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케일 연습을 멈추기로 했다

길을 잃지 않는 즉흥 연주의 기술

by TAFO

내 피아노 위에는 언제나 낡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마크 레빈의 재즈 피아노 북. 전 세계 재즈 피아노 입문자들의 바이블이자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책이었다.


나는 수험생처럼 그 책을 파고들었다. 책이 시키는 대로 모든 조성에서의 투 파이브 원 진행을 달달 외웠고 아이오니안부터 얼터드까지 수십 개의 스케일을 손가락에 입력하듯 익혔다. 이론적으로 내 연주는 완벽해야 했다.


하지만 퇴근 후 피아노 앞에 앉아 녹음된 내 연주를 들어보면 늘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건 재즈가 아니었다. 그저 스케일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아무 의미 없이 음을 나열하는 아주 빠른 손가락 운동에 불과했다. 빌 에반스의 서정성도 허비 행콕의 파격도 없었다. 그저 틀린 음을 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조급함만이 존재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마크 레빈이 틀렸을 리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접근법 자체가 문제였다. 나는 줄곧 '무슨 음을 칠까'라는 재료의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즈의 본질은 재료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중요한 건 어떤 음들을 나열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도달하느냐였다.


그날부로 나는 기계적인 스케일 연습을 멈췄다. 대신 즉흥연주를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재정의하고 세 가지 원칙을 세워 실험을 시작했다.



가이드 톤


마크 레빈은 책에서 보이스 리딩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했다. 보이스 리딩이란 코드와 코드가 바뀔 때 음들이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는 화려한 스케일에 눈이 멀어 이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목표 지점부터 다시 설정했다. 이전에는 손 가는 대로 쳤지만 그때부터는 마디가 바뀌는 순간 무조건 3도나 7도를 밟기로 했다. 이 두 음, 즉 가이드 톤이야말로 코드의 색깔을 결정짓는 핵심이자 가장 강력한 중력을 가진 목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C 메이저 키의 기본 진행인 Dm7 - G7 - Cmaj7을 예로 들어 실험했다.


Dm7에서는 7도인 C를 타겟으로 잡았다. 코드가 G7으로 바뀌면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옆에 있는 3도 B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Cmaj7에서도 다시 7도인 B에 머물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C - B - B. 단지 이 세 개의 음을 연결했을 뿐인데 연주에 이야기가 생겼다. C에서 B로 이동하는 건 반음 차이, 즉 건반 하나 차이였다.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화성학적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길이 열린 것이다. 마크 레빈이 말했던 부드러운 성부 연결이 바로 이것이었다.



인클로저


뼈대가 서니 살을 붙이는 건 쉬웠다. 이때 사용한 것이 인클로저 기법이었다.


목적지인 B를 그냥 치는 건 너무 정직하고 심심했다. 그래서 나는 타겟 음을 바로 치지 않고 위아래에서 포위하며 조여가기 시작했다. 마치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에 주변 인물들이 먼저 분위기를 잡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다. 타겟이 B라면 스케일 상의 바로 윗음인 C를 먼저 쳤다. 그다음엔 타겟의 반음 아래인 Bb을 건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B로 해결했다.


특히 Bb을 누르는 순간은 짜릿했다. C 메이저 키에서 검은 건반은 이질적인 존재다. 하지만 이 불안한 음이 반음 위인 타겟으로 해결되는 순간 그 불안감은 강력한 해결의 쾌감으로 바뀌었다. 스케일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절대 낼 수 없는 끈적하고 세련된 재즈의 맛이 거기 있었다.



딜레이드 레졸루션


마지막으로 수정한 것은 시간, 바로 리듬이었다.


나는 8분음표로 마디를 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은 매력이 없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음표는 소음이었다.


나는 딜레이드 레졸루션을 시도했다. 타겟 음인 B를 마디의 첫 박에 치지 않았다. 대신 첫 박에는 과감하게 쉼표를 두었다. 으뜸 박을 비우고 엇박에 타겟을 꽂아 넣거나 인클로저를 통해 빙 돌아서 두 번째 박자에 안착했다.


이 짧은 침묵이 주는 긴장감은 대단했다. 청중은 첫 박에 나올 해결음을 기다리게 되고 그 기대감을 살짝 배신했다가 충족시켜 줄 때 음악은 비로소 살아 숨 쉬었다.



결론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피아노 위의 바이블을 덮을 때쯤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흔히들 재즈에는 틀린 음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천 번의 연습을 거친 결과 그 말은 수정되어야 했다.


"틀린 음은 없지만, 의도가 없는 음은 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스케일 위를 배회하는 음은 그저 소음이었다. 하지만 명확한 타겟을 정하고 그 주변을 인클로저로 꾸미며 리듬의 여백을 이용해 결정적인 순간에 도달한다면, 그 과정에서 눌리는 모든 불협화음은 텐션이라는 아름다운 긴장감을 갖게 된다.


이제 나는 건반 위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다만 목적지를 향해 가장 우아하게 우회하는 길을 탐색할 뿐이다. 이것이 그 두꺼운 바이블이 수많은 악보 사이에서 내게 그토록 말하고 싶어 했던, 진짜 재즈였다.


Leica M6 / 7Artisans 50mm f1.1 / Fomapan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