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배우는 곳이다. 학생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배우고, 교직원은 학생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학교에 와서 교육주체로 서려면 배움이 필요하다. 현재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은 주로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만들어 운영한다. 학부모회가 학부모들의 의견을 조사하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학교가 예산과 장소를 제공하는 형태가 많다. 학부모회가 제대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학교에서는 학부모 업무 담당교사가 계획부터 결산까지 모두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은 자녀 공부법 강좌, 취미 활동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학교교육과 관련된 활동이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활동을 했더라도 그 결과가 학교교육에 반영되었을지는 의문이다. 학교는 학부모가 가정에서 아이를 잘 키우기를 바라면서 계몽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학교 철학, 학교교육과정 등 핵심적인 내용은 비껴가고 공예품 만들기, 김장해서 전달하기 등 변죽만 울리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주로 1회성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학부모교육이 일부 학부모만을 대상으로 단편적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터뷰한 학부모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초등학교에서 들었던 학부모교육은 부모교육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강사가 와서 강의하는 형태였어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시간이 다였어요. 한 번에 많은 학부모들이 모여서 강의를 들었는데, 그 이후 모임이 이어지지 않아 그게 끝이었죠. -A학부모
처음부터 학교자치와 학부모자치를 이해하고 교육주체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는 드물다. 학부모도 교육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독일은 학부모와 교사가 협동해야 학교 교육이 성공할 수 있음을 20세기 초반부터 인지하고 학부모 참여, 학부모 활동, 학부모교육을 실시하였다. 독일에서 1970년대 부모 자격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2000년대에는 이민자,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을 위한 학부모 지원에 힘쓰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대만은 2003년 가정교육법을 제정해 행정기관이 부모교육을 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이러한 교육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부모교육이 강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부모교육에 대한 접근은 크게 부모교육, 평생교육, 학교참여교육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학부모는 이러한 교육을 통해 부모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며, 교육주체로 성장한다.
학부모교육은 나에 대한 이해, 우리에 대한 이해, 학교에 대한 이해로 넓어지면 좋다. 이 중 반드시 학부모가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 덕양중학교에서는 ‘이슬비 사랑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 교실의 교사는 교장으로, 학부모가 가진 ‘내면 아이’를 발견하게 하여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 ‘내 자녀’의 문제를 ‘모든 자녀’의 문제로 함께 생각하게 한다. 이후 학부모들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자신들이 할 일을 찾아 나섰고, 선배 학부모가 후배 학부모를 교육하는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다.
덕양중 학부모교실은 특별한 조건에서 만들어졌지만 몇 가지 배울 점이 있다. 첫 번째로 학부모교육은 학부모의 자기 이해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는 애니어그램, MBTI 같은 성격 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내면까지 들어가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자신을 알아야 다른 사람이 보이는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두 번째로 학부모교육은 학교장이 주도해야 한다. 교사는 수업과 교육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 담임과 수업을 맡은 교사는 학부모와 현실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편한 관계를 만들기 쉽지 않다. 학교장은 학부모가 대화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고 노력하면 학부모가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교장인 경우가 많다. 절실한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다. 세 번째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부모교육은 학교 교육과정과 연결되어 학생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회복적 생활교육 강의를 수강한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학급 별로 ‘회복적 정서지원단’을 구성하여 아이들의 상담사 역할을 하였다.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학교와 학생들의 미래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학생 교육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학부모 활동도 학교와 교실에서 지속적으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교육 활동에 참여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학부모가 교육과정, 예산, 인사 등 학교의 주요 의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교육 활동에 참여하면 좋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는 학교의 교육철학을 이해하고, 교사의 교육 방식을 존중하며, 새로운 의견을 학교에 제안할 수 있다.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참여를 바탕으로 한 대안의 제시는 학교자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학부모도 스스로 학교 일에 주체로 참여할지, 객체로 개입할지 생각해야 한다. 참여(participation)가 학부모 자신이 학교공동체 일원으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학교 교육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개입(involvement)은 자녀의 부모라는 제한된 관념 속에서 수동적으로 학교 운영에 일시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부모는 시민으로서 교육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다하고, 학교 교육의 동반자로서 활동하며,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소수 학교의 이야기지만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학교를 만들어가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우학교는 100인의 공동 설립자가 설립 주체가 되어 2003년 개교하였다. 학교 운영은 학부모 위원회를 중심으로 삼고 교과지원위원회, 교육문화위원회, 지역연대위원회, 급식위원회, 도서관위원회, 달콤샘위원회, 환경안전위원회를 두었다. 모든 학부모는 7개의 위원회 중 한 개 이상 참여해 활동을 하면서 유대감을 쌓고, 공동체성을 기른다. 위원회 이외에도 여러 개의 학부모 동아리도 있어 학부모가 교육주체로 학교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