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44분.
경기고양경찰서 형사과 조사실 4.
차민아는 대기실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겉보기엔 크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눈 아래가 조금 부어 있고 입술이 말라 있을 뿐, 앉은 자세는 꼿꼿했다. 무릎 위에 단정하게 모은 두 손 사이로, 찢다 만 휴지 조각이 꼬깃꼬깃 접혀 있었다.
정세린이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차민아는 대답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형부는... 뭐라고 하던가요?"
자신의 처지보다 다른 용의자의 진술을 먼저 떠보는 그 순서를, 정세린은 흘려듣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 대신 들고 온 태블릿을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화면은 아직 까맣게 꺼진 채였다.
"어젯밤 일어난 일, 순서대로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녁 식사 이후부터요."
차민아는 시선을 아래로 한 번 내렸다가 올렸다.
"저녁은 같이 먹었어요. 일곱 시 반쯤. 다 먹고 조카 윤서는 먼저 2층 방으로 올라갔고, 형부는 1층 서재에 들어갔고요. 언니랑 저는 거실에 조금 더 있었는데, 언니가 평소보다 말이 없었어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저도 그냥 2층 제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신 시각이 언제쯤이죠?"
"여덟 시 좀 넘었을 거예요. 정확히는 몰라요."
"그다음은요?"
차민아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한 이십 분쯤 있다가... 제 방 밖, 2층 복도 쪽에서 소리가 났어요. 언니 목소리 같았는데, 평소보다 톤이 좀 높았어요."
"언니 목소리만 들렸습니까?"
"처음엔요. 그다음에는 두 사람 소리가 났어요."
"두 사람이라면?"
차민아는 시선을 테이블 위로 툭 떨궜다.
"언니랑... 한 명 더요."
"남자였습니까, 여자였습니까?"
"여자요."
정세린의 펜 끝이 조서 위에서 멈칫했다. 1층 서재에서 강도윤이 내연녀와 영상 통화 중이었다는 진술과 겹치는 대목이었다.
정세린은 탁자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켰다. 아무 파일도 열지 않고, 그저 푸른 불빛만 켜진 채로 두었다.
"소리를 듣고 방 밖으로 나가셨습니까?"
"네."
"몇 시쯤이었죠?"
"여덟 시 오십 분... 아니면 오십오 분쯤이요."
정세린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물었다.
"나가서, 어디에 서 계셨습니까?"
차민아가 말을 멈췄다. 기억을 더듬는 침묵과는 결이 달랐다.
"복도 쪽으로 나갔어요. 언니가 많이 화가 난 것 같아서..."
"복도 어느 쪽이요?"
"중앙 쪽이요."
정세린은 태블릿 화면을 넘겨 실내 이벤트 로그를 띄웠다.
[ 실내 이벤트 로그 / 2026.03.16 ]
20:57:48 2층 복도 조명 수동 점등
20:58:12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활성화
20:59:03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해제
20:59:05 거실 충격 감지
"20시 57분 48초에 2층 복도 조명이 켜졌습니다. 센서가 아니라 누군가 수동으로 조작했죠."
차민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켰을 거예요."
"차민아 씨가 복도에 나온 건 조명이 켜지기 전입니까, 켜진 후입니까?"
"...그 즈음일 거예요."
"즈음이라니요?"
"거의 같은 시간이요."
정세린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조명이 켜질 때, 복도에 언니와 함께 계셨다는 뜻이군요?"
창문 없는 조사실 안에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윙윙거렸다. 차민아의 손안에서 땀에 젖은 휴지 조각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네."
정세린은 태블릿을 엎어 놓았다.
"오전 1차 진술에서는 방 안에서 소리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차민아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복도에 이미 나와 계셨다면, 방 안에서 소리만 들은 게 아니라 언니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는 뜻 아닙니까?"
"...가까이 있었어요."
"얼마나요?"
"두세 걸음 정도."
정세린은 천천히 메모를 적어 내려갔다. 볼펜 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적막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고 뜸을 들였다.
"차민아 씨. 예전에 형부 강도윤 씨의 서재 PC 화면을 훔쳐본 적 있습니까?"
차민아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됐다.
"형부한테, 들으셨군요?"
"사실입니까?"
"...맞아요."
"그걸 언니한테 알렸고요?"
"말했어요."
"언니 반응이 어땠습니까?"
차민아는 질끈 눈을 감았다.
"화냈어요. 형부한테요."
"차민아 씨한테는요?"
차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세린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저한테도, 좀 그랬어요. 왜 남의 걸 함부로 봤냐고,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고."
"그래서 그 뒤로 두 달 동안, 그 얘긴 꺼낸 적 없습니까?"
"했어요."
정세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젯밤에요."
차민아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어젯밤에 그 얘기를 차민아 씨가 다시 꺼냈습니까?"
"제가 꺼낸 게 아니에요. 언니가 먼저..."
차민아는 황급히 말을 삼켰다.
"언니가 먼저, 뭐라고 했습니까?"
"저녁 먹을 때부터 언니가 이상했어요. 저한테 눈길도 안 주고. 식사 끝나고 둘이 거실에 있을 때도 쌩하길래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언니가 등 뒤에 대고 그랬어요."
"뭐라고요."
"네가 그때, 그딴 소리만 안 했어도 이 지경은 안 됐을 거라고."
