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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Jan 10. 2024

'새 학기 증후군' 예방을 위해 학교가 해야 할 일

유난히 추웠던 3월의 교실


  학창 시절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교실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3월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친구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체온보다 마음이 차가웠습니다. 마음의 냉기는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 학기 초에 배아픔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제가 겪었던 증상이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blues)’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 학기 증후군이란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 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정신적 증상을 말합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가게 되면 아이들이 두통, 복통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심하면 등교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영국 워릭대학교 연구팀은 1991년부터 10년 이상 6,400명이 넘는 학생과 학부모를 조사하였는데, 전학을 많이 다닐수록 정신적인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학생들이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나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 이외에 처음 생활하게 되는 공동체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교육 기관입니다. 아이들이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공동체는 그 사람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학교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 즐거움과 인간의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급 편성 과정


  새 학기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평소 자신감을 심어주고, 부담을 주지 않고 따뜻한 말을 자주 하고, 실수를 해도 다독인다는 해결책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증상의 원인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방법을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학생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학급을 구성한다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급 편성은 관계보다 다른 요소들이 더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담임교사일 때 경험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새 학년 학급 편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학급은 대체로 성적, 학교폭력 여부, 학부모의 요청 등을 고려하여 1년마다 새롭게 구성됩니다. 성적은 학급을 편성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5개 학급이 있다면 전년도 성적 평균을 기준으로 등수를 산출해 1~5등을 반별로 먼저 배치하고 6~10등을 반대로 넣는 방식으로 구성하여 각 학급의 반 평균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입니다.


  성적으로 구성한 자료가 만들어지면 담임교사들이 모여 그것을 조정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학교폭력'으로, 학교폭력이 신고되어 공식적인 과정을 거친 것 말고도 작은 다툼도 포함됩니다. 1년 동안 담임교사가 알고 있는 갈등 사안을 토대로 관련된 학생들이 같은 반에 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부모가 특정 학생과 같은 학급으로 해달라거나, 다른 반으로 배치를 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학부모가 학생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요청의 이유가 합리적이라면 되도록 반영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어, 그럴 때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학부모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과 새 학기 증후군 예방법


  학급이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교육에서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인성 교육이나 사회성 교육 측면에서 1년에 한 번씩 학급 구성원을 다르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hierarchy of needs)을 토대로 이러한 생각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가 단계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단계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다음 단계의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는 4단계인 존중의 욕구입니다. 반면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는 2단계인 안전의 욕구에 해당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다른 사람을 존중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매슬로의 이론을 적용하면 교실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관계 조건을 먼저 만들고, 1년 동안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개별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학급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서로 친해지기를 바라는 데, 그러한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운이 좋아야할 따름입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학생에게 자신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고, 그것을 반영하여 학생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게 학급을 구성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저는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설문 자료를 만들어 학생 스스로가 생각하는 친구 관계를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설문지는 설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과 2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학년 행복한 학교생활의 시작은 학급 편성이라고 모두 생각할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여러분의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학급 편성에 대한 의견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점이 있습니다. 이 설문을 학생들이 친구들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사용할까 봐 염려됩니다. 나와 친하지 않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경험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친구들과 나누지 않고 꼭!! 혼자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원하는 학생에 한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교사와 뜻과 다르게 학생들은 예상 못한 방식으로 자료를 활용하곤 합니다. 그래서 설문 의도를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설문의 목적은 학생 개인이 느끼는 관계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확산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생각할 수 있는 문장을 넣어야 합니다. 또한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학급 구성이 될 수 없음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질문 1. 내년에 같은 학급이 되면 행복한 학교 생활이 될 것 같은 친구 이름을 적어주세요.


  정혜신 교수는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정서적인 ‘내 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받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위안을 받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교사는 학생의 전체 관계를 바라보고, 아이가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교사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 2. 내년에 함께 생활하면 친해지기 힘들 것 같은 친구 이름을 적어주세요. 그 친구와 있었던 일과 친해지기 힘든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자세할수록 반영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소설 <우아한 거짓말>에서 따돌림 피해자 천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가해자 화연과 분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5~6시간 마주하는 일은 성인조차 견디기 어렵습니다. 성인은 스스로 선택한 공동체이고, 의지에 따라 바꿀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학생은 부모가 선택한 학교에 다녀야 하고, 전학은 주소지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막연히 싫은 느낌만으로 적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험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위 방법은 온라인 설문지를 만들고 링크를 보내 학생들이 작성하면 응답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제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에서 제안했지만 모든 학생의 요구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잘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한 해 동안 담임한 30여 명의 아이들에게만 적용해서 학급 편성에 반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같은 학년을 담임한 선생님들이 동의해서 학년 전체 설문조사를 온라인으로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응답 결과를 토대로 선생님들이 평소보다 2~3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서 학급 편성을 마쳤습니다. 새 학년 시작부터 아이들의 따뜻한 미소가 교실에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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