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종결

by TAFO

오전 8시 49분.

경기고양경찰서 형사과 강력2팀 사무실.


정세린은 밤새 작성한 서류를 책상 위에 엎어 놓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3월의 아침이었다. 주차장 위로 옅은 햇빛이 깔렸고, 밤사이 내린 봄비 탓에 검은 아스팔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서류를 뒤집었다.


[ 수사 결과 보고 ]
사건번호: 2026-0316-HM-044
사망자: 고(故) 차수연


피의자: 강도윤
행위: 패밀리 프라이버시 모드 임의 실행 / 자동 비상 호출 고의 취소
혐의: 유기
의견: 불구속 송치


피의자: 차민아
행위: 피해자 팔 파지 / 상호 중심 이탈 / 피해자 난간 충돌 및 추락
혐의: 과실치사
의견: 불구속 송치


정세린은 그 두 줄의 결론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살인이 아니었다. 그것이 정세린이 도달한 최종 결론이었다.


동생이 언니의 팔을 잡았고, 언니가 거칠게 뿌리쳤고, 엉킨 두 사람 모두 중심을 잃었다. 그 찰나의 순간 차민아의 손아귀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렸는지, 그녀의 무의식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했는지는 이 세상 어떤 센서도 기록하지 못했고 어떤 첨단 알고리즘도 복원해 내지 못했다.


전지전능해 보이던 바벨조차 끝내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곳이 바로 시스템이 멈춰 선 자리였고, 수사관인 정세린이 홀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던 책임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펜을 들어 서류 맨 아래에 반듯하게 서명했다.


* * *


오전 10시 13분.
경기고양경찰서 별관 지하 1층.


정세린은 마지막으로 그 서늘한 방에 들어섰다.


혼자였다. 분석지원관 김현석은 없었다. 단말기는 켜져 있었고, 정면 거대한 스크린에는 사건 파일의 최종 요약본이 정적 속에 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제 쪽으로 당겼다. 차가운 금속 스탠드가 책상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지난 사흘간 지겹도록 들었던 마찰음이었다.


정세린은 굳이 화면을 올려다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묻겠습니다."


시스템의 구동음이 돌기 시작했다.


"그날 밤, 차민아 씨의 손이 팔을 거칠게 쥐었을 때... 당신은, 무서웠습니까?"


방 안이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처리음이 다시 돌았다. 아주 오래 돌았다. 정면 패널의 파형이 길을 잃은 듯 몇 번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화면에 내려앉은 것은, 죽은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건조한 텍스트였다.


[ 복원 결과 ]
유효 발화 구간 없음.
해당 질문에 대응하는 음성 데이터 부재.


[ 시스템 주석 ]
인간의 '감정 상태 복원'은 본 시스템의 지원 범위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정세린은 그 건조한 문장을 가만히 읽어 내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삭막한 방에 홀로 앉아 소리 없이 웃었다. 아주 짧고 씁쓸한 웃음이었다.


시스템은 지독하게 정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계산과 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읽어내는 인간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보고 싶은 것부터 보았다. 경고문보다 권고안을 먼저 따랐고, 작은 주석보다 크고 선명한 숫자를 먼저 믿었다.


강도윤 범행 관련성 94.2%.


오전 시연 때 그 압도적인 이름이 화면을 집어삼켰을 때, 방 안에 있던 그 누구도 숫자 옆에 붙은 작은 주석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실제 사용자가 명의자와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 그 치명적인 맹점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또렷하게 적혀 있었는데도 말이다.


정세린은 마이크에서 미련 없이 손을 뗐다.


* * *


오전 11시 30분.
경기고양경찰서 1층 민원실 옆 복도.


강도윤은 송치 서류를 받아 든 채 한참을 망연히 서 있었다.


유기. 불구속 송치.


그는 서류를 접지도 못한 채 정세린을 쳐다보았다.


"민아는... 처제가 어떻게 됩니까?"


"과실치사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갑니다."


"살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수사 결과, 고의적 살인으로 볼 증거가 없었습니다."


