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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Sep 06. 2022

착한 마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의 선함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 이상한 믿음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만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충만해지고, 새로운 존재를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연인을 위해서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이를 위해서는 '은하(galaxy)'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착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울면 처음에는 좋은 태도로 달래다가,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슬슬 ‘짜증’이 올라옵니다. 짜증을 잘 숨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내 마음을 모르고 계속 울면 ‘분노’가 치밉니다. 어린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없을 때는, 내가 가진 부모의 자격에 대한 자책이 일어나고 그것은 ‘우울’이란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이러한 악순환을 고쳐나간 방법은 육아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육아서들이 있지만 저는 저자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 때만 믿었습니다. 계속 공부하다 보니 육아 이론의 발전은 ‘뇌과학’의 연구 성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뇌가 성장하는 과정이 규명되면서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행동의 이유를 알 때마다 아이가 새롭게 보입니다. 우는 행위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공부를 하니 제가 견디기가 수월해졌습니다.


어린 쥐에게 새로운 장난감들을 계속 공급하여 발로 차고 냄새 맡고 올라가도록 한다면 전기적 활동도가 증가되어 체성감각영역이 점점 커지게 된다. 같은 장난감을 계속 우리에 두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대뇌겉질은 축소된다. 하지만 2주에 한 번씩이라도 장난감을 바꿔주면 대뇌겉질의 영역 확장은 계속된다. _리즈 엘리엇,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부분을 읽고 하나의 장난감을 오래 가지고 놀지 못하는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빌려서 단기간 사용하게 하자, 경제적 부담이 줄고 아이도 즐겁게 놀았습니다.


아들의 뇌량은 가늘고 길기 때문에 좌뇌와 우뇌 간의 정보 교환이 빠르지 않은 데다가 많은 양이 오고 가지를 못합니다. 그로 인해 아들은 딸보다 눈치도 빠르지 않으며 자기 생각에 빠져 있거나 산만하게 보이기 쉽죠. 조리 있게 많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서 혼을 쏙 빼놓는 딸의 행동과 아들이 영 딴판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뇌량의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_곽윤정, 아들의 뇌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입니다. 딸, 아들을 키울 때의 경험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내가 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독서 후 아들의 정신없어 보이는 행동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는 교사로서 학교에서 특별한 학생을 만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올해 초 조현병이 의심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눴는데 이제까지 제가 만난 학생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제가 담임을 맡지는 않았지만 그 학생을 이해하고 싶어 론 파워스가 쓴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와 E. 풀러 토리의 <조현병의 모든 것Surviving Schizophrenia>을 읽었습니다.


  미국 유명 작가인 론 파워스는 조현병에 걸린 두 아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버리고, "미친 사람에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현병에 걸린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조현병의 모든 것>을 읽으니 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시기별 증상, 행위별 적절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학생을 다시 만나니 그의 이야기 속에서 망상, 환각, 사고장애 등 책에서 봤던 특징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의 논리적 패턴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니 아이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학생을 만났을 때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공부를 하고 나니 정리가 되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도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통합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과학적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교사는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을 따로 마련하고, 새로운 수업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수업의 임상적 접근'은 장애 학생뿐 아니라 비장애 학생에게도 필요합니다.


특수교육 공부를 하며 느꼈던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개별 학생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반교육은 집단교육을 하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아이들에 맞추어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특수교육은 개별 학생에 대해 관찰하고 그에 따른 교육적 처방을 내려 아이에게 맞는 수업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이것을 ‘수업의 임상적 접근’이라고 한다. 임상은 원래 의사나 상담가가 환자나 내담자의 치료와 상담을 목적으로 병상에 임하는 일을 말한다. 의사가 병상에서 임상을 하듯 교사는 교실에서 개별 학생에 대한 사례를 연구한 후 교육활동을 한다. 나는 ‘수업의 임상적 접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일반교육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이 아이들도 배움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으려면 임상적 접근을 통한 개별화 교육은 필수다. 집단교육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별화 교육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비단 우리 반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반도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학교를 가든 어느 학급을 맡든 통합교육은 결국 교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_민들레 134


  장애를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사회적 관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형성된 사회적 장벽을 당장 허물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걷지 못해 불편을 겪는 사람을 한 번 도와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같이 생활해야 하는 것까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10년이 넘는 장기간의 돌봄이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착한 마음은 일시적이지만 과학은 오래갑니다. 착한 마음은 '동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과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이 장애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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