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공학을 거스른, 그러나 완벽한 응축의 미학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무려 세 대나 있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 그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아내의 와인 셀러, 그리고 거실 한구석을 묵직하게 지키고 있는 나의 대형 전자 제습함이다. 아내의 냉장고가 포도의 풍미를 적정한 온도로 잠가둔다면, 거실에 놓인 내 냉장고는 습기를 통제해 광학 유리와 금속 부품의 시간을 부식되지 않게 지켜준다.
거실 소파에 앉아 제습함의 투명한 유리문 너머를 바라본다. 그곳에 최신형 디지털 기기는 단 하나도 없다. 대신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육중한 필름 카메라들이 차가운 금속성을 뽐내며 도열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늘 가장 구석진 자리다. 그곳에 나의 가장 작고 단단한 보석, 독일에서 만든 초기형 롤라이 35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기계를 손바닥에 올릴 때마다 1966년 독일 포토키나 박람회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당시 롤라이 35가 처음 베일을 벗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다. 고작 담뱃갑만 한 크기에 35mm 풀 프레임 필름을 담아낸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압도한 것은 그 비좁은 공간에 셔터와 노출계, 고성능 렌즈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겨 넣은 집요하고도 광적인 패키징 기술이었다. 설계자 하인츠 바스케는 최소 부피라는 절대적 목표를 위해 기존 카메라 설계의 모든 문법을 파괴하고 문자 그대로 제로 베이스에서 설계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카메라라면 으레 셔터와 와인딩 레버, 리와인드 크랭크와 플래시 슈가 모두 상판에 모여 있다. 손이 가장 자연스럽게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스케에게 상단의 여유 공간은 사치이자 낭비였다. 그는 내부의 핵심 부품들이 차지하고 남은 아주 미세한 자투리 공간을 찾아 조작부들을 과감하게 재배치했다.
플래시 슈와 필름을 되감는 크랭크는 바닥으로 쫓겨났고, 와인딩 레버는 엉뚱하게도 왼손 위치로 옮겨졌다. 뷰파인더와 노출계 바늘이 상판의 알짜 자리를 이미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롤라이 35는 돌출된 부위 하나 없이 매끈하고 완벽한 직육면체의 조형미를 완성했지만, 사용자에게는 낯설고 기이한 조작 방식을 강요하게 되었다.
이 카메라의 백미는 렌즈를 앞으로 당겨 비틀어야만 비로소 셔터가 눌리는 독특한 메커니즘이다. 렌즈가 본체에 수납된 상태에서 셔터가 오작동해 내부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인데, 나는 촬영 전 치러야 하는 이 의식을 사랑한다. 경통을 뽑아 탁 하고 돌려 잠그는 그 기계적인 체결음과 단단한 손맛은 마치 "주인님, 이제 세상을 담을 준비가 되었습니다."라고 비장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롤라이 35의 목측식 초점 방식을 불편함이나 한계로 여긴다. 눈대중으로 거리를 맞춰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히려 가장 빠르고 정확한 스냅샷을 가능하게 한다. 조리개를 8이나 11까지 조여 심도를 확보하면 피사체부터 배경까지 모든 영역이 선명하게 맺히는 팬 포커스 구간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덕분에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자이스가 설계한 테사 렌즈 특유의 칼같은 해상력이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채우며 그날의 공기마저 베어낼 듯한 결과물을 선사한다.
가끔은 롤라이 35의 하단 슈에 보이그랜더 외장형 레인지파인더를 장착하곤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거리 맞추기 게임을 시작한다. '저 표지판까지는 대략 5미터쯤 되겠군' 하고 마음속으로 거리를 가늠해 본 뒤 레인지파인더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이중상을 합치시킨다. 거리계에 표시된 숫자가 방금 내가 짐작한 숫자와 정확히 일치할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한 쾌감. 그것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행위를 넘어 피사체와 나 사이의 공간감을 감각적으로 조율하는 일종의 튜닝 과정이다.
편리함이 곧 좋은 디자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롤라이 35는 사용자의 편의를 희생하면서까지 엔지니어가 추구했던 극한의 밀도와 그 고집스러움이 매력이다. 상단 창의 바늘을 맞춰 노출을 정하고,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 렌즈 끝을 돌린 뒤, 왼손으로 레버를 감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그 낯선 리듬. 이 번거로운 과정 덕분에 나는 셔터 한 번을 더 깊이 음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