강도윤의 고개가 푹 꺾였다. 사흘 내내 짓물러 있던 눈 밑이 여전히 붉었다. 오만하게 걷어붙이고 있던 셔츠 소매는 단정하게 내려져 있었다.


"저 때문에, 민아가...."


그는 거기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세린이 서늘하게 폐부를 찔렀다.


"1층 서재에서 그 프라이버시 모드를 켜지만 않았어도, 당신 아내가 동생에게 그토록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내진 않았을 거란 뜻입니까?"


강도윤은 대답 대신 서류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맞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섰다. 민원실 유리문이 무겁게 열렸다 닫혔다.


* * *


오후 1시 58분.
경기고양경찰서 형사과 강력2팀 사무실.


정세린은 두꺼운 사건 파일을 탁 덮었다.


막내 형사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선배,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아직 검찰이랑 법원 판단 남았어."


"그래도 일단 우리 손은 떠났잖아요."


정세린이 커피를 받아 들자, 막내 형사가 태블릿 하나를 쓱 내밀었다.


"본청 바벨 시범 운영팀에서 피드백 리포트가 내려왔습니다."


[ 바벨 수사 지원 시스템 / 시범 운영 피드백 리포트 ]
사건번호: 2026-0316-HM-044


본 사건 처리 과정에서 1차 분석 결과와 최종 수사 결과 간 주요 변수의 치명적 불일치가 확인됨.


[ 불일치 원인 ]

초기 입력 단계에서 복도 내 '제3 인물 존재' 정보 미반영.

목격자 진술 수집 지연으로 인한 시스템 분석 전제 오류.


[ 향후 개선 권고 ]

현장 내 전 인물의 물리적 동선 완벽 파악 후 분석 개시할 것.

1차 권고 이후 추가 변수 발생 시, 즉시 재분석 요청 프로토콜 수립할 것.


※ 본 시스템은 '제공된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만' 연산합니다. 데이터의 완전성은 오직 수사기관의 현장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정세린은 리포트를 쭉 훑어 내렸다.


시스템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영리하고도 정직하게 그어 놓았다. 자기가 어디서 잘못 디뎠는지 스스로 명확히 짚어냈다. '초기 입력 단계에서 정보 미반영.' 그 한 줄은 이 사건이 어디서부터 비틀렸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바벨이 무고한 남편의 이름을 띄웠을 때도, 여동생으로 타겟을 바꾸었을 때도, 살인의 고의성 판단을 거부했을 때도, 기계는 오직 '인간이 쥐여준 데이터 안에서만' 충실히 움직였을 뿐이다. 기계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전제를 던져준 인간이 틀렸던 것이다. 바벨은 단 한 번도 자기 한계를 숨긴 적이 없고, 경고 주석을 빠뜨린 적도 없었다.


다만 그 주석의 이면을 읽어내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일이었다.


정세린은 리포트 하단에 거침없이 수신 확인 서명을 휘갈겼다.


* * *


오후 3시 22분.
고양 장항지구 라크힐 스마트빌 6동 앞.


노란 폴리스라인은 이미 말끔하게 걷혀 있었다.


정세린은 차 운전석에 앉은 채, 그 완벽하고 멀끔한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통창에 늦은 오후의 햇빛이 차갑게 반사되고 있었다. 집 안은 텅 빈 듯 어두웠다. 강도윤은 다른 거처를 찾았을 것이고, 아이는 오늘도 헐렁한 학원 후드티를 입고 어딘가에 웅크려 있을 것이다.


정세린은 핸들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오래도록 묵상했다.


퇴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사건의 시발점이 된 현장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저 완벽한 스마트홈은 사건 내내 너무도 유능하고 성실했다. 문이 열린 시각, 주인의 심박수가 치솟은 시각, 바닥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진 시각, 비상 호출이 취소된 시각까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모든 궤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저 똑똑한 집이 끝내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이체를 취소하기 전, 모니터 앞에서 언니가 얼마나 오래 망설이고 절망했는지.


복도로 뛰쳐나가기 전, 방문 앞에서 동생이 어떤 말을 삼키며 눈물을 닦았는지.


난간 앞의 그 51초 안에서, 두 자매가 서로의 눈빛을 보며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원망했는지.


