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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Sep 18. 2017

탄자니아의 맛

아프리카, 탄자니아 봉사일기 #2


| 탄자니아 현지식 

내가 특별히 편식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현지식'이 입에 잘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간이 하나도 안되어있는 옥수수죽이나 퍽퍽한 빵을 처음 보는 소스에 찍어 먹는다거나, 아니면 고기 하나 없이 풀만 먹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우리 팀은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햇반, 라면부터 시작해서, 장조림, 깻잎까지 한국의 별미를 잔뜩 사갔고, 도착한 날 바로 부엌 싱크대에 쌓아놓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탄자니아도 사람 사는 곳인데, 냄비 하나쯤은 있겠지 하고 떠났으나 아프리카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다. 냄비를 포함한 생필품을 사러 나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고, 택시를 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환전을 안 했다. 그리하여 도착하고 이틀까지는 라면 끓여먹을 냄비 하나 없어서 함께 온 교수님들과 함께 컵라면과 밥을 먹었다. 

 3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학교 밖에 있는 현지 식당에 방문하였다. 쭈뼛거리며 식당에 들어서니 (식당이라 해봤자 야외에 간이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누런 이를 보이며 활짝 웃는 종업원이 "헬로 마이 프렌드" 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 앉고 조심스럽게 어떤 메뉴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메뉴가 딱 하나뿐이라는 것. 아루샤 시내에 나가면 식당도 많고 다양한 메뉴가 있을 테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시내와 꽤나 떨어진 시골지역이라 제대로 된 식당에 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한다. 주문을 하니 잠시 뒤에 음식이 나왔다. 


학교 옆에 있는 두 개의 식당 중 첫번째로 방문한 곳


 위 사진에 보이는 것이 우리가 처음 먹었던 현지 식사이다. 소금물로 씻어서 짭조름한 밥, 청국장 같은 비주얼의 콩 수프, 시금치처럼 생겼지만 맛은 조금 다른 야채, 그리고 고기 몇 점, 이렇게 한 식판에 담겨 나왔다. 푸짐한 밥의 양에 한 번 놀라고, 생각보다 먹을만해서 한 번 더 놀랐다. 고기는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급식 고기(?)와 비슷한 맛이고, 야채는 별 맛이 없었다. 콩은 너무 느끼해서 먹기 힘들어 처음엔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반찬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밥이 간간해서 생각보다 잘 넘어간다. 꽤나 든든하게 식사를 했는데 2000실링, 우리나라 돈으로 약 천 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다음날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식당에 갔다. 여기서는 맥주도 함께 판다. 혹시나 여기에는 다른 메뉴를 팔지 않을까 기대를 했으나 역시나 메뉴는 거의 비슷했다. 이전 식당과 비교하면 야채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고기의 양이 훨씬 많아졌다. 거기에 맥주까지 마실 수 있으니 이전 식당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메뉴는 안 변하는데 맥주만 변하는 게 포인트! 거의 돌아갈 때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영어를 못해서 다른 메뉴가 있냐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이 식당에는 두세 개 정도 다른 메뉴가 더 있었다. )



학사 식당의 내부




| 학사 식당에서의 밥

길고 평화로운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돌아왔다. 평일이 되자 학교 식당이 문을 연 모습을 처음 보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위를 힐끔 둘러보니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접시에 담겨있다. 냉큼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았다. 

 학교 식당에는 무려 치킨과 생선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 같은 후라이드 치킨은 아니었지만 매일 똑같은 식단에 구운 치킨과 생선은 가뭄의 단비가 되어주었다. 


이 푸짐함, 실화입니까!!


 조식으로는 고구마와 맛이 비슷한데 살짝 더 단 '카사바'와 피자롤과 비슷한 '삼부사'가 주로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지만 굉장히 익숙한 맛이었고, 다 맛있었다. 게다가 계란이나 소시지에 아메리카노까지 한 잔 곁들여 호텔 조식 부럽지 않은 수준의 풍족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정말 만족스러웠던 학사식당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메뉴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메뉴가 바뀌지 않는 것은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학교 밖에 있는 두 식당에서도, 학식에서도, 심지어 수녀원에 가도 기본 메뉴는 변함이 없었다. 고기와 야채, 그리고 콩. 특히 이 콩으로 만든 수프(?)는 우리나라에서 김치가 나오는 수준으로 나온다. 처음엔 거의 손을 안 댔는데 먹다 보니 먹을만해져서 이제는 없으면 달라고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매번 똑같은 메뉴를 보면서, '오늘은 혹시 다른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속 작은 기대를 무너뜨려야 했다. 



수녀원에서 주신 밥도 똑같다. 그래서 매번 맛있다. 


참 신기한 게 한국에서는 전날 짜장면을 먹으면 다음날엔 짬뽕도 먹기 싫었는데 여기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메뉴, 심지어 점심에 먹었던 메뉴를 저녁에 또 먹는데도 막상 밥을 먹는 순간엔 잘만 넘어간다. 이곳의 음식히 특별히 소화가 잘돼서 그런 게 아니라면 역시 이번에도 이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마음가짐 때문에 그런 것일까. 


이유를 불문하고, 이곳의 모든 식사는 정말 맛있었고, 진심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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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진 제공 : 윤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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