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02분.
경기고양경찰서 별관 지하 1층.
차민아는 차가운 회색 방음문을 마주 보고 꼿꼿이 서 있었다.
정세린이 그 옆으로 다가섰다.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고지합니다. 이 방에서 하시는 진술은 공식 수사 기록에 남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변호인 동석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혼자 들어가시겠습니까?"
차민아는 방음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 방에 들어가면... 진짜 언니 목소리가 먼저 나오나요?"
"...나옵니다."
차민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게 닫혀 있던 특별 진술실의 문이 열렸다.
방 안 중앙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정세린이 미리 요청해 둔 것이었다. 김현석은 잠시 정세린을 응시하더니, 아무 말 없이 벽 쪽에 접이식 의자 하나를 더 끌어다 앉았다.
차민아는 검은 지향성 마이크가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정세린은 그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마이크의 각도를 차민아 쪽으로 살짝 틀어주었다.
정면 스크린에 붉은색 사건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 사건 파일 ]
2026-0316-HM-044
고(故) 차수연, 여, 39세
관계인 진술 4차 — 차민아
김현석이 단말기를 두드리며 건조하게 말했다.
"세팅 준비됐습니다."
정세린은 차민아를 바라보았다.
차민아는 책상 위의 마이크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이내 정면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작하겠습니다."
정세린이 첫 번째 질문을 장전했다.
"차수연 씨. 사망 전날인 3월 15일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기계의 구동음이 짧게 돌았다. 그리고 곧바로 천장 스피커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 복원 진술 ]
"낮에 민아한테 전화했어요. 그냥 안부 전화가 아니라... 저녁에 밥 먹으면서 할 얘기를, 미리 찔러보려고요."
[ 고인 일치도 ] 88.6%
[ 해석 개입도 ] 중간
무릎 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던 차민아의 손이 흠칫 떨렸다.
정세린이 다음 질문을 이었다.
"무슨 얘기였습니까?"
[ 복원 진술 ]
"의심했어요. 민아가 우리 남편한테... 꼬리 치면서 접근한 거 아닌가 하고.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지 남편이랑은 이혼 중이지, 돈도 한 푼 없지, 불쌍해서 우리 집에 들였더니.... 형부한테 잘 보이려고 그깟 비밀 계정 얘길 굳이 나한테 흘린 거 아닌가 싶고."
[ 고인 일치도 ] 85.2%
[ 해석 개입도 ] 중간
차민아는 눈을 감지 않았다. 파형이 일렁이는 정면 스크린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동생에게 보내던 생활비 이체를 취소하려 하셨습니까?"
[ 복원 진술 ]
"그랬어요. 너무 화가 나서. 그런데 민아가 돈 들어오자마자 귀신같이 찾아가 버려서... 낮에는 끝까지 따져 묻질 못했어요."
정면 패널에 수치가 갱신되어 올라왔지만, 지금 이 방 안에서 그 차가운 숫자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세린이 차민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민아가 천천히 눈을 맞췄다.
정세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기계의 짐작이 아니라, 당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차민아는 금속 마이크 스탠드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
"언니."
바닥에 낮게 깔리는, 평평하고 쉰 목소리였다.
"내가 말할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천장의 스피커도, 시스템의 거친 구동음도 잠시 멎은 듯했다.
"그다음 날 밤에, 복도로 나간 건 사실이야. 언니가 내 방문 앞을 지나쳐서 계단 쪽으로 가는 걸 보고, 뒤따라 나갔어."
정세린은 들고 있던 볼펜을 수첩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잖아. 사흘 전 저녁에 나한테 쏘아붙였던 그 말. 형부한테 대체 왜 그랬냐고. 왜 굳이 그 비밀 계정 얘길 나한테 고자질했냐고. 혹시 네가 형부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수작 부린 거 아니냐고."
차민아는 거기서 말을 한 번 끊어냈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날카롭게 퍼졌다.
"나 그런 거 아니었어. 진짜야. 형부가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데, 언니가 속고 있는 게 싫어서 알려준 거였어. 그냥 그것뿐이었어."
천장의 스피커는 침묵했다.
"근데 언니는 내 말을 안 믿었어. 그러면서... 당장 내일 짐 싸서 나가라고 했지. 다달이 주던 돈도 끊을 거라고, 네 이혼 소송이든 뭐든 이제 네가 알아서 하라고."
차민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억울했어. 억울하고 무서웠어. 내 소송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언니도 다 알면서. 그 한마디가 나한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뻔히 알면서."
정세린의 시선이 차민아의 옆얼굴에 조용히 머물렀다.
"언니가 매몰차게 돌아서려고 했어. 그래서."
차민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언니 팔을 잡았어."
방 안이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내 말 끝까지 들으라고. 제발 내 얘기 좀 듣고 가라고. 그냥 그거였어. 난간 쪽으로 밀친 게 아니야. 그냥 뒤에서 팔을 잡은 것뿐이었어."
차민아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하얗게 질리도록 맞잡혔다.
"언니가 내 손을 뿌리쳤어. 아주 강하게. 나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고, 언니 몸도 뒤로 크게 쏠렸어. 하필, 우리 집 유리 난간이 바로 거기 있었잖아."
정세린은 소리 없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언니 몸이 밖으로 넘어갔어. 내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차민아는 거기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늦었어."
방 안에서는 억눌린 흐느낌만이 맴돌았다. 김현석도 단말기 앞에서 굳어 있었다.
