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서 학부모로 변화하는 시작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년 초에 실시하는 학부모 총회이다. 그러나 총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부모가 교육주체로 인정받는 과정과 거리가 멀다. 첫 학부모 총회의 모습을 학부모의 관점에서 스케치해보자.
총회 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춰 홈페이지에 공지된 장소인 강당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거의 보이지 않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가 대부분이다. 입구에는 등록부, 유인물, 다과가 놓여 있고, 정장을 입은 교사가 웃으면서 학부모를 맞이하고 있다. 등록을 하고 들어오면 단상을 향해 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 맨 앞은 임원석으로 정해져 있고 뒷자리부터 채워진다. 사회를 맡은 교무부장이 앞자리부터 채워달라고 부탁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300여 개의 좌석이 마련되었지만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에서는 자리가 다 채워져 서서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중학교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교장이 개회사와 인사말을 하고, 전년도 학부모 임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겠다고 한다. 앞자리에 있던 학교운영위원회위원장, 학부모회장, 학부모 폴리스회장, 녹색어머니회장, 학부모동아리회장이 일어서서 단상에 오른다. ㉢잘 아는 사이인지 대화를 하면서 올라갔고, 교장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상장을 수여한다.
다음으로 교감이 학교교육과정을 설명하고 교직원을 소개한다. ㉣담임이 소개되자 학부모들이 바빠진다. 내 아이 담임이 누구인지 찾고 있고, 주변 학부모에게 담임교사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인사가 끝나자 교무부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올해 학부모위원을 선출하겠다고 말한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위임장을 받은 것을 강조하고 지금 모인 학부모 중 입후보할 사람을 물어보자, 전년도 학부모회장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머뭇거리다 손을 들고 지원한다.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나오고 학부모회장이 정해진다. 단출한 선거가 끝나자 학부모들은 각 반 교실로 이동한다.
반에 가니 담임교사가 다른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바로 교실로 간 학부모와 상담하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먼저 온 학부모는 일이 있다면 나간다. 나를 포함해 3명의 학부모가 둘러앉자 담임교사는 부탁을 드릴 일이 많다면 멋쩍어한다. ㉥칠판에는 학급대표 1인, 시험감독 3인, 급식모니터링 2인, 도서관봉사 4인이 적혀 있다. 학급대표는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해서 뽑지 못했고, 3명의 학부모가 두 가지의 역할을 맡아도 부족했다. 교사는 반장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학급대표를 부탁했고, 정하지 못한 역할은 다른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돌려야겠다며 말한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 오늘까지 꼭 배정된 인원을 채워달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린다. 결국 한 학부모가 같은 반 아는 어머니에게 직접 전화해 인원을 채우니 오후 5시가 되어 퇴근 시간이다. 담임교사는 개인 상담이 필요하신 분은 따로 하고 가라고 말했지만, 어린아이를 둔 교사를 붙잡고 얘기하기가 미안해 다음에 오겠다고 하며 교실을 나섰다. 집에 오면서 다음부터는 학부모 총회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총회에 참석했던 학부모는 학교에 다시 올 이유를 잃어버린다. 특정한 사람들이 선점한 것 같고, 학교에서 일을 시키려고 부른 느낌이 든다. 총회가 부담스러운 건 교사도 마찬가지다. 첫 만남부터 부탁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맡기는 것 같다. 학년 초 아이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학부모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스케치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 학부모 총회라고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 총회다. 아니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아이 양육만 하는 보호자를 위한 총회다. 모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다면 오후 3시에 행사를 잡을 수 없다.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순으로 아이가 클수록 학교에 오는 학부모 수는 적어진다. 단순히 학부모의 관심이 줄어들었다기보다는 학부모 총회가 학부모를 위한 자리가 아님을 알아가면서 가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 학부모 임원은 한 사람이 맡으면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하고, 친한 사람들과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단체가 특정 사람들의 대표 기관으로 기능하려면 친분이 아닌 역량에 따라 조직되어야 한다.
㉣: 학부모가 총회에 오는 주목적은 담임교사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이다.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내키지 않지만 담임교사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회장이 누가 되든지 상관없고 담임교사와 따로 면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민주적인 선거는 입후보자가 자발적으로 나서고 공약을 비교하면서 투표를 거쳐 이루어진다. 학부모회장을 뽑는 선거는 민주 선거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입후보자는 떠 밀려서 나가고, 박수 소리로 선출 여부가 결정된다.
㉥: 학교에서 학부모를 부른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행정기관은 학부모를 학교 일에 참여시키기를 강요하고,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만들어 할당한다. 학교는 그 자리만 채우면 된다. 그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
경험을 토대로 상상하여 기술했지만 학부모 총회를 경험한 학부모, 교사라면 이러한 분석이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와 처음 만나는 과정이 이렇다면 학부모자치를 하겠다는 학교를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난 학부모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저는 나름대로 학교에 가려고 마음을 먹은 학부모예요.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 때) 학교에 가면 중앙에서 방송으로 하는 행사를 보고, 역할을 정하고,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어떻게 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학부모) 역할을 정하는 것을 주로 했어요. 역할이 없으면 학부모가 학교에 가는 게 편하지 않아요. -A학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