인가' 강의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 나 또한 강의 영상에 나오는 하버드의 학생들의 수준 높은 토론을 보고 저런 수업에 참여하면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공대 수업이다 보니 그 영상에서 나온 정도만큼 학생들의 토론만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한창 하시다가 질문을 던지고 옆사람과 이야기해보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정말 순식간에, 깜짝 놀랄 정도로 교실이 시끌벅적해진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조금 크게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러워지고, 교수님께서 신호를 주면 다시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에서는 교수님께서 기습적으로 오늘은 휴강이라고 말씀하셔야 나올만한 소리가 이곳의 한 수업에서  두세 번씩 나온다.  



2. 뜬금없지만 자연스러운 질문과 대답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업의 흐름을 끊을 만큼 질문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몇 명의 학생들은 한 수업에서 질문을 4번, 5번씩 던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질문이 항상 날카롭다거나 통찰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가끔은 질문이 너무 정리가 안돼서 교수님조차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는 타이밍을 처음 접했을 때는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교수님도 당황해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학생의 질문에 대해 성심껏 대답해주시고 관련된 질문을 학생들에게 다시 던지기도 했다. 수업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나에겐 이런 흐름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았다. 



3. 느리게, 하지만 정확하게. 

이곳에 오기 전부터 유럽의 교육방식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교육프로그램에서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들을 유럽의 교육과 비교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유럽의 학생들은 얼마나 창의적이고 반짝반짝한 두뇌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조금 의외였던 것이, 이곳의 학생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계산이 빠르지 않았고, 문제 푸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전공 수업 2시간 정도 들은 뒤 학생들이 모여서 문제를 토론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에 나는 덴마크 물리학과 석사 친구와 같이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 있을 때에는 내가 문제를 잘 푸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를 내가 알려주다시피 했다. 

눈에 딱 보이는 닮음이나 삼각비에서도 모든 식을 써 내려가며 정성스럽게 정리하는 그 친구의 풀이를 보고 있으니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문제는 척하면 척인데. 삼각함수 공식도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헷갈려하는 것 같았고, 입체각 같은 문제풀이에서 사용되는 개념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풀이에 정말 특화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문제를 풀고 반복하다 보면 그에 익숙해지고, 계산이 빨라지고, 많이 배우게 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옆에 없었다면 끝까지 혼자 문제를 풀어낼 기세로 수많은 식을 써 내려갔다.


끈기가 있다. 


교과서 연습문제 한 문제를 저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게 과연 언제였을까. 

시험 범위가 많아지고 풀 연습문제가 많아지고 공부해야 할 양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솔루션을 참고하거나 친구에게 물어보는 식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적당한 타협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공부할 게 많아지면 모순적 이게도, 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단지 한 친구의 이야기만으로 유럽의 교육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자리를 뜨지 않고 묵묵히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던 것으로 보아 교육의 전체적인 방향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순 있었다. 두 가지 방식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기초를 쌓는 데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기초를 쌓은 이후에는 이곳의 교육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까.





차이점을 위주로 적다 보니 이곳의 수업 분위기가 크게 다른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점만 빼면, 교수님들도 수업을 잘 못하는 교수님도 있고, 의욕 없이 앉아서 딴짓만 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는 등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곳에 '교환학생으로서' 오지 않았다면 유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거나, 이런 미묘한 차이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수업 힘든건 똑같다...

여기선 잘 안간다는게 다르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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