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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Jan 12. 2021

부모의 조각들

넷플릭스 영화 <그녀의 조각들> 리뷰

아이라는 존재는 참 오묘하다.

같이 있는 사람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다가 힘들게 하고, 울게 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아이는 존재만으로 우리의 감정을 회오리치게 한다.

그렇다면 그 존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응답하는 영화가 바로 <그녀의 조각들>이다.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풀어냈다.


초반 집에서 출산하는 장면에 대한 연출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출산을 앞둔 여성의 진통이 내 몸을 관통하고

아이 건강에 대한 급박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도 두 아이를 출산을 지켜봤지만

병원의 통제된 상황에서 지시대로 움직였던 경험과는 사뭇 달랐다.

 



30분의 러닝 타임이 흐르고

영화의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마사(바네사 커비)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과 시선 때문에 받는 고통이 느껴진다.


직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바뀌었고

눈치 없는 엄마의 친구는 위로랍시고 그녀를 20분 동안 붙잡고 충고한다.

엄마는 기억도 나지 않을 유아 때 위기를 이겨냈던 일을 토해내며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로 소송하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대로 아이를 보내주고자 한다.

아이의 장기를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의학용으로 시신을 기증한다.

법정에서 조산사도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랐고, 그렇게 행동했다고 증언한다.

그 과정에서 마사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스스로 극복한다.




그러나 마사가 회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남편 숀(샤이아 라보프)과의 관계이다.

둘은 충돌하다 결국 헤어진다.

많은 작품에서 아이를 잃은 부부의 무너짐을 표현해왔다.  


드라마 <연애시대>의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지 않았지만 결혼은 유지하지 못했다.

첫 아이가 떠났을 때 은호는 남편인 동진이 자기 곁에 없었다는 것에 실망했고

그 감정은 이별로 이어졌다.

그때 동진은 어디 있었을까?

그 순간 동진은 차가워진 아이에게 온기를 불어넣으며 현실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바로 몸으로 느끼고 슬프겠지만

남성은 그 감정까지 가기 어렵다.

사산된 아이를 위해 처리해야 할 서류 작업을 있고

장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지 등

위로를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남편도 아이를 잃은 부모다.

마사는 엄마, 언니 등 감정을 나눌 사람이 있었지만 숀은 그렇지 못했다.

부인이 닫은 방 문 앞에서 “나도 아이가 그리워”라고 흐느껴 울 때

그에게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행히도

숀은 부정한 방법으로 그 상실을 해소할 뿐이었고

장모에게 떠나 달라는 부탁을 들으면서

혼자 남겨져 있게 되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숀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에서 표현되지 않은 숀의 삶은 아마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케이시 에플렉, 위 사진)'와 같았을 것이다.

리는 화재 사고로 두 딸을 잃은 뒤 부인과 헤어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표류한다.

술집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하고, 다른 여성의 관심에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맥주를 사러 나가면서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고 안전망을 치지 않아 불이 낫기 때문이다.

그 사고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실수로 그랬으니 처벌받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경찰의 총을 빼앗아 자기 머리에 겨눈다.

스스로를 벌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사건 이후 아픔과 죄책감이 그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누군가 옆에 있지 않았으면 리는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유일한 혈육인 형은 그런 동생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난다.

자신 아들의 후견인으로 그를 지정한 것이다.

처음에 리는 조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하지만

추운 날씨에 땅이 얼어 형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조카와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리는 점점 일상을 회복한다.




나는 숀이 고향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치며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으면 살 이유가 생긴다’라는 말의 힘을 믿는다.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매년 새로운 사람을 수 백 명 만난다.

내가 학생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는 주변을 보고 판단한다.

부모님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지,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있는지 살핀다.

감정적으로 아이가 홀로 남겨져 있다면 그의 편이 되어준다.


이 영화의 완성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된 영화의 제목이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

‘부모의 조각들(Pieces of Parents)’




         유리창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거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조선지광” 89호, 19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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