집은 그것을 몰랐다.


수백억짜리 바벨 시스템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정세린은 묵묵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


경찰의 수사는 끝났고, 공은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갔다. 차민아의 손끝에 실린 힘의 크기, 그 속에 담긴 의도는 이제 법정의 차가운 저울이 달아볼 몫이다. 정세린은 자신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보았고, 잘라낼 수 있는 경계선에서 사건을 잘라냈다. 그 너머는 다른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핸들을 틀어쥐는 손끝이 찌릿하게 차가웠다.


* * *


오후 4시 41분.
경기고양경찰서 별관 지하 1층 복도.


퇴근하는 길, 정세린은 일부러 별관 지하로 내려가 그 복도를 한 번 더 지났다.


복도 끝, 굳게 닫힌 회색 방음문.


[ 바벨 특별 진술실 ]
수사 보조 시범 운영 중


은빛 명판은 사흘 전과 다름없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방 안의 기척은 없었고 불은 꺼져 있었다.


정세린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그대로 지나쳤다.


계단을 오르며, 그녀는 사흘 전 아침을 떠올렸다.


처음 이 방에 발을 들였던 날. 당시 이 방은 흔한 빗길 교통사고 하나를 단 10분 만에 정리했다. 죽은 자의 복원된 목소리가 속도와 조향 각도를 증언했고, 숫자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졌다.


그날 김현석이 '종결 의견서 생성' 버튼을 누르기 직전, 자신이 왜 찜찜한 기분으로 마이크에서 손을 떼었는지 정세린은 이제 명확히 알 것 같았다.


사흘 전 아침, 이 방이 다루었던 것은 '물리의 법칙'이었다. 속도와 각도, 타이어의 마찰 계수.


하지만 그날 오후 이 방에 밀어 넣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었다. 증오와 미련, 엇갈린 의도와 거짓말.


그 이질적인 두 가지를, 결코 동일한 알고리즘의 공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시스템이 모니터에 내놓는 결과물의 형태는 똑같이 생겼다. 96.1%니, 94.2%니 하는 절대적인 숫자의 형태를 하고서.


물론 시스템이 그 본질적인 차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기계는 항상 데이터의 맹점을 알고 경고성 주석을 성실하게 달아두었다. 해석 개입도 높음. 단독 증거 사용 불가. 고의성 판단 불가.


다만 그 주석들은 언제나, 시스템이 확신하는 거대한 숫자보다 훨씬 작고 희미한 글씨로 인쇄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대개,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작은 글씨보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대한 숫자를 먼저 믿기 마련이다.


1층 현관문을 묵직하게 밀고 나왔다.


바깥은 이미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텅 빈 주차장 가로등에 하나둘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정세린은 코트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며 먹먹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건은 끝났다. 적어도 그녀의 손에서는 완전히 떠났다.


하지만 지하 1층 복도 끝 저 서늘한 방은, 내일도 다른 사건의 파편들, 다른 누군가의 죽음, 다른 망자의 목소리를 삼키며 오늘과 비슷한 계산과 권고를 내놓을 터였다.


그리고 사건에 치인 누군가는, 그 큰 숫자를 보는 순간 실제 결론을 파헤치기도 전에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을 가장 먼저 읽어내 버릴지도 모른다.


정세린은 차 문을 열었다.


형사의 수사란, 본래 산 사람의 욕망과 거짓말을 뚫고 지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기계의 입을 빌려 직접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목소리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를 의심하기보다, '저 목소리가 지금 내가 믿고 싶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를 먼저 따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완벽을 기하는 시스템의 한계가 아니라, 기계의 오답마저 진실로 만들어버리려 하는 인간의 맹신.


정세린은 운전석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가로등 불빛이 주차장을 환하게 밝혔다. 차 키를 돌리자 엔진이 낮고 육중하게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출구 쪽을 향해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지하 1층 복도 끝, 회색 방음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묵직한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불 꺼진 방 안에는 서늘한 명판만이 남았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누군가는 또다시 구원처럼 그 기계의 문을 열 것이다.


< 제2부. The Detective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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