조사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두 달 전 얘기를 꺼내면서요?"
"네."
"그래서요."
"억울하잖아요. 전 다 언니 잘되라고 해준 말인데, 오히려 절 원망하니까. 그래서 저도 홧김에..."
차민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도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그냥 방에 들어갔어요."
정세린은 무심한 얼굴로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저녁 식사 중의 침묵. 방에 들어가려다 자매가 짧게 주고받은 말. 그리고 이십 분 뒤, 다시 복도로 나선 동생.
"이십 분 뒤 복도에 다시 나온 건, 언니랑 그 못다 한 얘기를 마저 하려고 나온 겁니까?"
차민아가 넋이 나간 듯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수연 씨가 추락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들으셨습니까?"
차민아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한참 낮아져 있었다.
"들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차민아의 얇은 눈꺼풀 아래로 안구가 빠르게 진동했다.
"...또 그 계정 썼지. 그랬어요."
정세린은 펜을 멈추지 않았다. 오전 특별 진술실에서 복원된 문장과 같았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 원망이었습니까?"
차민아가 번쩍 눈을 떴다.
"형부요. 당연히 형부한테 한 말이죠."
"강도윤 씨는 1층 서재에 있었습니다."
"알아요. 근데 언니는 형부의 외도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어요."
"눈앞에 없는 사람한테 소리를 질렀다는 겁니까?"
차민아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꾹 다물었다.
정세린은 테이블 위에 새 출력물을 꺼내 놓았다. 오전 특별 진술실의 데이터 복원 결과였다.
[ 로컬 버퍼 복원 ]
"...또 그 계정 썼지."
[ 고인 일치도 ] 90.8%
[ 해석 개입도 ] 중간
"그런데 말입니다. 차민아 씨가 그 순간 언니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면, 저 문장이 향하는 방향은 두 갈래가 됩니다. 서재 안의 남편을 향한 혼잣말이거나, 아니면 두 달 전 남편의 그 수상한 '계정'을 최초로 발견해 자신에게 일러바친 차민아 씨를 향한 원망이거나."
차민아는 출력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형부한테 한 말이에요."
"두 달 전에 차민아 씨가 형부의 비밀을 알렸을 때, 언니가 오히려 차민아 씨에게 화를 냈다고 하셨죠."
"......"
"어젯밤에도 차수연 씨는 '네가 그때 말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동생을 탓했습니다. 그리고 이십 분 뒤, 복도에서 다시 마주친 동생을 향해 '또 그 계정 썼지'라고 따져 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정세린은 출력물을 파일 철에 도로 끼워 넣었다.
"그 마지막 말이 남편을 향한 것인지 동생을 향한 것인지는 기계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그날 밤 차수연 씨가 더 예민하게 마주하고 있던 쪽은 1층 서재가 아니라 2층 복도였던 것 같네요."
차민아의 손안에서 땀에 절어 뭉쳐 있던 휴지 조각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정세린이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어떻게 켜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방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차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만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그거... 계정이 있어야 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마스터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느냐고 묻는 겁니다."
차민아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언니 집에 며칠 머물 때, 거실 조명이나 온도 조절하는 법을 언니가 알려주긴 했어요."
"비밀번호를 통째로요?"
"제 폰에 앱을 깔아줬어요. 게스트 계정으로요."
"마스터 계정은요?"
차민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몰랐어요."
정세린은 그 대답을 조서에 반듯하게 적어 넣었다.
'몰랐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두 달 전 형부의 계정 사용 내역을 들여다볼 만큼 집요했던 사람이, 그 집의 시스템을 통제하는 권한을 끝내 몰랐을지는 이 자리에서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조사실을 나서기 전, 정세린은 복원 진술 출력물의 두 번째 문장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 복원 진술 ]
"바로 앞을 막아섰어요. 실랑이가 났고, 몸이 크게 쏠렸어요."
[ 해석 개입도 ] 높음
오전 특별 진술실의 바벨 시스템이 이 문장 뒤에 '강도윤'의 이름을 1순위로 밀어 올렸을 때, 시스템이 쥐고 있던 패는 프라이버시 모드 실행 계정, 비상 호출 취소, 그리고 1층 서재라는 로그인 기록뿐이었다. 기계의 논리 속에서 그 데이터들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알고리즘 안에는 끝내 들어가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두 달 전 차민아가 형부의 계정을 들여다본 일. 저녁 식사 중 언니가 동생에게 던진 원망. 그리고 이십 분 뒤, 자매가 2층 복도에서 다시 마주 서게 된 이유.
정세린은 조사실 문을 닫으며 복도를 내다보았다. 수첩 맨 아래에 날려 쓴 글씨가 뚜렷했다.
손상된 8초. 원본 재확인 필요.
"또 그 계정 썼지" 발화의 방향 재확인.
차민아, 마스터 계정 인지 여부.
복도 저 끝, 강력2팀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막내 형사가 부산하게 서류를 출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세린은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바벨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남편을 지목했다. 기계의 숫자는 전부 정확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센서와 렌즈 중 어느 것도, 사건 직전 차민아가 복도에 나와 언니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 복도에 두 달치 감정이 남아 있었다는 점도 읽어내지 못했다.
기계가 보지 못한 진실, 로그에 남지 않은 감정의 흔적.
그런 건 아직 누구도 제대로 묻지 않은 사람, 그 집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