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물리적 진실

by TAFO

오후 7시 36분.


거실 식탁 위. 그녀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방금 전 미끄러지듯 밀려 올라온 추천 세 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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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길 물건 분리

다음 질문 이어서 입력


그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가, 이내 화면 맨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일정한 속도로 명멸하는 입력창의 얇은 커서. 손가락이 그 위를 가볍게 톡, 두드렸다. 회색 자판이 밀려 올라오며 기계의 추천 항목들을 화면 밖으로 밀어냈다.


그녀는 자판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아니 오늘 이 적막한 거실에 들어와 바벨의 첫 등록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던 숫자가 있었다.


남편의 휴대전화 잠금 화면에 아직도 두 건의 부재중 알림으로 남아 있는 시각. 조금 전 첫 번째 입력창에 적어 넣었다가 끝내 지워버린 바로 그 문장.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며 빈 입력창을 채우기 시작했다.


사고 당일 저녁 6시 41분, 왜 내 전화 안 받았어?


문장을 끝까지 치고 난 뒤, 그녀는 파랗게 활성화된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을 둔 채 잠시 멈췄다.


바벨은 행동과 사실을 복원하는 건조한 기계였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던진 것은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죽은 자의 방대한 데이터 더미 속에서, 이 차가운 시스템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버튼을 눌렀다. 짧은 진동과 함께 문장이 말풍선으로 묶여 허공으로 올라갔다.


[ 처리 중 ]
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점 세 개가 차례로 깜빡였다. 거실 벽시계의 초침이 반 바퀴를 채 돌기도 전이었다. 점이 사라지고, 회색 테두리를 두른 새로운 답변 블록이 화면 위로 올라왔다.


[ 복원 응답 ]
"운전 중이 아니었어. 저녁 6시 38분에 집에 들어왔어. 6시 41분에는 서재 책상 오른쪽 맨 아래 서랍 앞에 서 있었고. 서림 빌딩에서 가져온 봉투를 넣고 있었어. 서재부터 확인해."


[ 고인 일치도 ] 92.1%
[ 상황 적합도 ] 89.5%


[ 산출 근거 ]
18:38 현관 도어록 출입 기록, 18:41 서재 조명 센서 점등, 스마트폰 자이로스코프 정지 상태 교차 반영.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날 저녁, 그녀가 불안함에 떨며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을 듣고 있던 바로 그 6시 41분에 남편은 도로 위가 아니었다. 같은 집 안, 복도 끝 서재에 있었다.


그녀가 애타게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남편은 서랍 앞에 서서 무언가를 은밀하게 밀어 넣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고 현장인 교차로까지는 거기서 차로 이십 분이 더 걸렸다.


도어록이 열린 시각, 서재 불이 켜진 시각, 책상 앞에서 멈춘 기기의 기울기.


바벨은 그녀가 던진 '왜'라는 질문을 그 세 가지 건조한 기록으로 잘라냈다. 남은 것은 변명 같은 이유가 아니라, 놀랄 만큼 분명한 위치와 순서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서재부터 확인해.


그녀는 식탁에서 일어났다. 상복 상자 위에 걸린 재킷이나, 서류 봉투에 꽂아둔 주차권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에는 바벨의 화면이 켜진 휴대전화만 단단히 쥔 채였다.


거실을 지나 좁은 복도를 걸었다. 집 안에서 유일하게 며칠째 굳게 닫혀 있던 방. 서재 문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내리자, 찰칵 하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한 달 가까이 환기되지 않은 방 안의 서늘하고 묵은 공기가 훅 끼쳐왔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르자, 백색 형광등이 미세한 소음을 내며 방 안을 차갑게 밝혔다.


방 한가운데에는 짙은 갈색의 철제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전원이 꺼진 듀얼 모니터와 키보드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고, 의자는 책상 밑으로 깊숙이 밀려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책상 오른쪽으로 다가갔다. 바벨이 지목한 맨 아래 서랍 손잡이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서랍은 잠겨 있지 않았다. 금속 레일이 뻑뻑하게 구르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서랍이 앞으로 스르륵 밀려 나왔다.


비어 있어야 할 공간이었다. 남편은 평소 맨 아래 서랍을 잘 쓰지 않았다.


그런데 레일이 끝까지 당겨진 순간, 바닥에 엎어진 채 놓인 두꺼운 황갈색 서류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냈다. 봉투 입구는 풀칠된 채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양손을 뻗어 봉투를 꺼내 들었다. 제법 묵직한 두께감이 손바닥 전체로 전해졌다. 종이 겉면은 어디 하나 구겨진 데 없이 기분 나쁠 만큼 빳빳했다.


봉투를 뒤집어 앞면을 확인했다. 정중앙에 굵은 검은 마커로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다.


1207


그녀는 1207이라는 의문의 숫자와, 책상 위에 켜진 휴대전화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바벨이 지정한 좌표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제 물건이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고 무언가를 숨겼다는 배신감도,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단순하고 분명한 '물리적 진실' 앞에서 한 걸음 뒤로 밀려나 있었다.


책상 위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응답 블록 아래로 새 추천 항목이 소리 없이 조용히 떠올랐다.


[ 추천 ]

1207호 관련 미결제 내역 스캔

발견된 봉투 개봉 여부 판단 보조

다음 질문 이어서 입력


그녀는 두 손에 쥔 봉투를 차마 내려놓지 못했다.


거실 식탁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은, 이미 방 하나를 건너 이 서늘한 서랍 앞까지 그녀를 데려와 있었다. 화면 맨 아래의 입력창 커서는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깜빡이고 있었고, 그녀의 손 안에는 방금 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숫자 하나가 두꺼운 종이의 무게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