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2시 18분.
경기고양경찰서 형사과 조사실 3.
강도윤은 종이컵을 쥔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컵 안의 물은 거의 줄지 않았고, 걷어붙인 셔츠 소매 끝은 미세하게 구겨져 있었다.
정세린은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것은 얇은 태블릿 하나와 종이 출력물 몇 장이 전부였다.
강도윤이 먼저 마른 입술을 뗐다.
"저... 아까 그 방에 있었죠?"
정세린은 대답 대신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죽은 사람 목소리 복원해서 묻는 데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삼켰다. 긴장한 손아귀 힘에 종이컵 가장자리가 찌그러졌다.
"거기서, 제 이름이 나왔습니까?"
정세린은 태블릿 화면을 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화면 상단에는 오전 특별 진술실의 요약본이 띄워져 있었고, 모서리에는 '강도윤 관련성 94.2%'라는 수치가 선명했다.
"강도윤 씨는 어젯밤 8시 58분부터 9시 사이, 1층 서재에 있었다고 진술하셨죠?"
"예."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는 켠 적 없고요?"
"없습니다."
"그럼 119 자동 호출은 왜 취소했습니까?"
강도윤의 손이 멈칫했다.
"취소한 적 없습니다."
정세린은 첫 번째 출력물을 그의 앞으로 스윽 밀었다.
[ 서재 허브 세션 로그 ]
20:57:59 웹캠 활성화
20:58:03 외부 영상 세션 연결
20:58:12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활성화
20:59:07 자동 비상 호출 제안
20:59:18 사용자 취소
강도윤은 종이로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정세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저 로그가 제가 했다는 증거는 아니잖아요?"
"계정 명의자가 본인 아닙니까?"
"명의자일 뿐이죠. 제가 썼다는 보장이 어딨습니까?"
반박이 너무 빨랐다. 밤새 머릿속으로 여러 번 굴려본 말처럼 매끄럽고 다급했다.
정세린은 말없이 두 번째 출력물을 꺼내 그 위에 덮었다.
[ 접속 기록 ]
실행 계정: 마스터 (명의자: 강도윤)
실행 위치 기록: 1층 서재 데스크톱 허브
외부 영상 세션 상대 정보: 암호화 처리
강도윤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 닿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세린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였습니까?"
"누가요?"
"그 시간에 서재에서 연결돼 있던 상대 말입니다."
강도윤이 종이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게 이 사건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수사관이 판단합니다."
조사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천장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공백을 메웠다. 문 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멀어졌다.
정세린은 억지로 다그치지 않고, 태블릿 화면만 천천히 넘겼다.
"아내가 2층에서 추락한 시각이 20시 59분 05초입니다. 직후 시스템이 119 자동 연결을 띄웠고, 11초 뒤 누군가 그걸 취소했죠. 같은 시간, 서재 허브의 영상 세션은 아직 종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강도윤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그건..."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끊었다.
"그건 살인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정세린은 한 박자 기다렸다가 차갑게 물었다.
"그럼 뭡니까?"
강도윤은 입술을 짓씹었다.
"...사적인 문제입니다."
정세린의 시선이 바닥을 향한 그의 정수리에 꽂혔다.
"서재에서 연결돼 있던 상대, 여자였습니까?"
긴 정적 끝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예."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계속 만나던 사이는 아니고... 그냥, 최근에 몇 번 연락하던 사람입니다. 서재에서 그 여자와 영상 통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라이버시 모드를 켰습니까?"
강도윤이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 너무 많은 걸 듣고 기록하니까요. 예전에 그 문제로 수연이랑 크게 다툰 적도 있고... 그래서, 딱 그 시간만 집의 눈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정세린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강도윤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갑자기 화면에 시스템 알림이 떴습니다. 자동 신고를 연결한다고. 경고음이 커졌고... 상대방은 화면 너머로 그걸 다 보고 있었고... 저는 당황해서..."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냥 꺼버렸습니다."
"뭘 말입니까?"
"취소 버튼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발음만은 또렷했다.
"알림이 뜨고 취소하기까지 11초가 비어 있습니다." 정세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11초 동안 뭘 했습니까?"
"그때는... 밖에 무슨 일이 난 건지 몰랐습니다.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는 났는데, 설마 수연이가 떨어졌을 거라고는..."
그의 말은 거기서 멎었다. 죽은 아내의 이름 뒤로 차마 문장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불륜을 들킬까 봐 119 호출부터 끊었다?"
"끊고 나서 바로 서재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거실 쪽을 봤고, 그때..."
강도윤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 본 겁니다."
정세린은 태블릿을 끄지 않았다. 출력물 위에 얹힌 강도윤의 손가락 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전 특별 진술실의 바벨이 기계적으로 밀어 올린 것은 강도윤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사실에서 풀린 것은, 그 이름이 왜 1층 서재의 비상 호출 취소 로그와 묶였는지에 대한 인간적인 해명이었다.
"아내분은 그 통화 상대를 알고 있었습니까?"
강도윤이 무겁게 입을 뗐다.
"의심은... 했을 겁니다."
"처제인 차민아 씨도 알고 있었습니까?"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빈 종이컵이 그의 손아귀에서 힘없이 구겨졌다.
"민아가 알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맹세코, 그 시간에 2층에서 둘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 저는 전혀 못 들었습니다. 서재 문을 닫고 있었으니까요."
정세린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쳐내지도 않았다.
지금 열린 것은 서재 안의 치부 하나뿐이었다. 프라이버시 모드, 내연녀와의 영상 통화, 외도를 들키지 않기 위한 119 자동 신고 취소.
그의 진술은 사건 발생 시각 1층 서재의 행적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정작 2층 난간 앞의 '51초'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정세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강도윤 씨. 지금도 본인이 아내를 죽인 게 아니라고 확신합니까?"
강도윤이 마침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핏발 선 눈동자가 일렁였지만, 시선만큼은 굳건했다.
"아닙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덧붙였다.
"제가 죽인 건, 절대 아닙니다."
문 손잡이를 잡은 정세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조사실에서 얻어낸 것은 서재 안의 치부 하나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특별 진술실이 도출해 낸 94.2%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온전히 지워낼 수 없었다.
작은 죄는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작 중요한 진실이 담긴 난간 앞의 51초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