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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Dec 26. 2020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Tallulah)' 감상기

  첫 아이를 만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참 많이 다퉜다. 지금은 무슨 일로 싸웠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심각했다. 나는 모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인이 아이를 먹이고, 재우며, 씻기는 과정을 주도했고 나는 거들뿐이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면서 아침에 일찍 나가고 퇴근은 늦어졌다. 나의 태도에 싸움은 잦아졌고, 목소리는 커졌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다. 2015년 3월부터 1년간 딸아이와 함께 하게 되었다.


  딸아이와 오로지 둘이서만 함께하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셋이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이는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모양만 하게 되었고, 체육복을 교복처럼 입혔으며, 볶음밥이 주식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나쁜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만 했을 뿐 좋은 것을 줄 수 없었다. 악의가 아니라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본 다른 아이와 부모의 행동을 나와 비교하면서 그런 감정이 들게 되었다. 또래보다 걷고, 말하는 것이 느렸던 딸의 행동이 내 잘못 같이 느껴졌다. 영화 <탈룰라>의 ‘캐롤린’이 바로 나였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작가인 시안 헤더(Sider Header)가 처음 감독을 맡고, <주노>의 엘리엇 페이지가 유괴범을 연기한 <탈룰라>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겹쳐서 전개된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처한 상황 따라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가족 관계가 덜컥거리는 사람은 마고에게, 육아에 지친 사람은 캐롤린에게,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은 탈룰라에게. 나에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탈룰라’가 아니라 ‘캐롤린’이다. 아이 앞에서 담배와 술을 즐기고, 딸을 두고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등 겉으로 보이는 캐롤린의 행동을 보면서 나 역시 비난했다. 그러나 아이가 바닥에 실수를 하자 울면서 토해내는 말에서 그녀의 진심이 엿보았다.  


  “아이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 얼마나 힘들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어. 모든 사람들이 잘하기 때문에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 TV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만 난 못해. 난 정말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는 아이를 낳고 책을 보고 다른 사람 조언도 듣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맞지 않는데 사회는 그것을 강요한다. 탈룰라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나가자 “사이코”라는 말로 비난한다. 한 사람이 이상하다면 먼저 비난하기보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캐롤린은 자신이 육아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죄책감을 고백한다. 술에 취해 호텔방에 들어와 “아이가 나를 원하지 않아”라고 두 번 말하고 침대에 쓰러진다. 마고에게 "애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했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끔찍한 인간이었음을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술에서 깬 그녀가 “매디슨”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한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육아를 잘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다. 사랑에 서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데 서툰 사람이 존재한다.




  캐롤린을 비난하던 탈룰라도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한다. 충동적으로 아이를 호텔에서 데리고 나와 남자 친구 어머니(마고)의 집으로 가서 같이 생활하게 된다. 탈룰라는 떠나려고 했지만 아이가 눈에 밟혀 가지 못하고 차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만난 마고는 탈룰라를 찾아 야단친다.


마고: 애를 혼자 두면 위험해! 누가 안 가르쳐줘?
탈룰라: ‘엄마 놀이’는 혼자 터득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마고: 넌 정말 대책이 없구나
탈룰라: 나도 알아요
마고: 애가 지금껏 살아남은 게 용하네. 아동보호국에 전화할까 싶어.
탈룰라: 제길, 난 처음이라고요!
마고: 그럼 물어봐, 탈룰라! 다들 물어보며 배우는 거야!
탈룰라: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


