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역사교사가 된 지 15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올해 42살이고 평교사는 대부분 62살 정년까지 버티지 못하고 명예퇴직의 형태로 일찍 학교를 떠나니 교사 생활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15년 동안 5개 지역에서 근무하고, 6개의 학교를 경험하고, 3년 휴직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2006년도의 저와 2021년도의 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지난 교사 생활은 역사교사의 정체성이 옅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초임 교사 때는 4월에 4.19 혁명, 5월에 5.18 민주화 운동, 6월에 민주항쟁과 관련된 계기수업을 꼭 챙겨서 했습니다. 역사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도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신념을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날 학생부에서 학생들 교복 착용이 불량하니 담임교사가 꼭 아침에 점검하라고 하더군요. 그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제 행동이 문득 독재 정권 때 경찰이 복장 단속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을 통해 민주주의 역사를 아무리 잘 전달해도 생활하는 공간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날부터 교실을 민주적인 공동체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조례 대신 학급회의를 열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방식을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이해할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과 만나지만 마음 한쪽에는 죄의식이 있습니다. 역사수업에서 아이들을 주로 보는데 역사교육학에서 제시하는 역사교사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교육의 중요한 목적인 역사적 사고력을 키워줘야 하고 교육과정, 성취기준, 교과서 등을 분석해 수업을 구성하고 사료, 책, 영상 등 다양한 학습 자료를 활용할 줄 알고, 학습과정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잘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나는 좋은 역사교사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역사교육 이론가를 꿈꿨던 적이 있습니다. 평일에는 퇴근하자마자 대학원으로 향하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논문을 읽으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석사 논문을 제출하면서 이론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포기는 학자가 되기 부족한 저의 능력을 마주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역사교육 이론가와 역사교육 실천가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역사교육 이론가는 역사학, 교육학, 역사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론가는 역사학에서 연구한 내용을 교육적으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찾습니다. 학문적으로 논리적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화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반면 역사교육 실천가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학생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학부모에게 학생에 대해 묻기도 하며, 그들을 가르쳤던 교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교사가 사용하는 여러 수업 도구 중 그들에게 맞는 수업 방법을 찾습니다. 때로는 사용한 방식이 맞지 않아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나는 아이들은 위한 수업을 계속 고민합니다. 매일 만나는 학생이 다르기 때문에 수업을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역사교육 이론가와 실천가 사이의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은 개인적인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론가의 눈을 장착하니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연구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제가 설정한 수업 설계를 적용해 수업을 진행하면서 잘 따라오는 학생만 주목했습니다. 제 가설을 증명할 만한 결과물만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이론에 파묻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아이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물어봤습니다. 아이들의 대답 속에서 제가 할 일을 찾았습니다. 역사교사에서 교사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