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과 지혜로운 동행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경기도 학교자치 조례가 추구하는 목적은 비슷하다. 세 지역의 학교에서 조례를 적용해 학교를 운영할 때 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조례에 언급된 내용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예상할 필요가 있다. 법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학교 자치가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학교자치 조례는 학교자치의 주체를 학생, 학부모, 교직원으로 정하고 학교장은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 학교의 현실, 학교장의 법적 지위, 학교자치 조례의 내용을 고려할 때 교육주체와 학교장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학교자치의 성패를 좌우한다.
초・중등교육법 20조에 의하면 학교장은 교무 통할권, 교직원 지도·감독권, 학생 교육권 등 학교 내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졌다. 교장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학교마다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하였지만, 권한에 따른 책임은 자유로운 학교 운영을 위축하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은 그것을 가진 사람의 의지와 성향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는 방식이 결정되는 원인이 되었다.
학교구성원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학교자치를 위한 권한들이 학교로 위임되었을 때 우려되는 점이 업무 증가 27.4%, 학교장 위주의 학교운영 23.7%, 구성원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 23.3% 순으로 조사되었다(손동빈 외, 「혁신미래학교의 토대로서 학교자치 실현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구성원은 ‘학교자치가 실시되면 교장이 학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라북도 조례에는 학교장의 권한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나 나머지 조례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학교장이 수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된 내용을 존중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해야 할 상황은 학교장이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자치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교내 협의체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한 내용이 학교장에 의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구성원들은 회의감을 느낀다.
그런데 교장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입장을 바꿔 책임을 나 혼자 온전히 져야 한다면 결정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학교 일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교장이 지는 상황에서 학교 자치기구들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렇다면 좌절하고 그만둘 것인가? 아니다. 방법을 찾아보자.
교장도 사람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것이 좋다. 학교자치기구에서 나온 안건에 대한 교장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자. 이전과 다른 점은 교장의 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장의 말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주장이 현실적인가? 지속 가능한가? 우리 학교에 맞는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수정한다.
교장의 말로 시작해서 수정안이 나왔는데도 교장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교직원 외에 다양한 학교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교육 전문가 등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다. 광주광역시 조례에 언급된 학교자치회의가 미리 구성되면 좋다. 그 자리에서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들으면 교장도 쉽게 자신의 주장을 고수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학생, 학부모의 의견에 따라 수정안을 다시 고칠 수도 있다. 교장은 학교자치기구 회의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학교구성원과 교장이 합의 과정을 함께 하면 별도로 학교장의 결재 없이 학교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교장이 주장을 고수한다면 다음을 기약하자. 다음 안건에서 다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사람은 인정 욕구가 있기 때문에 계속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다음 사람을 기다리자. 교장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다음 교장과 민주적인 방식으로 합의를 해나갈 방법을 준비하고 있자.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