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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태영 Oct 14. 2021

#2-2. 2시간 저녁식사로 89억 원을 모금한 단체

<채리티: 워터> 한국어판 출간과 저자의 한국 방문 이야기

본 내용은 #1. 깨끗한 물로 천만 명을 살린 남자를 만나다 내용을 정독 후 읽으시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


2019년 11월 15일. 미국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 남부 한 도시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거의 20년 동안 알고 지낸 친한 지인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었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 뒷마당 썬베드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태영, 우리 내일 연례 갈라 디너 파티 진행하는데, 샌프란시스코로 올 수 있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해 줄 테니 와서 식사하고 인사하고 가!


자선 단체 채리티: 워터 대표 스캇 해리슨의 비서 칼리에게 연락이 왔다. 스캇의 책 <Thirst> 한국어판 출간 준비를 하며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한국 방문 일정을 조율하느라 여러 번 연락을 했었고, 뉴욕에서도 한 번 사무실을 방문해 인사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마침 인스타그램에 캘리포니아에 와있다고 사진을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 내일? 샌프란시스코? 갈라 디너?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며 몇몇 자선 단체들이 진행한 갈라 디너 행사를 몇 번 다녀온 터라, 행사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아무리 같은 캘리포니아여도 비행기로 한 시간 넘게 날아가야 했다. (서울-부산 거리의 두 배가 넘는다) 금요일의 반이 이미 지나갔고, 당장 내일 오전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리고 드레스코드는 턱시도. 6시간만 지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텐데 내 사이즈에 맞는 턱시도를 어디서 구하지?


동네에 가장 가까운 양복점을 검색해서 전화로 턱시도 대여 가능 여부를 확인했고, 비행기표를 찾아봤다. 다행히도 LA-샌프란시스코는 서울-제주도만큼 비행기 편이 많고, 오전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는 가격도 저렴했다. 하지만 저녁 행사인 만큼 당일 저녁에 묵을 숙소도 예약해야 했고, 그 행사 외에 식사와 교통비 등 경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돈을 그 정도로 쓸 만큼 이 행사가 가치가 있을까? 약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안 해서 후회하는 것이 더 싫다"는 나의 평소 생각을 따라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바로 우버를 호출해 양복점으로 향했다. 

다음 날 오전 7시에 내가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앉아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다음 날이었던 11월 16일 토요일 오전 8시, 나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전날 급히 예약한 공항 앞 호텔에 체크인은 못했지만 턱시도를 담은 짐가방만 맡기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탠퍼드대학교 캠퍼스를 방문했다. 혼자 여유를 즐기다 체크인 가능한 시간에 호텔로 다시 돌아가 시간을 보낸 뒤, 전날 대여했던 턱시도를 입고 우버를 호출해 채리티: 워터의 연례행사가 진행되는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갈라 디너(Gala dinner)란 무엇인가?

미국의 주요 비영리 재단, 즉 자선 단체들이 연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금하는 날이 바로 이 갈라 디너이다. 일 년에 한 번, 5성급 호텔 볼룸 혹은 대규모 행사장을 빌려 코스 요리를 대접하며 재단의 비전과 주요 성과를 홍보한다. 이 행사에 개인으로 참석하는 참가자들은 입장료만 최소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을 내기도 하지만, 주로 기업 후원사들이 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입장표를 받는다. 재단은 기업의 기부금액을 여러 티어(tier)로 나누고, 더 높은 금액을 기부할수록 기업에게 더 많은 홍보 혜택을 준다. 


2019년 채리티: 워터 갈라 디너가 진행됐던 SVN West의 모습.

남성 참가자들은 턱시도를, 여성 참가자들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참석한다. 사실 한국에서 익숙지 않다고 말하지만 외국에서도 아는 사람들만 알지, 그리 흔히 참석하는 행사는 아니다. 갈라 디너의 드레스코드를 한국에서는 "방송국 시상식 의상"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인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완벽한 나비넥타이와 검정 턱시도를 입지 않았다고 입장을 거부당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라 생각하고 드레스코드를 준수한다. 


