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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30. 2023

(동화) 엄마라 불러도 될까요?

6년 만에     


5학년 개학 첫날이었다. 경원이가 교실에 들어와 어디에 앉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어떤 애가 불쑥 다가왔다. 

“6년 만에 같은 반 된 소감이 어떠냐?”

창민이었다. 

“어, 창민. 살아있었냐?”

경원이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인사했다. 순식간에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창민이가 경원이의 그 표정 기억난다는 듯 웃었다. 눈웃음이 가득한 외까풀의 눈이 여전하다. 몸집은 조금 통통해진 것 같았다.

“얘들아, 안녕~”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이들은 후닥닥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의 인사에 대답도 안 하고 얼어있다. 첫날은 원래 그렇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창민이만 선생님께 인사했다. 

“와~ 선생님 키 크시네요.”

선생님이 창민이를 쳐다보고 가볍게 웃었다. 선생님은 “심부름할 사람?”하고 물으셨고 창민이가 재빠르게 나갔다. 선생님은 창민이의 이름을 물었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속닥속닥 하면서 심부름을 시켰다. 선생님의 손이 창민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창민이는 선생님의 눈을 예의 바르게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하네.’

창민이는 유치원생 때도 선생님을 잘 따랐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도 창민이를 예뻐하셨다. 소풍 갈 때면 손을 제일 많이 잡아주셨다. 키가 큰 편이었던 경원이는 뒤에 서서 따라가야 했고 선생님 손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다. 키가 커봐야 여섯 살 꼬맹이인데. 

‘맨날 선생님을 독차지하는 게 얄미워서 물놀이 때 물총을 쐈었는데 쟤는 다 잊었나 보네?’

경원이는 그게 벌써 6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날 창민이가 얼굴에 물을 맞고 우는 바람에 경원이는 물놀이를 즉시 금지당했었다. 유치원 마당에서 친구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혼자서 생각 나무 옆에 서 있어야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물총을 번쩍 들어 올리고서.

‘왜 저렇게 선생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할까?’     

                           

어린이날엔 새 핸드폰     


어린이날이 끝났다. 축제와 같이 즐겁기도 하고 뭔가 뒤숭숭하기도 한 날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또 뭔가를 자랑해 대겠지.’

경원이는 뭔가 시큰둥한 마음이 되어 교실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이 시끌시끌했다.

“우와 멋지다!”

주인공은 창민이었다. 어제 새 핸드폰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출시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최신폰으로. 경원이는 창민이 옆자리에 앉았다.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경원이 자리였다. 아이들은 창민이를 둘러싸고 핸드폰을 한 번씩 사용해 보는 중이었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이것저것 눌러보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핸드폰이랑 비교도 해보고, 노래를 틀어보면서 음질도 비교해 보았다.      

경원이도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핸드폰을 받았다.

“너한테 비싼 핸드폰을 사줄 수 없는 것은 아냐. 하지만 초등학생이 비싼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눈치 빠른 매장 직원은 엄마의 말을 듣고 최신폰의 전전 버전이 적당할 것 같다고 추천했다. 경원이도 좋다고 했다. 그것만 해도 사용하던 핸드폰보다 몇 배는 성능이 좋았다. 경원이는 핸드폰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엎어놓은 채. 

‘초등학교 5학년에게 최신폰은 좀 그렇지.’

애써 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경원이도 “최신폰, 나도 좀 보자” 하고 싶었다.

‘에휴, 이놈의 자존심.’ 

조회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창민이는 경원이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마치 핸드폰을 판매하는 것처럼 자세히 설명하니 이건 뭐 설명이 아니라 설득을 하는 것 같았다.

“어, 좋네. 축하해.”

경원이가 이렇게 말하자 창민이 앞에 앉은 수아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그렇게 통 크게 사주신 거야? 엄마? 아빠?”

“......”

무슨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창민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말이 없다. 경원이는 창민이의 표정을 힐끔 보았다. 창민이는 뭔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말을 못 해?”

