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ethinkin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숟가락 Sep 03. 2021

사랑의 모양

오모리 타츠시 감독, <Mother> 리뷰

부모와 자식이 만드는 사랑을 모양에 비유해보자.

완벽한 사랑을 ‘동그라미’ 모양이라고 한다면

모두 완전히 둥근 모양을 그리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다.

완벽히 동그란 모양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자가 그린 모양은 같지 않다.

동일인이 그린 동그라미마저도 다르다.

사랑은 관계의 수만큼 다양하게 존재하고

같은 사람들의 사랑도 시기마다 달라진다.




최근에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행동이

뇌의 특정부위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졌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3307)

연구진은 포유류가 자녀를 돌보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경세포에서 ‘갈라닌(galanin)'이라는 물질이 분비됨을 확인했다.

이 물질은 포유류의 공격성을 억제하며

새끼들을 양육하는 성질을 유도했다.

이번 연구에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부모 뇌에서 자녀를 돌보도록 배출하는

물질의 양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모양도 다르지 않을까?




오모리 다츠시 감독은 2014년 사이마타현 니자시에서 발생한

17세 청소년의 70대 조부모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은 소년(슈헤이)이 12세, 17세에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였다.

 

12세 슈헤이는

엄마(아키코)가  남자 친구(료)와 떠나자

집에 남겨져 한동안 홀로 지낸다.

돌아온 엄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청 직원에게 성추행당했다는

거짓말을 하라고 아들에게 시킨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

셋은 도망쳐 버린다.

모텔에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아키코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안 료는 그녀를 때리고 떠난다.


17세 슈헤이는

동생(후유코)을 돌보고 있다.

국가의 도움으로 시설에 들어가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다니게 되고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떠났던 료가 찾아와 안정이 깨지고

가족이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되면서

다시 거리로 돌아가게 된다.

잠깐 근무하게 된 직장의 사장에게 정을 붙이지만

엄마의 부탁으로 사무실에서 돈을 훔치고

다시 도망자 생활을 하게 된다.

결국 엄마와 동생을 위해

엄마의 조부모 살해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영화에서 엄마와 아들이 만드는 사랑은

둥글다고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슈헤이는 엄마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시설에서 만난 사회복지사가

엄마와 따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소년은 엄마와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세계를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 가정, 학교에서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슈헤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엄마, 동생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변호사: 경찰 쪽에서는 너희 어머니가 살인강도 공모자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키코 씨는 살해 현장에 없었지. 어머니가 혐의를 부인한다면 공모를 증명하기 어려워. 엄마가 너한테 그러라고 했어?
슈헤이: (한참을 생각한 후) 전부 제가 했어요.
변호사: 뭐라고?
슈헤이: 엄마가 시키지 않았어요. 전부 제 책임이에요.


조부모 살해 사건 이후 잡힌 슈헤이는

온전히 책임을 뒤집어쓴다.

왜 그랬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다.

아키코를 사랑한 사람은

슈헤이뿐이다.

아키코의 부모와 여동생은

그녀를 야단치고 원망한다.

가족을 떠나 만난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부모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소리만 친다.

오락실에서 만난 료에게 매달리지만

그는 그녀를 필요할 때만 찾는다.

슈헤이까지 아키코를 버린다면

그녀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엄마를 살렸다.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에게 줘야 하는 사랑의 양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상당히 높다.

일방적, 맹목적 등의 단어가 사용된다.

사랑이 부족하면 비난이 쏟아진다.


미국에서 ‘냉장고 엄마’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아이들이 자폐증을 가지는 원인을 부모에게 돌려

엄마들이 자식에게 준 사랑이 부족해

아이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뇌 연구에 따르면 자폐증은

중추 신경계의 이상으로 발생한다고 밝혀졌다.

이렇듯 근거 없이 부모의 역할만 강요하고

수행하지 못할 때 비난하는 일은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동그라미만 사랑이 아니다.

세모, 네모, 사다리꼴도 다양한 사랑의 모양이다.




다른 사랑의 모양은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지만

삐죽한 모양은 사람들이 찔리기 쉽다.

영화에서 아키코의 날카로운 사랑이

슈헤이를 찔러 아프게 한 것처럼.

둘의 사랑을 동그라미와 비슷하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들이 모난 곳을 같이 깎아야 한다.

12살 슈헤이가 혼자 남겨졌을 때

시청 직원이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면,

료에게 맞고 있는 아키코를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다면,

사랑의 모양을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 부모가 만든

사랑의 모양도 슈헤이, 아키코의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그들을 악마로 만들어 비난하면

문제는 분명해지지만 해결은 흐려진다.

악마를 조금 이해해보자고 말하면

악마를 비호한 나쁜 사람이 될 뿐이다.

그 모양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지 못하고 버려져서

더 뾰족한 모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내 자식들이에요. 슈헤이도…. 후유카도…. 내 분신이라고요!

아키코의 이 말은 틀렸다.

슈헤이, 후유카는 우리의 자식들이다.

서로 도우며 키워가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

동네 어른들과 인사를 하고,

학교에 가서 교사들에게 배우고,

친구들과 재밌게 놀면서

함께 자라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아키코를 비난만 하지 않고

먼저 귀를 열고 말을 나눠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그림일기 사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