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자치의 쟁점 4

민주주의 정원사로서 교육청

by 숟가락

학교에서 민주주의나 자치를 외치면 외로워진다. 내가 그랬다. 첫 학교에서 교무회의 시간에 전달 위주의 회의 대신 주제를 중심으로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자나 부장교사들은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교사들은 귀찮아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그만두지 않고 나에게 맞는 공동체를 찾아다녔다. 민주주의가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공동체를 찾았다. 10여 년 동안 6개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나의 소망을 실현하길 원했지만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

새로운 학교에 갈 때마다 민주주의와 자치를 원하는 교사가 많길 바랐다. 그러나 민주적인 구조로 학교가 운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학교 밖으로 나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교사들과 모임을 찾았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니 훨씬 쉬워졌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학교자치에서 행정기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해보겠다.


교육 정책이 시행될 때 교육청은 시범학교나 연구학교를 지정해 우선 실시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연수를 열어 여러 학교에서 그것을 배워 실행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단위 학교가 할 일을 공문의 형태로 내려보낸다. 학교자치를 이런 방식으로 실시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자치는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자치’의 뜻이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인데 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이 결코 대신할 수 없다. 학교자치 조례가 발표되었다고 학교에서 자치가 저절로 실현되지도 않는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학교 내 자치기구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학교와 학교를 연결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다양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모이면 외롭지 않고 위로와 힘이 된다. 다른 경험을 토대로 해결방법을 서로 제안해줄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만나면 만날수록 학교자치는 발전한다.

이 만남을 교육청에서 제도로 만들면 좋다. ‘학교자치 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지역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3~4개의 학교를 묶어 학교자치기구 구성원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돕는다. 여기에서 행정기관이 더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 있다.

단순히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업무를 교육청이 담당해야 한다.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물색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참여자들에게 공지하고, 회의를 진행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는 등 만남을 위한 행정 절차나 세부적인 일을 교육청이 나서서 해야 여러 학교 사람들이 부담을 갖지 않고 만날 수 있다. 만약 기존처럼 교육청이 공문을 통해서 지침을 내리기만 하고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각 학교는 하는 ‘척’ 할 것이다.

회의 후 각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진행 상황을 교육청에서 점검할 필요도 있다. 학교자치 클러스터에서 협의한 내용이 단위 학교에서 시행되려면 학교장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관리자가 그 내용을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묵살되거나 갈등이 발생한다. 그때 교육청이 중재자로 나서서 협의 내용을 학교구성원들에게 설명하고 실행 과정을 점검하면 진행이 원활해진다. 특히 관리자들은 교육청이 나설 때 비민주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학교 내 권력 남용을 견제할 역할을 교육청이 담당하면 좋다.


민주주의를 정원에 비유한 책(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민주주의의 정원』) 이런 구절이 와닿았다.

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교육청이 민주주의 정원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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