수아가 자기 말에 대꾸하지 않는 창민이를 보며 따지듯이 물었지만 그 대답을 듣기 전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엄마에 대한 시를 쓰라고?     


“오늘은 시를 써보려고 해요. 주제는 엄마입니다. 엄마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부담 없이 쓸 수 있겠죠?”

모레가 어버이날이라 준비하신 수업인 것 같았다. 선생님은 프린트물을 나눠주셨는데 ‘엄마’라는 수필이었다. 

“이걸 먼저 읽어보고 자신의 경험을 시로 써보는 겁니다.”

선생님이 주신 글에 나온 엄마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들이 장난 삼아 벽장에 숨었는데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알고 쩔쩔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읽을 때는 몇몇 여자아이들이 훌쩍거렸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아이들은 글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모두들 사각사각 열심히 글을 썼다. 

경원이도 열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글처럼 사랑스러운 엄마는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은 온통 엄마의 잔소리뿐이었다. 할 수 없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썼다.   

  

우리 엄마 잔소리는 잘 나가는 래퍼보다 빨라요.

일어나 밥 먹어 양치해 학교 가  

손톱 발톱 머리카락 잘라라 잘라요 잘라야지

손 발 이빨 씻어라 씻어요 치카치카 푸카푸카

고등어는 오메가 쓰리 당근은 항산화 성분 견과류도 좋아

우리 엄마 머릿속은 슈퍼 컴퓨터 

그런데 우리 엄마 마음은 밴댕이 소갈딱지

오늘 아침 안 먹었다고 삐쳐서 인사도 안 해줬대요   

    

앞에 앉은 시우가 슬쩍 읽어보더니 큭큭 웃으면서 랩 하듯이 말했다.

“야, 한 개 빠졌다. 공부해, 숙제해, 학원 가”

경원이가 글을 거의 다 썼을 때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이제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줍시다. 글쓰기 공책을 자기 옆 사람에게 넘기세요.”

경원이는 자신의 공책을 옆 분단에 넘기고 창민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민이가 툭, 건넨 공책을 보고 경원이는 당황했다. 펼쳐진 공책에 시는 없고 이상한 낙서만 가득했다. 다른 쪽을 넘겨봐도 시는 없었다. 경원이는 선생님이 보시면 어쩌나 하여 창민이를 한번, 선생님을 한번 살펴보았다. 낙서에는 엄마라는 말이 쓰여 있기는 했다. 생각만 하다가 결국 못 썼나 보다.

“자, 다음 사람에게 또 공책을 넘기세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창민이의 공책을 옆 분단으로 넘겼다. 수지가 받자마자 선생님께 고자질했다.

“선생님, 창민이는 시는 한 줄도 안 쓰고 낙서만 했어요.”

그때 어떤 아이가 말했다.

“창민이는 새 핸드폰이 생겨서 지금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어요.”

“새 핸드폰 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시를 써야 하는 거 아니냐? 나라면 이렇게 쓰겠다. 부모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이때다 싶은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선생님이 와서 창민이의 공책을 살펴보더니 흠… 하고 창민이를 쳐다보았다. 창민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새 핸드폰을 가진 아이의 표정     


“경원아, 같이 가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을 때 창민이가 경원이에게 다가왔다. 

“어디 가냐?”

경원이가 물었다.

“나, 집에 가지.”

경원이 기억에 창민이네 집은 시장 뒤편인데 그와는 반대쪽으로 가고 있는 경원이를 따라왔다.

“너희 집 저쪽이지 않아?”

“어? 응! 그렇지. 너랑 얘기하느라고 가는 방향을 잃었네. 잘 가.”

경원이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 다음 몇 발자국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왜 저래? 뭔가 할 말을 다 못한 사람처럼.’

경원이는 저만큼 가고 있는 창민이를 향해 소리쳤다.

“창민아, 나 학원 가기 전에 한 시간 남는데 같이 놀래?”

“그래!” 