  모성을 가진 여성이 아이를 잘 키워야 함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 인간을 파괴할 수 있다. 영화 <툴리>의 ‘마를로’는 세 아이를 도맡아 키우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과거의 자신을 불러온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는 여행가이지만 아이를 낳은 후 자신의 삶이 버려졌고, 육아를 하면서 표정이 사라졌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범인의 어머니 수 클리보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자신이 아들을 키우는 데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남자가 아이를 키울 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남자의 육아 휴직은 더 고립된다. 내가 육아 휴직을 했을 때 책을 내고 강의를 다니던 커리어는 끊어졌고, 육아의 고충을 나눌 주변 친구는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여기저기 서성대거나 놀이터에 아이를 풀어놓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개선될까 하는 기대에 지역 교육 센터에 문을 두드렸지만 한 시간 동안만 친구일 뿐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집 앞 도서관에 가서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실용 육아 서적에서 교육 철학을 만들 수 있는 책까지 가리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새롭게 아이를 맞이하는 부모는 그 소중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만 한다. 기계를 들이면 사용법을 익힌다. 하물며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더 어렵다. 아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존재가 된다. 신체가 변하고 뇌가 바뀐다. 날마다 다시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자격을 갖춘 사람만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될 수 있다. 교사보다 훨씬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는 그 능력의 검증 없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자신이 자라 온대로 아이를 키우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그 방식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조금 더 다르게 키우길 원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정보를 얻고자 한다. 이전 세대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맘카페와 같은 인터넷 자료를 보기도 하는 데 그것이 정확하지 않다. 육아서를 섭렵하는 부모도 있는데 책에 있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판단해야 한다. 개인적 경험인지,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인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최근 심리학, 뇌과학 등의 발달로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여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 공부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해서 사랑하게 된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가 항상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활이기 때문에 좋을 때와 나쁠 때가 공존한다. 육아 공부는 아이가 좋지 않게 보일 때 큰 도움이 된다. 왜 우는지 이해하고, 부정적 행동을 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둘째, 육아에 대해 공부하면 나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서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여유 있고 똑똑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는 것은 훌륭하게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라 성장해 가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육아가 힘든 이유는 자신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놀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녁 7시에 아이를 재우기 위해 11시에 자는 습관을 버려야 했고, 음식은 싱겁게만 만들어야 하며, 아이가 토해도 되는 옷만 입게 되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며 적응하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육아를 맡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모임을 찾거나, 취미 활동을 하거나, 관심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정기적으로 해야 나를 찾을 수 있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마음에 아이를 사랑할 공간이 만들어진다.


  한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먼저 나타날 수 있고,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하나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팔, 다리를 허우적대면서 격렬히 환영한다. 내 인생에서 나의 귀가를 이렇게 반기는 존재는 처음이다. 그들의 행동이 내 마음에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하나는 유모차를 끌 때이다. 여름 산책에서 햇빛이 비치자 내가 자연스럽게 몸으로 아이에게 비치는 햇빛을 가려줬다. 아이의 괴로움을 내가 대신 느껴도 되는 즐거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음 노래 가서 첫 구절처럼 간밤에 아무 일 없이 잘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다행이고 사랑스럽다.




Still fighting it

                                - Ben folds

Good morning, son.

I am a bird

Wearing a brown polyester shirt

You want a coke?

Maybe some fries?

The roast beef combo’s only $9.95

It’s okay, you don’t have to pay

I’ve got all change


잘 잤니, 아들아

아빠는 한 마리 새란다

갈색 셔츠를 입은 새

콜라 사줄까?

감자튀김 먹을래?

소고기 콤보는 9.95달러 밖에 안 하네

걱정하지마

넌 돈 낼 필요 없으니까

아빠한테 돈 있단다


Everybody knows

It hurts to grow up

And everybody does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Let me tell you what

The years go on and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And you’re so much like me

I’m sorry


다들 알고 있지

어른이 되기 위해 아파야 한다는 걸

그래도 다들 잘 견뎌

다시 여기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하구나

해줄 말이 있어

세월이 흘러도

계속 힘겹다는 걸

계속 싸워야만 한다는 걸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Good morning, son

In twenty years from now

Maybe we’ll both sit down and have a few beers

And I can tell you bout today

And how I picked you up and everything changed

It was pain

Sunny days and rain

I knew you’d feel the same things


잘 잤니, 아들

20년쯤 지나서

너와 함께 앉아 맥주 한 잔 하게 되면

오늘에 대해 말해 줄게

너를 내 품에 안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고

힘들었다고

맑은 날도 있었고 궂은 날도 있었다고

언젠가 너도 같은 감정을 느끼겠지


Everybody knows

It hurts to grow up

And everybody does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Let me tell you what

The years go on and

We’re still fighting it, we’re still fighting it

You’ll try and try and one day you’ll fly

Away from me


다들 알고 있지

어른이 되기 위해 아파야 한다는 걸

그래도 다들 잘 견뎌

다시 여기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하구나

해줄 말이 있어

세월이 흘러도

계속 힘겹다는 걸

계속 싸워야만 한다는 걸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내게서 멀리 날아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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