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실버 구간의 작가일지도 모른다

브런치 수익 모델에 대한 어느 개발자의 단상

by TAFO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스마트폰 화면에 난생처음 보는 알림이 떴다.


새로운 응원 댓글이 달렸습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직 글이 몇 개 없어서 '유료 구독' 모델은 활성화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보통 독자의 행동 패턴은 비용이 들지 않는 '라이킷'이 대다수고, 조금 더 관심이 있으면 '팔로우'를 누르는 선에서 끝난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실제 화폐 가치가 포함된 '응원 댓글'이었다.


딱 한 명. 표본은 단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무게감은 수백 개의 좋아요와는 차원이 달랐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 무료로 볼 수 있는 글에 굳이 지갑을 열어 물리적인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


보통의 작가라면 "내 진심이 통했구나"라는 감성적인 충만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을지 모른다. 물론 나 역시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사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자, 개발자 특유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단순히 운이 아닌, 시스템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어떨까?'


사실 공학적으로 볼 때, 텍스트는 현시대에 가장 불리한 미디어 포맷이다.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을 보라. 화려한 영상 편집, 시선을 강탈하는 썸네일,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까지... 온갖 감각적 장치들이 독자의 뇌를 붙잡아둔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여기엔 현란한 편집 기술도, 웅장한 사운드도 없다. 오직 흰 배경 위에 검은 글자라는 앙상한 데이터만 존재할 뿐이다. 영상처럼 미사여구로 화장을 떡칠한다고 해서 본질이 가려지지 않는다. 재미없으면, 정보가 없으면 독자는 1초 만에 뒤로 가기를 누른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렵다. 이것은 감각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사유를 독자의 뇌에 직접 꽂아버리는 가장 원시적이고도 직관적인 정보 전달 프로토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가 가진 잠재력은 폭발적이다. 시각적·청각적 자극 없이 오직 '논리'와 '문장'만으로 타인을 설득해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도 높은,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 레버리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 고난이도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오랫동안 잘못 주입된 레거시 코드를 수정해야 한다. 바로 '예술'과 '돈'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다.


- 돈을 좇는다 = 속물, 상업주의, 영혼의 타락.

- 예술을 한다 = 고결함, 가난,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


그래서 우리는 흔히 "돈 생각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고 덕담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는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엔 돈이 안 되던 글, 사진, 음악 같은 순수 창작물들이 이제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자산이 되는 세상이다. 자본이 예술을 탐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규칙은 완전히 뒤집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공식 하나를 도출하게 된다.


이제 글을 써서 전업으로 먹고살고 싶다면, 즉 철저하게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작가는 인풋에 압도적인 퀄리티를 집어넣어야만 한다. 결국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설득하고 뒤흔들어야 한다'는 고차원적인 과제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예술의 퀄리티를 강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수익을 내지 못하는 대다수의 작가는 실패한 것인가?


데이터를 '수익 유무'라는 이진법으로만 해석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생태계를 보자. 게임으로 상금과 연봉을 버는 건, 전체 유저의 0.01%도 안 되는 극소수의 프로게이머(챌린저 티어)뿐이다.


그렇다면 그 아래, 우리 같은 수백만 명의 유저들이 하는 게임은 무의미한 데이터 낭비일까? 아니다.


브런치라는 전장에는 돈 외에도 다른 화폐가 유통된다. 바로 라이킷, 댓글, 구독, 공유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MMR(매치 메이킹 등급, 즉 진짜 내 실력)과도 같다.


돈이 최상위 랭커(프로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금'이라면, 라이킷과 댓글은 내 글의 전투력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랭크 점수'다. 독자가 하트를 누르는 행위는 내 논리에 설득당했다는 투표이자, 내 티어가 상승했다는 신호다.