2019 채리티: 워터 갈라를 참석하다

행사장에 들어가서 스태프에게 이름을 알려주니 테이블 번호가 적혀있는 카드를 건네줬다.

이번에 참석한 채리티: 워터 갈라 디너는 내가 행사 진행 전날 아마 마지막 티켓을 받은 것 같다. 총 45개 테이블이 준비돼있던 이 날, 나는 행사장 가장 뒤에 있는 테이블 45번을 배정받았다. 한 테이블 당 10명씩으로 계산하면 약 450명 정도가 참석한 행사였다. 이 날의 참가비는 1인 당 $2,500. 참가비로만 $100만 달러, 약 11억 원 이상을 모금한 것이다. (무료로 참석할 수 있었던 나는 테이블 번호에 대해 불만이 전~혀 없었다) 채리티: 워터의 정확한 진행 방식은 기억이 안 나지만, 주로 이런 갈라 디너에는 개개인에게 받는 참가비보다 기업에게 $1만 달러 단위로 후원금을 받고 기업이 자유롭게 참가자를 선택할 수 있게 테이블을 나눠준다. 이 기부금에서 행사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정산하고 나머지는 재단의 예산에 더해진다.

각 좌석에 매치돼있던 아이패드. 이름표 역할도 확실히 했다.

내가 이전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갈라 디너는 입장료와 기업 기부금에서 모금이 끝났지만, 채리티: 워터는 당일 현장에 450명의 기부자들이 모인 자리를 최대치로 활용했다. 모든 좌석에는 아이패드가 배치돼있었는데, 각 아이패드에는 참가자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행사가 진행되면서 대형 화면 속 내용과 함께 아이패드 스크린도 바뀌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 전 CEO이자 애플 전 수석 부사장 안젤라 아렌츠가 채리티: 워터 이사회 이사여서 애플에게 직접 아이패드 수백 대를 기부받았다) 채리티: 워터는 저녁 식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노력했고, 이 아이패드를 활용해 참가자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바로 추가 기부를 하고 싶은 금액을 입력해서 후원을 약속하게 이끌었다. 그 자리에서 결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 사람들이 그날 입력한 금액을 기부하도록 이메일을 보냈다.


코스 요리로 저녁 식사를 하고, 디저트가 나올 때 채리티: 워터 CEO 스캇 해리슨이 중앙 무대에 올라서 인사말을 전했다. 사실 여름부터 책을 준비하면서 스캇과 이메일을 여러 번 주고받았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채리티: 워터의 여러 홍보영상들과 스캇의 인터뷰, 강연 영상을 찾아봐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을 보니 더 멋있었다. 그는 이 갈라 디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우리는 다른 단체들처럼 유명 가수의 화려한 공연도, 연예인과의 저녁식사를 상품으로 거는 경매도 없습니다. 그저 지구 상에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6억 명이 넘고, 여러분의 후원과 마음을 통해 우리와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그리고 그는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채리티: 워터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우물을 파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에 채리티: 워터가 짓지 않은 고장 난 우물 1,000개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고쳐서 1,000곳의 마을들이 깨끗한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스캇은 얘기했다. 우물을 고치기 위해서는 한 우물 당 $6,000 (약 700만 원)이 필요했다. 


스캇은 우간다에 있는 테멜레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2년 동안 우물이 잘 작동됐는데, 수소 이온 농도(pH)가 낮은 물이 파이프를 붕괴시켜 전반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이 마을에 필요한 공사비용을 위해 모든 참가자들에게 $16 (약 18,000원)을 기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각 좌석 앞에 배치된 아이패드는 화면이 바뀌고 "$16"이 적힌 버튼이 등장했다. 나를 포함해서 좌석에 앉아 있던 모두가 그 $16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우리는 채리티: 워터에 $16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첫 $6,000을 달성하며 화면에는 새롭게 설치될 우물의 모습이 나타났고, 화면에는 우간다 테멜레 마을 사람들이 실시간 생중계로 연결돼서 춤을 추고 감사하는 모습을 전했다. 


