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자녀와 함께 쓰는 가족그림일기
우리 가족은 저녁 8시만 되면 긴 식탁에 같이 앉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그림일기를 네 식구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씁니다. 10살 딸아이는 볼펜으로 최대한 정성 들여 쓰고, 5살 아들은 색연필로 자기만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저는 아이패드를 사용해 일기를 쓰고, 부인은 일상을 그립니다.
저희 가족이 쓰는 그림일기는 우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그림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더 행복해지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표현을 인정해 주면 힘이 납니다. 내가 다른 사람 표현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많은 이들이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모습을 공감해주면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어질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그림일기를 쓰면 어른은 아이의 현재 모습을 알 수 있고, 아이는 어른의 그림일기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그림일기는 어떻게 그리고, 쓰면 될까요?
그림은 ‘왜 그렇게 그렸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 그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림을 시각언어로 사용합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결과물입니다. 아이 그림에는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드러납니다. 그림을 보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림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궁금해하면 됩니다. 그림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지 그림 자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을 어른 작품 평가하듯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완성된 그림을 품평해서는 곤란하고, 아이가 그림을 그린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인정해주면 좋습니다.
글쓰기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면 됩니다. 한 문장만 쓰면 되고, 할 말이 많다면 더 써도 좋습니다. 다만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집중하지 않고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으면 됩니다. 한글 사용 능력은 차근차근 좋아집니다. 소리가 나는 대로 적는 것은 글자를 처음 익힐 때 당연히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단어의 의미를 알기 시작하면 띄어쓰기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문장씩 1년 동안 써보면 한글 사용법은 저절로 알게 되니 처음 시작할 때 그것을 가르치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현재 능력에 맞춰 글을 쓰고,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좋습니다.
위와 더불어 그림일기(양식은 끝에 pdf파일로 첨부)를 사용하실 때 다음 사항을 고려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하나, 아이의 뜻이 우선입니다. 어떤 아이는 그림일기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가 표현할 다른 수단을 찾으면 됩니다. 어른의 의도대로 아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특성대로 수단을 마련하면 좋습니다.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목청이 좋은 아이는 노래로 표현하는 방법을 쓰면 됩니다. 다만 다른 것을 찾기 전에 보호자가 그림일기를 쓰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둘, 가족 모두가 그림일기를 작성합니다. 그림일기를 아이 혼자 하면 숙제가 되지만, 같이 하면 재밌는 놀이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면서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어른들이 아이의 삶을 궁금해하듯이, 아이도 부모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면서 관계가 좋아집니다.
셋,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나눕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다릅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알고 이름 붙이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사람이 변하려면 감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감정이 바뀌려면 자신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다른 사람이 그 감정을 받아줘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수용된 다음에야, 그 상황에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사람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느낌을 쓰는 것보다 감정을 찾는 게 아이에게 더 쉽습니다.
그림일기는 글과 그림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딸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딸아이와 글쓰기를 즐기는 저에게 딱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아 우리 가족은 매일 밤 8시에 하는 그림일기 시간을 기다립니다. 가족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수단이 꼭 그림일기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하루를 나누는 시간은 꼭 필요하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가 언젠가 그림일기 싫어하는 날이 오면 우리는 과감하게 다른 방법을 만들 것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우리 가족은 길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