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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Nov 13. 2021

하지 못한 말 해야 하는 말

2014년 수능 전 날

3년 전 중학교 생활을 함께 한 제자를 떠나보냈습니다.

사람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시험 전 힘든 선택을 했기에 부담감에 그랬을 것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 아이가 약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은 종종 있어왔다고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수능 감독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차를 돌리면서 누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러 온 친구들은

장례 기간 동안 '죽었다', '자살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슬픈 일', ' 안 좋은 일', '그 일'...

그들은 그 아이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님의 한탄, 친구들의 말들을 들어봐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누구도 그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으니까요.


잘못한 이는 그 아이가 아니고

후회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아이를 보내고 학교에 돌아와서 생각했습니다.

난 이제 어떡하지?

제자의 선택을 원망해야 하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끝내야 하나?

내가 뭘 할 수 있지?


모든 아이들은 그 친구와 같은 고민을 하면 안 됩니다.

그 나이 때에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합니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성격이 좋건 나쁘건

아이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고민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아이들에게 짐을 우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힘이 들면 쉬라고 격려하고,

어려운 일은 어른들이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만 느끼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해줘야 합니다.

‘네가 힘든 것은 학교, 선생, 친구, 가족의 잘못이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꼭 알려줘야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학교에 와서 아이들 모습을 보니 다시 울컥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힘든 선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3년 전에 같은 반이었던 제자를 떠나보내고 오는 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해줘야 했던 말인데,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려고 합니다. 어제 수능 감독을 하면서 수험생들 표정을 보았습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2년 동안의 삶이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됐습니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요? 아니요. 옳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럼 공부 못하고 대학 못 가고 좋은 직장이 없으면 불행해지는 게 당연한 건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난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소중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행해지는 것은 여러분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주변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 겁니다. 학교에 오기 싫은 것은 선생이 잘못했고, 학교가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집에 있기 싫으면 가족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절대 여러분이 못나고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학교에서 벗어나 인생을 살아보면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적으로만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여러분들을 인정하고 이해해줄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고 사랑해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꼭 기다리세요. 지금 힘이 드는 건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때까지 살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든 선택을 할 마음이 든다면 꼭 제가 오늘 한 말을 떠올리세요. 여러분이 잘못한 게 아니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꼭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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