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 여행기 2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투어는 고래상어를 직접 보는 것이다. 나의 두 아이는 한국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미리 마련해서 욕조에서 눈뜨기와 숨쉬기를 연습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기를 고대하는 고래상어는 고래일까? 상어일까? 검색해 보니 고래상어는 연골어류 수염상어목에 속하는 상어다. 상어에 '고래'가 붙은 이유는 크기와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몸길이가 10m에 달하는 가장 큰 상어이고, 'Gentle Giant'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온순하다. 현존하는 가장 큰 어류라고 고래상어의 특징을 설명한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생긴다. 고래상어보다 흰 수염고래를 비롯한 고래 종류가 더 크지 않나? 상식으로 알다시피 고래를 어류가 아닌 포유류로 분류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바다에 사는 그 많은 생명체가 어류로 묶일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발견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에서는 분류학(taxonomy)을 뒤엎은 사건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Lulu Miller)는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이자 생물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이 물고기를 한 집단으로 몰아넣은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형질을 진화론적으로 분석해 분류체계를 연구하는 분기학(cladistics)에서는 1980년대 어류의 존재를 부정했다. 캐럴 계숙 윤(Carol Kaesuk Yoon)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에서 생물을 눈으로 보고 분류하던 초기 분류학에서 벗어나 실험실에서 DNA를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혁명적으로 변한 역사적 과정을 탐색했다. 물에 산다고 모두 어류라고 뭉뚱그린다면 산꼭대기에서 사는 모든 생물은 산어류라고 하는 꼴이다.
물고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고래상어를 만나러 가야겠다. 보홀에 온 둘째 날 새벽 6시에 호텔을 떠나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고래상어를 찾아 먼바다로 나가는 것을 상상해서 멀미약까지 챙겨 먹었는데, 쪽배를 타고 겨우 50미터 정도 나가니 5마리의 고래상어가 주변을 맴돌았다.
고래상어는 열대-아열대 바다 곳곳을 돌아다녀서 사람들의 눈에 우연히 발견된다. 그러나 보홀에서 보는 방법은 어부들이 바다에 먹이를 뿌려 고래상어 여러 마리를 모으면 관광객이 바다로 들어가 구경하는 형태다. 반경 100미터 정도 되는 구역에 5마리의 고래상어가 있어 바로 옆에서 관찰할 수 있고 만져진다. 나의 배우자는 스노클링을 하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고래상어의 큰 입이 바로 앞에 있었다고, 잡아 먹힐 뻔했다고 흥분하며 경험을 이야기한다. 놀란 듯 맞장구를 쳐주면서, '고래상어 목구멍은 3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아 삼켜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입 속으로 들어가도 뱉어질텐데…'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러나 여행공장처럼 운영되는 고래상어와의 만남이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좁은 수족관 안에 고래상어를 가두어 관람하는 일본 츄라우미 수족관 의 형태가 아니라 자연 상태의 생명체를 찾아가서 본다는 것이 죄의식을 덜지만 인간이 정해놓은 한계선을 다른 생명체가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같다. 사피엔스가 지구를 접수해 가는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의 행복은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사피엔스Spiens》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동물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 켄베이어 벨트의 병아리의 희생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이 산업적 착취체제에 희생되었으며, 그 잔인성은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전대미문이었다. 만일 우리가 동물권리 운동가들의 주장을 10분의 1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현대의 기업농은 역사상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할 때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을 적용하면 우리 가족의 행복을 기준으로 자연을 관람하고자 하는 태도보다 고래상어의 입장에서,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관람 전에 안전사항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교육이 잠깐 이루어진다. 고래상어와 3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만져서는 안 되며, 고래상어가 가는 방향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물속에서 인간의 몸은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고래상어와 거리를 유지하고 만지지 말라는 규칙은 지켜질 수가 없다. 가까이 온 고래상어를 접촉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으나 좁은 구역에 5마리가 있다 보니 피할 수가 없었다. 온순한 성격의 고래상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옆에 다가온 고래상어와 접촉하지 않기 위해 손발을 움직이니 그의 피부가 느껴진다. 멀리 있던 고래상어가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발견하고 피하려고 허우적대도 그들은 유유히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인간과 접촉하면서 생긴 물리적 상처도 있겠지만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경험이 본능을 사라지게 만들어 그들의 멸종에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부들은 쉴 새 없이 바다에 새우젓을 뿌린다. 새우젓만 섭취하는 그들의 영양 상태는 불균형일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사람에게 감자튀김만 매일 주는 것과 같다. 자연에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섭취한 고래상어와 새우젓만 먹은 고래상어의 건강상태를 비교하면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여행 상품이 당장 고래상어에게 고통을 주지 않더라도 그들의 개체수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달콤한 것으로 유혹하여 그들의 자유를 빼앗았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유영해 가는 대신 비린내 가득한 좁은 해안가에서 쓰레기를 주어 먹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이 주는 먹이가 고래상어를 위한 완전식품이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있다. 고래상어는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바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먹이를 섭취하여 성장하는데, 한 곳에 머무르면서 길들여진다면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고래상어는 1년이 넘도록 한 지역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곳곳을 이동하면서 짝짓기를 통해 번식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먼바다를 정처 없이 유영하는 습성을 가진 그들의 본능을 인간이 역행하게 만든다.
인간이 고래상어를 관람하는 것과 그들이 바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중 어느 것이 지구 전체에 도움이 될까? 무엇이 맞는 것일까? 누구든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으나 실행은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왔으니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이 이성적 사고를 앞지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잘못을 반성한다. 나의 과오를 다른 사람은 하지 않기를 바라고,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고래상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