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를 취미로 다닌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버그를 이용한 정신 승리

by TAFO

일러두기 — 직전 글에서 나는 가족을 위해 감정을 격리하는 꽤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매일 그렇게 성인군자처럼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조금 삐딱하고 위험한, 나의 은밀한 상상을 공유하려 한다. 이것은 실제 나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수행하는 자기 최면 프로토콜일 수도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글은 픽션이다.



회사 탕비실에서 동료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대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세요? 이번 프로젝트 엎어지면 우리 팀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믹스커피를 정확히 17번 저으며(그래야 마음의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세상 해 맑게 대답한다.


"아, 저는 이 회사 취미로 다니거든요."


동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사람, 집에 돈이 엄청 많은가 보네. 아니면 코인 대박났나?'


오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서울에 자가도 없고, 마이너스 통장의 만기일은 다가오며, 이번 달 카드값은 월급을 스치듯 데려갈 예정이다. 객관적인 재무제표로만 보면 나는 누구보다 비굴하고 절박하게 회사를 다녀야 하는 '생계형 노비'가 맞다.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선언한다. 이 회사는 나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허세나 정신 승리가 아니다. 이것은 내 인생의 운영체제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먹히지 않게 방어하는, 가장 고도화된 가상화 기술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원래 취미란 '내 돈'을 내고 하는 것이다.


헬스장은 월 5만 원을 내고 쇠질을 하러 가고, 골프는 수십만 원을 내고 공을 치러 간다. 돈을 내고 하는 짓이니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그런데 이 '회사'라는 취미는 아주 기이하다.


나는 여기서 비즈니스라는 게임을 하고, 회사의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장난감 삼아 마음껏 내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는데, 심지어 돈을 받는다.


생각해 보라. 나는 회사의 고성능 맥북을 내 것처럼 쓰고, 회사의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회사의 전기로 핸드폰을 충전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엔 법인카드로 맛집 투어도 시켜준다.


이 정도면 회사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가 아니라, 나에게 돈까지 쥐여주며 놀아달라고 사정하는 호구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가?


개발 용어 중에 의존성 주입이라는 게 있다.


시스템 A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시스템 B가 필요할 때, "A는 B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많은 직장인이 자신의 [자존감]이라는 객체에 [직장]이라는 객체를 강하게 의존시킨다. 그래서 회사가 흔들리면 자아가 붕괴하고, 상사의 평가가 곧 나의 가치가 된다. 이것은 강한 결합 상태다. 아주 위험하고 취약한 구조다.


나는 이 의존성을 끊어내기로 했다.


"나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닌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시스템의 리소스로 전락한다. 공포가 나를 지배하고, 잘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퍼포먼스는 떨어지고 매력 없는 부속품이 된다.


반면 "이건 내 취미다"라고 정의하면 권한의 구조가 뒤집힌다.


취미란 무엇인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


나는 회사라는 거대한 샌드박스에 접속해서, 남의 돈으로 비즈니스를 배우고, 남의 돈으로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다뤄보고, 남의 돈으로 실패도 해보는 것이다. 월급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게임에 접속하면 주는 로그인 보상쯤으로 여긴다.


이 말도 안 되는 '취미' 마인드셋을 장착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생계가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벌벌 떨며 코드를 짠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지른다.


"팀장님, 이 기획은 재미없는데요. 이렇게 뒤집어보죠."


역설적이게도, 잃을 게 없다는 태도로 덤비는 사람에게서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어차피 취미인데 망하면 다시 하면 되지, 라는 무한 코인 정신이다. 회사는 쫄지 않는 사람을 원한다.


2. 쿨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생계형 직장인에게 상사의 질책은 공포다. 하지만 '취미형 인간'인 나에게 상사는 그저 게임의 NPC일 뿐이다.


상무님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칠 때, 나는 속으로 감탄한다.


'와, 이 회사라는 VR 게임, 몰입감 장난 아니네. 성우 연기력 좀 봐.'


그리고 차분하게 대답한다.


"상무님, 오디오 게인이 너무 높아서 입력 신호에 클리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논리가 왜곡되어 들리는데 다시 전송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밥줄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루트 권한을 쥐고 있다는 당당함. 그 태도가 오히려 나를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로 만든다.


3. 스트레스가 '퀘스트'로 바뀐다.


진상 클라이언트는 나를 괴롭히는 악당이 아니라, 레벨업을 위해 공략해야 할 보스 몬스터가 된다. 야근은 노동 착취가 아니라, 만렙을 찍기 위한 추가 파밍 시간이 된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가는 것과,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몰입하는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자체가 다르다. 코르티솔 대신 도파민이 나온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다. 월급이 끊기면 당장 굶어야 하는 건 팩트다.


하지만 팩트가 나의 태도까지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시스템의 노예가 될 것인가, 시스템을 가지고 노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그 차이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도 나는 출근한다.


비장한 각오 따위는 없다. 그저 즐거운 게임 한 판 하러 가는 가벼운 발걸음이다. 남들이 사활을 걸고 아등바등할 때, 나는 휘파람을 불며 가장 위험한 코드를 건드린다.


"뭐, 안 되면 접지 뭐. 어차피 취미인데."


가장 무서운 사실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진짜로 그렇게 일했더니 연봉이 오르고 승진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발견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치명적인 버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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