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7분.
고양 장항지구 끝자락, 라크힐 스마트빌 6동.
집은 지나치게 멀끔했다. 넓은 통창, 반듯하게 정리된 잔디, 현관 옆 검은 패널까지. 노란 폴리스라인만 쳐져 있지 않았다면 신축 주거 단지의 모델하우스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정세린 경감이 차에서 내리자, 현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같은 팀 막내 형사가 곧바로 다가왔다.
"브리핑."
"사망자 차수연, 서른아홉. 어젯밤 8시 59분경 2층 중앙 복도 난간에서 1층 거실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당시 집 안에는 남편 강도윤, 여동생 차민아, 딸 강윤서가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고, 출입 로그상으로도 외부인 진입은 제로입니다."
"진술은?"
"셋 다 엇갈립니다. 남편은 아내가 혼자 2층에 올라갔고 자기는 1층 서재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여동생은 2층에서 부부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고 하고, 딸은 아버지는 아래에 있었고 어머니가 이모 방 쪽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합니다."
정세린은 집을 올려다보았다.
완벽한 집이었다. 이런 집은 사람보다 먼저 입을 연다.
현관문이 열리자 천장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홈 시스템 안내 ]
수사기관 현장 모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내 조명을 70%로 조절합니다.
조명이 켜진 거실은 2층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유리 난간 아래로 거실 바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중앙 대리석 위에는 백묵 자국과 미처 다 닦이지 않은 핏자국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난간 높이는?"
"1미터 18센티미터. 감식반 1차 소견으로는 성인 여성이 실수로 넘어갈 만한 높이가 아닙니다."
정세린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중앙 난간 앞에는 감식 표식이 세워져 있었다. 바닥에는 사선으로 밀린 듯한 미끄럼 자국이 희미했다. 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감식관이 난간 상단을 가리켰다.
"스스로 중심을 잃고 툭 떨어진 흔적이 아닙니다. 몸이 밖으로 한 번 더 강하게 실렸어요."
정세린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추락한 지점은 거실 한복판, 이 집의 심장부 같은 위치였다.
막내 형사가 복도 벽면 패널을 조작했다.
[ 실내 이벤트 로그 ]
20:57:48 2층 복도 조명 수동 점등
20:58:12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활성화
20:59:03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해제
20:59:05 거실 충격 감지
20:59:07 자동 비상 호출 제안
20:59:18 사용자 취소
21:01:42 119 신고 접수
정세린의 시선이 중간에서 멈췄다.
"프라이버시 모드가 뭐지?"
"특정 구역의 음성 수집, 위치 추적, 실시간 저장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입니다. 집이 잠깐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설정이죠."
"누가 켤 수 있는데?"
"마스터 계정 소유자만 가능합니다. 명의자는 남편 강도윤입니다."
추락 직전 51초. 하필 진실이 가장 필요한 구간에서만 집이 눈을 감고 있었다.
"강도윤은?"
"자긴 켠 적 없다고 부인합니다. 그런데 계정도, 비밀번호도 본인 겁니다."
정세린은 다시 로그를 곱씹었다. 거실 충격 감지 직후 자동 비상 호출 제안이 떴지만, 11초 뒤 누군가 그것을 '취소'했다. 그리고 119는 그로부터 2분이 넘게 지나서야 접수되었다.
완벽한 집은 모든 걸 기록했지만, 그 파편들만으로는 아직 누구의 손목에도 수갑을 채울 수 없었다. 다만 시선을 한 사람 쪽으로 강하게 몰아갈 뿐이었다.
"나머지 관계인들은?"
"남편은 아래에서 대기 중인데 지나치게 침착합니다. 여동생 차민아는 이혼 소송 중이라 며칠째 언니 집에 머물고 있었고, 지금은 계속 울고만 있습니다. 딸은 자기 방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큰 소리는 못 들었다고 하고요."
정세린은 1층을 내려다보았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강도윤의 정수리가 보였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그의 두 팔은 테이블 위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바벨 요청은 상황실에서 바로 꽂은 건가?"
"네, 초동 보고에서 관계인 셋 진술이 전부 엇갈리니까 시범 운영 매뉴얼대로 시스템이 자동 할당해 버렸습니다. 까놓고 말해 셋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장 데이터는 지금 특별 진술실 쪽으로 연동 중입니다."
정세린은 검은 패널에 비친 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단순한 물리적 궤적과 속도를 계산하던 1화의 교통사고와는 달랐다. 여기는 이미 누가 무엇을 감췄는지, 왜 각자 다른 거짓말의 파편을 쥐고 있는지부터 조립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복잡함 때문에, 수사관들은 바벨의 명쾌한 대답을 갈구하게 된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디지털 포렌식 요원이 태블릿을 든 채 올라왔다.
"복원 대상 하나 건졌습니다."
"뭡니까?"
"피해자가 끼고 있던 스마트 링의 로컬 버퍼입니다. 이 제품은 심박수가 급격히 변하면 SOS 보조 기능으로 주변 음성 8초를 임시 저장하게 되어 있거든요. 서버 동기화는 끊겼고, 기기 내부에 손상된 원본 파형만 일부 남았습니다."
포렌식 요원이 화면을 내밀었다.
[ 로컬 버퍼 복원 대상 / 20:58:56 ]
여성 화자 추정 1인
마찰음
불명확한 호흡
충격음
발화 구간 존재
음성 언어 복원 불가
태블릿에는 해독할 수 없는 끊긴 파형들만 일렁이고 있었다.
"말소리는 안 잡힙니까?"
"일반 포렌식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 누군가 발화한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까지만 확인됐습니다."
정세린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래층을 내려다보자, 강도윤이 마침 고개를 들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층 복도 끝 어딘가에서도 굳게 닫힌 방문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특별 진술실에 올리면 저 8초짜리 오디오도 풀리겠네요."
막내 형사의 들뜬 목소리에 정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빠르고 매끈하게 닫히는 사건일수록, 나중에 그 틈을 다시 벌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벽면 패널에는 여전히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활성화'라는 기록이 빛나고 있었다. 명의자는 강도윤. 하지만 그 한 줄의 로그는 51초의 공백 속에서 누가 누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는지까지 증명하지 못했다.
손상된 8초의 파형 속에 깃든 비명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 직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복도 끝에서 실내 시스템이 다시 조용한 안내음을 냈다.
[ 시스템 안내 ]
사건 관련 데이터 패키지가 외부 분석 서버로 전송 준비 중입니다.
집은 끝까지 유능하고 성실했다. 인간의 망설임 대신 차가운 데이터 패키지를 내놓고 있었다.
정세린은 이 사건이 '어렵다'기보다 '위험하다'고 느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거짓을 말하고 있는 공간. 기록은 진실을 비추는 대신 그 거짓말들을 더 촘촘히 묶고 있었다. 바벨이 이 데이터에 개입하는 순간, 저 끊긴 파형과 엉킨 흔적들은 누군가가 곧장 읽어버릴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결론'으로 정리될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문장이 완성되고 나면, 그 문장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잘려 나갔는지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되니까.
정세린은 데이터를 뱉어내는 패널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1층 다이닝 테이블에 앉은 강도윤은 여전히 석상처럼 미동이 없었다. 반면 2층 복도 끝 닫힌 문틈 너머로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