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로
2019년 학교자치 조례가 공포되자 교육청은 단위 학교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 설치 현황을 조사하였다. 보고를 위해 학교에서는 급하게 각 기구의 임원을 뽑고 규정을 만들었다. 조례의 의도와는 다르게 실제 회의에서는 각종 위원회와 기구에 참여할 사람을 선정하고 학사일정, 행사 진행 여부 등 동의가 필요한 안건이 주로 논의되었다. 회의는 활발한 토론보다는 빨리 다수결로 결론을 내서 절차적 정당성을 얻는 방식을 따랐다.
수업 시간에 배운 민주주의에 대해 떠올려보자.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정은 인구가 많아지고 공동체가 커지면서 모든 사람이 모일 수 없게 되자 국민이 뽑은 대표가 국정을 운영하는 대의제로 바뀌었다. 대의제는 효율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지만 국민들의 정확한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여건과 상황이 된다며 모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학교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첫째, 학교구성원의 수는 1,000명 내외이고, 학급으로 조직되어 있다. 운동장에 모두 모일 수 있고, 학급 단위로 생각을 모을 수 있어 학교구성원 전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둘째, 학생과 학부모는 한 집에서 항상 같이 있고, 학생과 교직원은 학교와 교실이라는 한 공간에, 일주일에 5일 동안, 6시간 이상 함께 생활한다. 언제든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셋째, ‘학교생활’이라는 공동의 관심사가 있고, 제도나 규정의 변화로 구성원들의 생활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면 실시하는 것이 맞다. 학교자치를 학교에서 실행할 때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와 같은 회의체를 조직하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학교 생활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펼쳐져야 하고, 그 자리에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라고 루소가 지적한 민주주의의 한계에 동의한다.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자치는 정치를 넘어서는 생활이다. 존 듀이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삶의 양식으로 표현되고 공동생활의 형식으로 규정되며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여겨져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치가 절차적 정당성을 얻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의 민주주의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학교자치는 학교에서 자기 언어로 말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서 들어야 한다. 능력이 모자라고 무언가 결핍되었더라도 모든 학교구성원을 같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소중히 여기고, 부족한 점을 함께 채워가는 것이 민주주의와 자치의 근본적인 지향점이다. 학교구성원 각각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여러 사람이 만든 다른 일상이 비슷한 크기로 여겨지면 좋다. 학교자치를 통해 모두의 일상이 존중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