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번역은 실패한 번역이다

데이터 손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소통

by TAFO

이탈리아 속담에 "번역가는 반역자다"라는 말이 있다. 재미있는 건 언어의 우연성이다. 한국어에서도 '번역'과 '반역'은 엄연히 다른 의미지만 글자의 꼴이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탈리아어 원문인 "Traduttore, traditore" 역시 단 두 글자의 차이로 완벽한 라임을 이룬다.


이 기막힌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언어를 옮긴다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원본에 대한 배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소통의 한계에 대한 서늘한 통찰이다. 완벽한 번역을 꿈꾸며 단어 하나하나를 기계적으로 치환하려 들면, 문장은 생명을 잃고 뻣뻣한 시체가 된다. 나는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언어의 국경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국경을 생각한다.


Vol.3에서 나는 우리의 삶이 0과 1로 끊어지지 않는 아날로그의 무한한 해상도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흙의 거친 질감을 느끼고, 미묘하게 떨리는 공기의 파동을 감지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매 순간 경험한다. 내 내면의 우주는 분명 초고화질의 아날로그다. 비극은 내가 이 무한한 아날로그 세계를 타인에게 전송하려고 할 때 발생한다.


나의 이 생생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보내기 위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프로토콜은 고작 언어라는 가느다란 디지털 케이블뿐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디지털이다. 연속적으로 흐르는 마음을 '기쁨', '슬픔', '사랑', '짜증'이라는 이산적인 단어로 뚝뚝 끊어서 압축해야만 전송이 가능하다. 여기서 대역폭의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내 마음의 전부를 전하고 싶다.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이 복잡미묘한 심정을 100% 그대로, 무손실 전송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다. 수식어를 붙이고, 논리를 세우고, 각주를 단다. "아니, 내 말은 단순히 화가 났다는 게 아니라, 그때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섭섭함과 동시에 어떤 기대감이 무너진 건데..."


나는 내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언어로 구겨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해상도가 높을수록 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내가 완벽하게 설명하려 할수록, 그 데이터는 상대방의 수신 장치가 처리할 수 있는 대역폭을 초과해버린다. 결국 상대방에게 도착하는 것은 내 진심이 아니라, 과부하로 인한 버퍼링과 노이즈뿐이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이 말은 상처를 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당신이 보내는 데이터가 너무 커서 내 시스템이 처리할 수 없으니, 제발 압축해서 보내줘"라는 호소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고립된 우주다.


나의 아날로그와 너의 아날로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고 우리는 그 위로 '언어'라는 위태로운 다리를 놓을 뿐이다. 이 다리는 너무 좁아서, 무거운 진심을 한 번에 옮기려 하면 무너진다.


그러므로 관계에서의 지혜는 데이터의 손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을 100% 이해받으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나의 무한한 해상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유한한 전송 수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힘들어"라고 말할 때, 그 단어 하나가 내 고통의 1%도 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 1%의 압축된 패킷을 받아서, "많이 힘들었겠네"라고 반응해 줄 때, 기적적으로 나머지 99%의 데이터가 복원된다. 그것은 언어의 힘이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맥락, 눈빛,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GPU가 저화질의 텍스트를 고화질의 감정으로 업스케일링 해주기 때문이다.


완벽한 번역은 없다. 완벽한 이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더듬거리며, 끊임없이 정보를 흘리고, 오해를 사며, 엉성한 문장으로 서로를 부르는 실패한 번역가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실패의 빈틈 사이로 차가운 논리가 아닌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내가 다 말하지 않아도 네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네가 서툴게 말해도 내가 그 마음을 읽어내겠다는 의지. 우리는 서로를 100% 읽어낼 수 없기에, 오히려 더 깊게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 불완전한 전송이 우리를 낭만으로 이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기꺼이 오역되기를 바란다. 나의 방대한 우주를 고작 몇 마디 단어에 구겨 넣어 당신에게 보낸다. 이 불완전한 패킷이, 당신의 마음에 닿아 완벽한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하면서.


Contax 137 MA / Distagon 35mm f2.8 / Portra 400 (Monochrome 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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