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mentalization의 중요성
나는 "프로과몰입러"이다.
영화나 책을 볼 때면 항상 주인공과 동일시해서 사건을 같이 경험한다. 그가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그가 슬퍼하면 나도 기분이 울적해지고 그렇게 말이다. 어떻게 보면 공감 능력이 좋다고 할 수 있으나, 모든 것은 과하면 사달이 날 수도 있다.
과몰입을 잘하는 것은 문화생활을 즐길 때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과업중심적인 성격에 과몰입적인 성격이 더해지면 그 시너지는 배가 된다.
대학생 시절, 영 알리안츠라는 대외활동을 할 때 일이다. 전국 약 2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마케팅 세미나" 준비를 위해 매일같이 평택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심지어 당시 대외활동을 담당하는 대행사까지 자진해서 찾아가 그곳에서 기획서를 만들고 진행사항을 체크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세미나를 마쳤으며, 그때부터 마케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지금까지 이 일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과몰입 성격이 일군 멋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성격으로 인해 곤경에 빠졌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 없듯이 모든 회사와 마음이 맞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각 각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존재하듯이 회사도 그 회사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존재한다. 이것이 일치하면 큰 시너지가 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건이 최근 나에게도 벌어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마케팅하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한 브랜드를 키우고 알린 지 1년이 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스타트업 회사이기에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이전까지는 납득이 가는 선에서의 에피소드였다. 그러다 최근,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벗어나는 사건들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멘붕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멘붕현상은 회사에서만 존재해야 했으나, 일상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프로과몰입러 성격이 어딜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상황은 거기에서만 고민하고, 그 외의 일상에선 평소처럼 살아가야 정상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회사에서의 몰입된 감정과 생각은 우울감이 되어 일상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고민은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재미를 붙인 글쓰기의 영역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최근에 다시 글쓰기 커뮤니티(a.k.a 오글클)가 시작되었고, 이번 주 일요일까지 작성해야 하는 글이 있었다. 그러나 목요일이 되기까지 단 한 줄도 작성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의 고민이 우울감이 되어 나의 일상을 침범한 것을 넘어 이제는 글쓰기에 대한 영감마저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던 중 재미난 것을 발견하게 된다.
EO 뉴스레터를 보다가 웨이브 엔터테인먼트 창업가 "타일러 라쉬"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우리에겐 "비정상회담 타일러"로 익숙한 인물이지만 말이다. 그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영상을 보면, "개인으로서의 타일러와 매체(방송인)에서의 타일러가 다를 수밖에 없기에 구분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재미난 접근법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Compartmentalization(자아 분리와 같은 접근법)은 심리적으로 우리의 자아를 상황이나 행동에 따라 분리시켜 내가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건 나의 전부가 아니며, 그 상황에 있는 나랑 지금의 나랑 다른 객체라고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할 때 업무적으로 해야 되지만, 나 스스로 그렇게 동의하지 않을 때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이게 옳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시키셨기에 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즉, 직원으로서의 타일러가 하고 있지만, 개인으로서의 타일러는 이것을 해 주고 싶어 하진 않다는 이야기다. 프로과몰입러인 나에게 너무나도 유용한 접근법이었다.
사실 내가 최근에 처한 멘붕은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회사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무조건 동조해야 한다는 프로과몰입러적인 생각에서 발생했다. 그 둘은 굳이 일치시킬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인정하면서 존중해 주면 되는 것이다. 분리하지 않고 동조해서는 이 멘붕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그것을 계속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Compartmentalization을 잘해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나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각자의 영역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분되어야 한다. 분리한다고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며, 프로과몰입적인 나의 성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이러한 Compartmentalization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단수의 영역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가정에서의 내가 있으며, 직장에서의 나, 글쓰기 하는 나, 덕질하는 나 등 복수의 나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복수의 영역에서 각자의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Compartmentalization 하는 접근법은 필수적이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다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까지는 머릿속으로는 100프로 공감하고 이해했으나, 다시 회사 가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 또 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Compartmentalization를 생각하면 이전보다는 타격이 덜 할 것은 분명하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인사이트를 주었길 고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