그리고 스캇은 그날의 최종 목표를 공유했다. 우물 1,000개를 고치기 위해 필요한 총금액 $600만 달러. 행사장 천장에는 천 개의 전구가 달려있었고, 한 개를 고칠 수 있는 돈이 모금될 때마다 전구가 하나씩 밝혀질 거라 얘기했다. 좌석 앞 아이패드에는 $16 버튼이 없어지고 다양한 숫자가 적힌 버튼이 나타났다. 아이패드에 나와있는 숫자를 눌러서 기부를 약속하면 실시간으로 기부 금액이 계산돼서 행사장 전체를 밝힐 거라 설명했다. 채리티: 워터가 몇 달 동안 준비한 최첨단 행사였고, 본격적인 모금을 위해 켜져 있던 모든 전구를 꺼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작동을 멈췄다! 아무 버튼을 눌러도 아이패드가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도 제대로 작동하는 아이패드가 없었고, 무대에 달려온 비서에게 이야기를 전달받은 스캇은 모든 아이패드 안에 있는 앱을 재부팅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주최측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고, 행사장 불을 다시 켜고 아이패드가 다시 작동할 때까지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아이패드 앱은 재부팅에 실패했다. 스캇, 그의 아내 빅토리아, 그리고 채리티: 워터의 오래된 후원자들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와 시간을 끌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20분이 지난 후, 스캇이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가 모두에게 사과하며 아이패드 앱이 다시 작동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날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저 한 가지만 부탁했다. 참가자 모두에게 종이 한 장과 연필을 나눠드릴 테니, 기부하고 싶은 만큼 액수를 적어서 주최 측에 건네 달라고 요청했다. 



스캇의 진심이 통했을까. 종이에 적힌 금액과 디너 참가비를 더한 금액은 총 $7,532,290. (2021년 10월 환율 기준) 약 89억 원이 모금됐다.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스캇은 무대 위에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채리티: 워터는 이 날, 1,000명이 아닌 1,000개의 마을에 사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마련했다. 


행사가 끝난 후 스캇과 드디어 처음으로 인사했다. 

디너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나는 잠깐이라도 스캇과 인사를 하기 위해 행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 또한 행사 주최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 직후에 얼마나 정신없는지 잘 알았지만, 그래도 2달 후에 스캇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기에 방문 전에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스캇의 비서 칼리를 먼저 찾았고, 칼리가 나를 스캇에게 데려다줬다. 스캇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나는 스캇에게 한국 책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고 곧 한국 방문 일정에 대해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는 행사장을 걸어 나와 우버를 호출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참석한 행사여서 어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뜻깊은 취지를 공유하고 공감하며 한 자리에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이 발휘될 수 있는지 제대로 경험한 날이었다. 



채리티: 워터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물론 스캇이 말을 너무 잘해서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설득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깨끗한 물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취지를 갖고 있는 것도 큰 요소이다. 하지만 이날 밤 사람들이 각자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의 개인 돈을 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채리티: 워터가 고수하는 100% 모델 (기부금의 100%가 우물 사업에 활용되고, 재단의 운영비는 소수의 자산가들에게 받으며 활동하는 채리티: 워터의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형성된 재단에 대한 신뢰가 아닌가 생각했다.


우버를 타기 전에 이번 행사 안내판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이런 갈라 디너를 해보면 어떨까..?



다음 글 보러가기:

#2-3. 채리티: 워터 대표의 2박 3일 한국 방문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자선 단체로 인정받은 '채리티: 워터'를 이끄는 대표,

스캇 해리슨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Thirst> (한국어 제목: <채리티: 워터>)의 한국어판 출간 과정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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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로 1,000만 명을 살린 남자의 영화 같은 이야기
술, 마약에 빠져 살던 나이트클럽 프로모터,
하룻밤에 86억을 모금하는 자선단체의 CEO가 되기까지!




'세계의 지혜를 소개하다'라는 미션과 함께

글로벌 베스트셀러 저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는

출판사 CNH북스 대표 우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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