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TV+ 시리즈 <제이컵을 위하여> 리뷰
아들이 살인 행위로 재판을 받는데 자녀가 그것을 부인할 때 부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당연히 자식의 말을 믿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내 아이가 진짜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이 든다면?
이 주제를 다룬 시리즈가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이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벤이 칼에 찔려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 사건을 맡은 검사 ‘앤디’는 아동 성추행범을 의심하여 조사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앤디의 아들인 ‘제이컵’이 경찰에 붙잡힌다.
벤의 옷에서 그의 지문이 발견된 것이다.
이후 앤디는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에서 피의자 부모로 위치가 바뀐다.
아버지는 아들을 변호하기(defending)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비슷한 영화가 떠오른다. 봉준호의 ‘마더’다. 그런데 결이 좀 다르다.
마더에서 엄마가 아들을 보호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아들이 좀 모자라서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일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려고 한다.
변호사는 돈 이야기만 하고 아들을 구해줄 방법을 찾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마가 나서서 아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이컵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냉정한 표정이 그 행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5살 때 볼링공으로 친구의 머리를 겨냥한 것을 엄마가 간파해 막은 경험이 있다.
또한 친할아버지가 잔혹한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살인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발생한 3일 후 살해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소설을 썼다면 결정적이다.
내 아들이 충분히 그 행위를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부모 둘의 행동은 달랐다.
아빠는 끝까지 아들의 행위를 부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엄마는 점점 아들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빠는 자신의 혈연, 인맥, 법적 지식 등을 총동원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반면 엄마는 아들의 과거, 상담 결과, 감정 없는 태도 등을 보고 점점 마음속으로 아들의 살인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셋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고, 집에 함께 있으면서도 말이 없어진 채 지내게 된다.
아들의 살인을 부모가 믿든 믿지 않든 사건에 대한 해결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정확한 사실조사
2) 가해 행위에 대한 사과
3) 피해에 대한 복구
4) 가해자에 대한 처벌
앤디는 제이컵의 칼을 버림으로써 사실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앤디, 로리, 제이컵 중 그 누구도 벤의 유족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벤의 부모가 느낀 상실감은 치유되지 못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의 종결은 처벌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어느 절차도 지켜지지 못하고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시리즈는 끝을 맺는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았다.
제이컵이 살인 행위를 했다고 가정하고 문제를 살펴보자.
왜 제이컵은 벤을 죽였을까?
영화에서 묘사한 재판에서 여러 원인이 제기된다.
'제이컵이 벤에게 괴롭힘(bullying)을 당했다.'
'바버 가문(빌리, 앤디, 제이컵)은 살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사건이 갑작스럽게 종결되면서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원인 규명만큼 중요한 본질을 질문해보자.
'그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제이컵이 살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살인 욕구를 참을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덱스터의 아버지처럼 앤디도 아들의 살인 욕구를 범죄자에게 풀도록 훈련시키면 될까?
아무리 범죄자라도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처벌할 권리는 없다.
그렇다면 제이컵의 엄마처럼 부모가 자식을 벌하는 것이 맞을까?
그것도 적절하지 않다. 부모라도 자녀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부모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는 살인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의학적 방법을 찾고,
통제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
다음으로 제이컵이 괴롭힘 때문에 살인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이컵의 부모는 자녀가 힘든 일을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앤디와 로리는 제이컵이 실제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모가 아들의 친구라고 생각한 데릭은 제이컵을 살인자로 지목했다.
제이컵이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주로 방문하고, 무슨 내용으로 SNS에 글을 쓰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아들은 부모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났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다른 공동체를 찾아야 했다.
가족, 지역 사회 등 다른 집단에서 인정받고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았다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괴롭힘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드물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 매일 여러 건 발생하는 일이다.
다만 피해자가 스스로를 벌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교사인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던 때 학교에 오고 싶지 않다는 아이가 있었다.
그 이유를 따라가 보니 같은 반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 등교를 거부했다.
윤리 선생님이 그 아이가 수업에서 '자살'을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파악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해 학생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다.
“학교에 억지로 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공부는 나중에 따라갈 수 있게 하고, 미인정 결석이 되지 않게 행정처리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은 아이를 잘 보호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아이에게는 전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면 제가 중간에서 해결하겠습니다. 제가 빨리 상대 학생과 그 부모님은 만나서 이야기해 볼게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받은 사람의 감정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그다음의 일이다.
나의 경우 다행히 두 부모와의 상담이 잘 되었고, 학생 사이도 원만해졌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이렇게 잘 해결되지는 않는다.
많은 학교에서 매년 수차례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아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 피해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관련된 어른들이 취해야 행동은 분명하다.
가해 행위를 한 학생과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피해를 입은 학생의 부모는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
사안에 대한 조사를 비롯한 문제 해결은 학교, 교육청 등 행정기관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제이컵의 사례처럼 사건 해결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유독 학교라는 공간에서 관계가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성적, 외모 등 단순한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동갑 아이들을 한 공간에 몰아 놓고 12년 동안 잘 지내라고 강요한다.
선택하지 않은 학교와 학급에서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관계를 1년 동안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맞지 않는 학생은 문제가 있다고 규정한다.
나는 학교 시스템과 맞지 않아 3월마다 긴장했다.
부족한 외모를 바꿀 수 없어 성적을 올렸다.
절친이 없어 소풍 때 혼자 다녔다.
‘내가 없어지면 누가 슬퍼할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학교를 벗어나 대학 생활부터 현재까지 진짜 나를 찾았다.
나와 맞는 사람을 선택해 관계를 형성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너는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줘”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나의 새로운 장점을 발견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교사로 학교라는 공간에 다시 가야 했을 때 옛날 기억이 떠올라 두려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다시 한 공간에 있을 때 어떻게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나만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공립학교 교사는 지역과 학교를 선택해 옮길 수 있어서 이 제도를 활용했다.
직장으로서 학교에서 관계가 덜컥거릴 때 나는 사람과 환경을 바꿨다.
나와 맞는 교사가 많은 곳으로, 나의 생각을 인정하는 학교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의 교직 생활 동안 6개의 다양한 학교를 경험했다.
매년 바뀌는 상황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자녀를 키우면서 내가 학교에서 받았던 느낌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1년마다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피할 방법을 찾았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공교육 기관이 아닌 ‘대안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안교육 공동체를 찾았다.
그래서 현재 딸아이는
한 학년에 12명밖에 없고,
여러 나이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여행하며,
자유를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는 2년 동안의 학교에 다니면서
친한 친구, 좋아하는 오빠, 따라다니는 동생을 만났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