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형 인간으로 살기

슬픔이 주말을 잠식하지 못하게 막는 방화벽

by TAFO

[장애 보고서 — 202X년 X월 X일]

증상 — 금요일 퇴근 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집안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흐름. 아이가 방긋 웃으며 옹알이를 해도 무표정으로 응시함.

원인 분석 — 금요일 오후 4시, 회사에서 발생한 업무 미스 커뮤니케이션과 상사의 질책이 해소되지 않은 채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로 주말 내내 실행됨.

결과 — [직장] 모듈의 우울함이 [가정] 모듈로 전이되어 주말이라는 시스템 전체의 퍼포먼스 저하.


나의 삶은 전형적인 모놀리식 구조였다.


모놀리식 아키텍처란 모든 기능이 하나의 거대한 코드 덩어리에 뭉쳐 있는 형태를 말한다. 회원 가입, 결제, 배송 추적이 전부 한 통속에서 돌아간다. 설계가 단순해서 처음에는 관리가 편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결제 모듈에서 작은 에러가 발생하면, 전혀 상관없는 회원 가입 기능까지 마비되고 결국 서버 전체가 다운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딱 그랬다.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상사에게 깨진 날이면, 그 우울함이 퇴근길 지하철을 넘어 주말 내내 거실을 맴돌았다. 친구를 만나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서도 머릿속은 온통 '월요일에 가서 어떻게 수습하지?'라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 내가 무너지면 내 아내도, 내 아이도 눈치를 보게 만드는 구조. 이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기분의 인질로 잡는, 아주 위험한 시스템 아키텍처였다.


그래서 나는 삶을 리팩토링하기로 결심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IT 기업들이 거대한 서비스를 쪼개어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로 전환하듯, 나라는 사람을 독립된 여러 개의 작은 서비스로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MSA의 핵심은 격리차단기다.


선박은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나도 침몰하지 않는다. 배 내부가 여러 개의 격벽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칸에 물이 차면 즉시 방수문을 닫아버린다. 그 칸은 포기하더라도 배 전체는 살리는 것이다.


나는 이 원리를 관계에 적용했다.


나는 이제 나를 ‘단일 인격’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도커 컨테이너를 실행하는 운영체제다.


1. 직장인 TAFO

Role —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과를 증명하고, 조직의 논리에 맞춰 생존하는 플레이어.

Feature — 효율과 속도가 최우선이며, 때로는 자존심을 굽히고 정치적인 상황도 견뎌내야 한다.

Policy — 이 컨테이너의 로그는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다. 따라서 퇴근 즉시 Stop 명령어를 입력해 메모리에서 내린다.


2. 아빠이자 남편 TAFO

Role — 아이와 눈을 맞추며 온몸으로 놀아주는 다정한 보호자. 육아로 지친 아내의 하루를 경청하는 동반자.

Firewall — 회사에서의 실수, 상사의 날카로운 피드백 데이터는 이 컨테이너로 유입되지 않도록 강력한 방화벽을 친다. 이곳은 청정 구역이어야 한다.


3. 아티스트 TAFO

Role — 재즈 피아노를 치고 검도를 하는, 논리가 아닌 감각의 리듬을 타는 자아.

Recovery — 손상된 자존감을 복구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백업 전력소.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금요일 저녁, 해결되지 않은 업무 문제가 머릿속을 맴돌 때 주말에 아이와 진심으로 웃으며 노는 건 고도의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을 요구한다.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식이 아니라 프로의 직업윤리다.


의사가 개인적인 우울함 때문에 수술실에서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되듯, 나 또한 회사 일로 기분이 다운됐다고 해서 가족에게 그 우울한 기운을 전송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내가 모시는 가장 소중한 VIP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현관문을 단순한 출입구가 아닌 에어락으로 활용한다.


우주선에서 오염된 구역과 청정 구역 사이를 오갈 때 거치는 중간 지대.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잠시 멈춰 선다. 깊은 심호흡을 세 번 한다. 회사에서 묻어온 무거운 공기와 찌꺼기를 털어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지금부터는 집 모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로그인하는 신호다. 손을 씻는 행위는 회사의 잔존 데이터를 씻어내는 의식이다.


가끔은 이 에어락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다. 감정의 과부하가 걸려 시스템이 다운될 것 같은 날에는, 물리적 차단기를 활용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검도장으로 향하거나 피아노 앞에 앉는다. 혹은 이어폰을 꽂고 30분간 달리기를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순간,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번뇌는 물리적으로 타격되어 희미해진다. 논리의 언어가 아닌 감각의 언어로 뇌를 씻어낸다.


땀을 닦아내며 묘한 안도감이 든다.


"아, 회사 일은 좀 꼬였지만, 내 인생 전체가 망한 건 아니구나."


[직장] 격실에는 물이 찼지만, [가정][자아] 격실은 방수문 덕분에 안전하다. 배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항해한다.


이 분리된 감각이 나를 살리고, 내 관계를 살린다. 삶의 한 부분이 무너져도 다른 부분들이 건재하게 나를 지탱해 준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회복 탄력성의 실체다.


우리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살다 보면 반드시 어딘가 고장 난다.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도 하고,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며, 인간관계에 지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실패가 내 시스템 전체를 집어삼키게 두지 않는 것이다. 슬픔은 공유할 수 있지만, 전파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시스템 오류로부터 지키는, 가장 책임감 있는 운영자의 태도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멘탈이 탈탈 털리고 퇴근한다.


하지만 에어락을 통과하며 오염된 옷은 문밖에 세워두고, 새로운 컨테이너를 실행한다.


docker run -it --name husband_and_dad image:loving_family


접속 완료.


이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이자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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