즉, 우리는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의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공감이라는 점수를 기반으로,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는 거대한 랭크 게임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주 솔직해져야만 했다. '랭크 게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개발자라는 본캐 뒤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음악인으로서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음악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틈틈이 신곡을 낸다. 매달 통장에는 음원 수익, 저작권료, 실연료라는 명목으로 정산금이 꼬박꼬박 찍힌다. 물론 본업의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수익이 적어서가 문제라기보다는 지출이 문제다. 그동안 사 모은 악기와 고가의 장비들, 믹싱과 마스터링을 위해 결제한 수많은 플러그인 비용을 계산해 볼 때, 나의 음악 사업은 아마 평생을 가도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든 처참한 적자 상태일 것이다. (장비병은 불치병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나는 유튜브에 내 음악을 올릴 때마다 아주 꼼꼼하게 설정을 건드렸다.


[댓글 사용 안 함], [좋아요/싫어요 수 비공개].


나는 이 행위를 스스로에게 이렇게 합리화했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은 악플러들에게 감정 소모하기 싫어. 나는 불필요한 노이즈를 차단하고 순수하게 음악만 들려줄 거야."


하지만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그건 사실 평가에 대한 공포였다. 나는 내 음악이 시장의 냉혹한 채점표를 정면으로 받는 것이 두려웠다. 댓글이 '0개'일까 봐, 혹은 '싫어요'가 박힐까 봐 무서워서 아예 시스템적으로 피드백 루프를 끊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거대 자본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지 않는 이상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아.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야." 나는 내 진짜 티어(Tier)가 '실버'나 '브론즈'로 확정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 배치고사 시험지를 찢어버리고 도망친 겁쟁이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글쓰기라는 새로운 게임 앞에 섰다. 음악을 할 때처럼 똑같은 논리로 도망칠 것인가? “내 글은 고상해서 대중이 이해 못 해"라고 정신승리하며 댓글창을 닫아버릴 것인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발행 메뉴에 들어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브런치 생태계에서 소위 15분 칼서렌(게임 시작 15분 만에 '가망이 없다'며 누구보다 빠르게 항복 투표를 누르는 행위)이나 다름없다.


댓글창을 닫는다는 건, '응원 댓글' 기능을 스스로 비활성화하는 행위이자, 응원 순으로 결정되는 메인 노출 알고리즘의 수혜를 영원히 포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익 창출도, 트래픽 확장도 거부한 채 혼자 글을 쓴다? 랭크 게임에 접속해 놓고 AFK(Away From Keyboard,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수를 타며 아무것도 안 하는 트롤 행위)를 시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 방공호는 스스로 철거해야 했고, 내 글의 성적표는 만천하에 공개될 운명이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지만, 이제는 도망칠 구석이 없다.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는 위대한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들은 멘탈 관리의 선구자이자 통계학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게임을 수천 판씩 돌리면서 몸으로 깨달은 하나의 진리를 알고 있다. 바로 대수의 법칙이다.


우리는 흔히 "이번 판만 잘하면, 이번 글만 터지면 티어가 오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수많은 게이머들은 안다. 판수(글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초반의 '배치고사 대박(초심자의 행운)'이나 거품은 걷히고 데이터는 거짓말처럼 평균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내가 글을 매일 쓴다고 해서 내 티어가 무한정 우상향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이 쌓일수록 진짜 내 실력에 해당하는 티어로 아주 정확하게 '확정'되어 갈 뿐이다.


수많은 롤 유저들을 보라. 그들은 몇 년째 '실버'나 '골드' 구간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아무리 게임을 많이 해도 '페이커'가 될 수 없다는 걸 본인들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매일 밤 접속해서 게임을 즐긴다. 왜? 티어를 올리는 게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그 자체가 재미있으니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며 챌린저가 될 사람은 되고, 명예를 얻어 다이아가 될 사람은 된다. 그리고 나처럼 자기만족에 글을 쓰는 사람은 영원히 '실버'에 머물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음악처럼 평생 적자일 수도 있다. (원활한 글쓰기를 위해 맥북을 최신으로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성실히 연재를 하는 이유는 무조건적인 '상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분수에 맞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그 자리가 화려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옆자리가 아니라, 소박한 실버 구간의 어느 귀퉁이라도 상관없다. 내 글의 가격표가 얼마로 매겨지든, 나는 (강제로 열린) 댓글창을 마주하고 이 게임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도, 펜을 놓지 않고 즐겁게 '큐'를 돌리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의 채점표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실버 작가의 품격이다.


Nikon S2 / Nikkor 50mm f2 / Kentmere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