차민아가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난간을 잡고,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어. 1층을 내려다봤는데, 언니가 거기 있었어."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정면을 노려보았다.
"그 로그 기록도 다 보셨잖아요. 119 비상 호출 끊은 거 나 아니에요. 1층 서재에서 지 치부 들킬까 봐 형부가 끊은 거 맞아요. 나는 2층에서 그냥 얼어붙어 있었어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정면 스크린에 시스템의 최종 처리 결과가 아주 천천히 떠올랐다.
[ 관계인 진술 분석 ]
추락 직전 2층 복도 내 언쟁 및 신체 접촉 확인
신체 접촉 유형: 팔 파지 후 상호 중심 이탈
직접 타격 또는 의도적 추락 유도 여부 — 확인 불가
차수연 난간 충격 — 상호 동작 중 발생한 결과로 추정
[ 시스템 주석 ]
본 사건의 '고의성 판단'은 바벨 시스템의 분석 범위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수사기관 및 사법부의 최종 법적 판단을 요합니다.
정세린은 화면 맨 아래에 뜬 그 붉은색 주석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이 시스템이 가동된 이래, 처음으로 바벨이 판단을 유보했다.
주석은 이전에도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수치의 오차 범위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묻는 결론 앞에서 기계 스스로 멈춰 선 것이었다.
차민아가 텅 빈 천장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언니."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녀가 속삭였다. 스피커에서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가 나 의심하고 화낸 거, 그래, 내가 다 이해해. 근데 언니."
차민아는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그날 밤 내가 방에서 나갔던 건... 그냥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빌려고 나갔던 거였어. 진짜야."
정면 스크린에는 더 이상 어떠한 수치도, 확률도 올라오지 않았다.
바벨은 그 마지막 고백의 진위를 계산하지 않았다. 아니, 계산할 수 없었다. 기계의 알고리즘에는 '인간의 회한'을 측정하는 공식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 *
정세린은 먼저 특별 진술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차민아는 아직 방 안에 남겨져 있었다. 뒤따라 나온 김현석이 조심스럽게 무거운 방음문을 닫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현석이 복도에 기대서며 낮게 물었다.
정세린은 닫힌 문을 한 번 돌아보았다.
오늘 이 방에서 드러난 '물리적 진실'은 이랬다.
동생은 돌아선 언니의 팔을 잡았다. 언니는 그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둘 다 중심을 잃었고, 불운하게도 언니의 몸이 난간 밖으로 넘어갔다. 동생은 허겁지겁 손을 뻗었지만 한 발짝 늦었다.
그 찰나의 행위가 '고의적 살인'인지, '치사'인지, '과실'인지, 아니면 그 경계의 아득한 어딘가인지.
모든 것을 숫자로 재단하던 바벨조차 끝내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했다.
"처음 이 방 시연할 때 기억하십니까?"
정세린이 중얼거렸다.
"단순 교통사고 건은 고작 10분 만에 종결시켰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속도와 각도를 읊었고, 기계의 숫자들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종결 의견서가 인쇄돼 나왔습니다."
정세린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방은, 인간의 '고의성'은 자기들 분석 범위 밖이라고 한 발 물러서네요."
정세린은 수첩에 적어둔 메모들을 차분히 훑어내렸다.
팔을 잡은 것과 거칠게 밀친 것.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 것과 밖으로 밀어낸 것. 간발의 차이로 늦어버린 손과 애초에 뻗지 않은 손.
그 찰나의 틈새에는 어떠한 데이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옷깃이 스친 마찰음도 있었고, 목소리가 향한 방향도 있었고, 아이의 목격 진술도 있었지만, 정작 그 순간 차민아의 손끝에 얼마만큼의 '고의'가 실렸는지는 이 세상 어떤 최첨단 센서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차민아는 조금 전 마이크를 쥐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잡아당긴 게 아니야. 그냥 내 얘기 좀 들으라고 팔을 잡은 것뿐이었어.
정세린은 그 문장을 오래도록 노려보았다.
그 말이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거짓인지, 아니면 끝내 짜낸 진실인지. 그 순간 동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언니의 추락을 바랐는지 아닌지.
그것은 이 차가운 복도 안에서도, 수백 메가바이트의 파일 안에서도, 94.2%니 71.4%니 하는 숫자의 나열 속에서도 끝내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김현석이 담배를 꺼내려다 말고 다시 물었다.
"검찰에 바로 송치합니까?"
정세린은 한참 뒤에야 입을 뗐다.
"내일 아침까지, 조금 더 생각하겠습니다."
"뭘 더 생각합니까. 이미 나올 건 다 나온 거 아닙니까? 진술 확보했고, 신체 접촉으로 인한 인과관계 확인됐고."
정세린이 김현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법적으로 '충분한' 것과, 진실에 '맞는' 것은 다릅니다."
김현석은 입맛을 다실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복도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두꺼운 방음문 너머의 차민아는 아직 책상 앞 의자에 주저앉아 있을 것이다. 복원된 언니의 목소리가 맴돌던 텅 빈 스피커 아래에서, 홀로 무거운 시간을 견디며.
정세린은 수첩을 한 번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그리고 맨 아래 빈 공간에 마지막으로 세 줄을 눌러 적었다.
팔을 붙잡은 것과 밀쳐낸 것, 그 찰나의 사이.
그 모호한 거리에 법은 과연 어디쯤 선을 그을 것인가.
그리고 수사관인 나는, 이 서사의 꼬리를 어디서 자를 것인가.
다시, 기나긴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