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02분.
경기고양경찰서 형사과 소회의실.
차가운 철제 책상이 놓인 조사실이 아니었다. 탁자는 낮았고, 의자는 푹신했다. 탁자 위에는 자판기에서 막 뽑아 온 핫초코 종이컵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정세린이 직접 타 온 것이었다.
열세 살 강윤서는 교복 대신 펑퍼짐한 학원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반쯤 묶여 있었고,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한쪽만 끼워진 채였다. 어젯밤 집 안에 경찰이 들이닥친 순간부터, 윤서는 줄곧 그런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막내 형사가 귀띔했었다.
"핫초코 좋아하지?"
윤서는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을 뿐, 컵으로 손을 뻗지는 않았다.
"오늘 학교는?"
"결석이요."
정세린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들고 온 태블릿은 화면을 끈 채 옆자리에 치워 두었다.
"어젯밤, 많이 무서웠지?"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이 후드티 소매 끝을 꾹 쥐고 있었다.
"질문 몇 가지만 할게. 어려운 거 아니야. 윤서가 본 것, 들은 것만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돼."
윤서가 다시 한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세린은 이미 확보된 진술과 겹치는,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던졌다.
"저녁 먹고 나서 바로 방에 들어갔지?"
"네."
"방에서 뭐 하고 있었어?"
윤서는 잠시 망설이다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유튜브요."
"헤드셋 끼고?"
"네."
정세린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어제 출동한 경찰 아저씨들한테는 밖에서 나는 큰 소리를 못 들었다고 했잖아.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그랬던 거야?"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세린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방에서 한 번도 안 나왔어?"
소매 끝을 쥐고 있던 윤서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정세린은 서두르지 않았다. 탁자 위 종이컵에서 피어오르던 단내 섞인 김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괜찮아. 나왔으면 나왔다고 편하게 말해도 돼."
윤서가 마침내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종이컵을 감싸 쥐었다.
"...화장실 가려고요."
"몇 시쯤이었어?"
"잘은 모르겠는데... 아홉 시쯤이요."
정세린은 아이의 눈을 똑바로 봤다.
"무슨 소리를 들었어?"
"쿵, 하는 소리요. 헤드셋을 끼고 있었는데도 들렸어요. 되게 컸어요."
"그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거야?"
"...네."
"복도에 나왔을 때, 뭐가 보였어?"
윤서는 두 손으로 종이컵을 더 단단히 쥐었다.
"...이모요."
정세린은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쥐었지만, 아직 수첩에 적지는 않았다.
"이모가 어디 있었어?"
"복도 중간이요. 유리 난간 쪽에서 조금 떨어진 데."
"이모가 뭐 하고 있었어?"
윤서는 달싹거리던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놓았다.
"그냥, 서 있었어요."
"서 있었다고?"
"네."
정세린이 볼펜 끝을 수첩 위에 가볍게 댔다.
"이모 표정은 어땠어?"
"...몰라요. 어두워서."
"복도 조명이 꺼져 있었어?"
"조명은 켜져 있었어요. 근데 이모 얼굴이 제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럼, 어느 쪽을 보고 있었어?"
윤서는 멍하니 손안의 컵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요."
정세린은 그 짧은 단어를 적었다.
1층. 이미 엄마가 떨어져 있던 자리.
"이모한테 말 걸었어?"
"아니요."
"왜?"
윤서는 꽤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소회의실 문 밖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무겁게 지나쳐 갔다.
"무서웠어요."
정세린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모가 무서웠던 거야, 아니면 그 상황이 무서웠던 거야?"
윤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둘 다요."
정세린은 볼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
"이모가 계단 쪽으로 내려갔어요. 그러고 나서 1층 아빠 서재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아빠가 거실로 나가는 게 보였어요."
"아빠가 서재에서 나온 게, 이모가 1층으로 내려간 다음이라는 거지?"
"네."
정세린은 그 결정적인 순서를 메모했다.
차민아가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강도윤이 현장을 목격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이모가 계단으로 내려가기 전에, 이모 손이 어디 있었는지 혹시 기억나?"
윤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에요?"
"이모가 어딜 짚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팔을 밑으로 내리고 있었는지."
윤서는 천장 어딘가를 응시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난간을 잡고 있었어요."
"어느 쪽 손이었는지는?"
"오른손이요."
"확실해?"
"네. 복도 오른쪽 벽 쪽에 붙어 서 있었으니까요."
정세린은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오른손. 난간. 복도 오른쪽.
조사실에서 차민아는 언니와 '가까이 서 있었다'고만 진술했다. 그 손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세린도 아직 묻지 않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윤서가 목격한 차민아는, 추락 직후 난간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그 손이 언니를 밀어낸 뒤의 손이었는지, 아니면 눈앞의 상황 앞에서 몸을 지탱하려던 손이었는지는 다시 갈라서 따져봐야 했다.
정세린은 속을 가라앉히며 담담하게 물었다.
"윤서야, 이모가 복도에 서 있을 때... 엄마는 어디 있었어?"
윤서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아래요."
"아래라는 게..."
"이미, 아래에 떨어져 있었어요."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정세린은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쿵 소리를 듣고 헤드셋을 벗은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와 본 것은, 이미 1층으로 추락한 어머니와, 그 난간을 꽉 쥔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모의 뒷모습이었다.
"윤서야, 이모한테 이 얘기 했어?"
"아니요."
"아빠한테는?"
"아니요."
"나한테, 오늘 처음 하는 얘기야?"
윤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컵 안의 핫초코는 이제 완전히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정세린은 볼펜 뚜껑을 닫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아주 잘 말해줬어."
윤서는 그제야 식은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테이블만 응시하며 아주 작게 물었다.
"이모가... 잘못한 거예요?"
정세린은 가만히 아이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그건 아직 몰라."
"근데요 형사님."
윤서가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모가... 울고 있었어요. 소리는 하나도 안 났는데."
정세린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아래를 보면서?"
"네."
소회의실 문을 닫고 나온 정세린은 복도 한가운데서 걸음을 우뚝 멈췄다.
윤서가 뱉어낸 말들은 단순한 보강 진술이 아니었다. 추락 직후 복도에 차민아가 서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난간을 붙든 채 소리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장면. 그 두 가지는 오늘 아침 특별 진술실의 바벨이 세워둔 사건의 전제를 처음부터 다시 보게 만들었다.
시스템의 숫자는 여전히 94.2%의 확률로 남편 강도윤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제 그 숫자만으로는 진실의 방향을 확정할 수 없었다.
복도 저 끝, 강력2팀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동료 형사가 여전히 데이터 쪼가리를 출력하고 있었다.
정세린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강력팀 사무실이 아니었다. 다시, 지하 1층 특별 진술실이었다.
처음부터 방향이 어긋나 있던 질문을 다시 던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