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이해한 걸까, 오해하지 않은 걸까

<멘사>에 대한 오해와 현실의 기록

by TAFO

고지능자 단체 멘사. 많은 사람에게 이 이름은 동경 혹은 냉소의 대상이다. 누군가는 세상을 구하는 엘리트 집단을 상상하고 누군가는 지적 허영심으로 뭉친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꼰다.


이 이름 앞에는 늘 양가적인 시선이 따라붙는다. 그 안에서 느끼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안도감은 실체 있는 위로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고립의 시작일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멘사라는 커뮤니티를 '이해'와 '오해'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멘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멘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체

멘사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조직을 둔 국제적인 고지능자 단체다.

자격

인구의 상위 2%에 해당하는 지능 지수를 공인된 테스트로 증명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목적

헌장에 명시된 공식 목적은 인류의 이익을 위한 지능의 식별 및 육성과 지능의 본질에 대한 연구 그리고 회원들에게 지적 사회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실적 동기

하지만 거창한 목적보다 대부분의 회원은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로 문을 두드린다. 멘사 역시 신규 회원에게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를 가장 큰 혜택으로 내세운다.

오해

멘사는 비밀 결사도 아니고 천재들의 학술원도 아니다. 그저 IQ 테스트라는 기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거대한 동호회에 가깝다.



안도감의 정체. 생각의 밀도가 비슷한 사람들


멘사라는 공간이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효용은 비슷한 생각의 밀도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듬어야 한다. 뜬금없는 공상이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주제는 일상의 대화에서 환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 복잡하게 뻗어 나가는 생각들을 가지치기하고, 가장 보편적인 화제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것은 사회화된 어른의 당연한 예의다.


반면 멘사 커뮤니티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기보다, 생각의 가지가 유난히 복잡하게 뻗어 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비약이 직관으로 대접받는다. A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Z로 튀어도, 그 사이의 생략된 맥락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남들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다.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의 안도감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효율성보다는, "나의 복잡함이 유별나게 취급받지 않는다"는 해방감에 가깝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강박이 이곳에서는 흠이 되지 않는다. 멘사가 주는 위로의 실체는 우월감이 아니라, 서로의 복잡한 머릿속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안전지대라는 데 있다.



현실. 생각의 속도는 같지만 삶의 방향은 다르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한다"는 안도감이 곧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깊은 유대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커뮤니티 안에도 세상과 똑같은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지적 성향의 차이다.

지능 검사는 특정한 패턴 인식 능력을 측정할 뿐이다. 같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직관적으로 전체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분석적으로 파고든다. 테스트 점수라는 숫자 하나로 묶기에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양하다. 결국 그 안에서도 성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다시 작은 그룹으로 나뉜다.


둘째,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멘사에는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도 있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하나의 공통점만 있을 뿐, 그 위에 쌓아올린 가치관과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IQ가 높다고 해서 삶의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말이 잘 통하는 건 속도의 문제지만 함께 어울리는 건 방향의 문제다. 멘사는 대화의 속도를 맞춰주는 공간이지 삶의 방향을 맞춰주는 곳은 아니다.



집단지성의 함정. 논리가 공감을 대신할 때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시야의 협소화다. "우리끼리는 말이 잘 통한다"는 편안함은 자칫 갇힌 방에서 같은 소리만 울리는 에코 챔버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가끔 모임에서 "합리적이니까"라는 말이 만능키처럼 쓰일 때가 있다. 누군가의 감정이나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기도 전에 "그건 비논리적이야"라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의 확신을 빠르게 승인해주고 있을 뿐인가.


진정한 집단지성은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습관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멘사가 더 건강한 커뮤니티가 되려면 "똑똑함"을 확인하는 것보다 "서로의 다름"을 경청하는 태도가 훨씬 더 필요하다.



구원은 없다, 다만 번역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


멘사라는 커뮤니티를 관찰하며 내린 결론은 하나다. 그곳은 천재들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소울메이트가 기다리는 곳이라기보다, 그저 나와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라운지에 가깝다.


그리고 이 사실은 멘사 밖, 우리의 모든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나와 꼭 맞는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세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지만, 그 행운이 관계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말이 잘 통한다"는 쾌적함에만 안주하는 것은,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겠다는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진짜 관계는 '알아서 통할 때'가 아니라, '도무지 통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기꺼이 나를 설명하고, 상대의 낯선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과정. 그 번거로운 번역의 수고를 감당하겠다는 의지야말로,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지불해야 할 유일한 입장료다.


지능이든, 성격이든, 취향이든, 그것은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 세상을 그려내는 고유한 화법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방언을 쓰는 외로운 섬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서로를 향해 다리를 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Leica CL / Summicron-C 40mm f2 / Ektachrome 100 (Monochrome Con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