창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319동 놀이터에 갔는데 창민이가 놀지는 않고 놀이터를 뱅뱅 돌았다. 철봉에서도, 그네에서도 어슬렁어슬렁. 그네에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경원이가 말했다.

“네 폰 최신폰이라고 애들이 엄청나게 부러워하던데?”

“아… 이거?”

“나도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새 핸드폰을 받았는데 네 것처럼 좋은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게임이 엄청 잘 돌아간다. 와…”

그런데 창민이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창민아, 그건 최신 핸드폰을 가진 애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지.”

새 핸드폰 샀다고 의기양양 떠들 때는 얄밉더니 또 이런 표정을 지으니 경원이는 마음이 안 좋았다. 아무래도 창민이의 표정은 뭔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예를 들면 새로 산 핸드폰 액정이 깨졌을 때. 창민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이 핸드폰 사느라고 한바탕 했다.”

창민이의 이야기는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새엄마     


4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그날 창민이는 마당에서 자전거 체인을 고치고 있었다. 타이어에 바람도 넣었다. 

“아빠가 결혼할 사람 데려올 거니까 오늘은 나가지 말고 있어라.”

아빠는 늦잠을 자고 있던 창민이에게 당부했었다. 할머니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집 안을 청소하셨다. 그때 아빠가 어떤 아줌마와 함께 들어왔다. 키가 창민이보다 한 뼘 정도 컸다. 짧은 단발머리에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그 뒤에 따라왔다.

“안녕? 네가 창민이구나?”

아줌마는 고개를 숙여서 창민이를 바라보았다. 평상시의 창민이라면 분명히 “안녕하세요. 저는 창민이라고 해요. 아줌마 참 예쁘시네요. 원피스도 잘 어울려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창민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깐 눈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에 아빠가 들어가자고 했고 아줌마와 여자애는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갔다. 아빠랑 아줌마가 구두를 벗고 거실에 들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아이는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가 어른들 이야기가 길어지자 몸을 비비 꼬았다. 아줌마가 소곤소곤 뭐라고 하자 아이는 마당으로 나와 창민이 옆에 와서 앉았다. 

“오빠는 몇 살이야?”

“나 5학년인데.”

여자애는 이름이 소진이이고 아홉 살이라고 했다. 

거실에 있는 미닫이문을 닫지 않아 어른들 이야기가 마당으로 흘러나왔다. 창민이는 자전거를 건성으로 닦으면서 아빠가 하는 말을 들었다. 결혼식은 간단히 가족들끼리의 식사로 대신하고 혼인신고만 한다고 한다. 집은 근처 원룸을 구했고 일 년쯤 뒤에 방 두 개나 세 개짜리로 늘려가면 창민이도 데려가겠다고. 

“창민이 식사와 빨래는 모두 저희가 할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잠만 여기서 자면 됩니다.”

아빠가 말했다. 아줌마는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는 문제없다고 말하고는 슬쩍 창민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곁에 선 소진이도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나 보다.

“창민이도 아빠 닮아서 자전거 좋아하는구나?”

어느덧 마당에 내려온 아줌마가 말했다.

“창민아, 내일 다 같이 자전거 타러 갈까?”

창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이도 좋다고 했다.      

다음날 네 사람은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거기에 공용 자전거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와 창민이, 소진이는 자기 자전거를 타고 아줌마는 공용 자전거를 대여했다. 코스는 창민이가 정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쭉 가면 내리막길이 나와요. 5분 정도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왼쪽으로 가다 보면 다리 건너에 창릉천 자전거 도로가 있어요. 그 길 쭉 따라가면 한강까지도 갈 수 있어요.”

창민이가 앞에 가고 소진이가 그다음, 그리고 아빠랑 아줌마가 따라왔다. 창릉천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길 따라 심어진 벚나무에는 꽃이 한창이었다. 벚꽃 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창민이의 어깨에, 소진이의 머리에 내려앉았다가 가볍게 날아갔다. 

“오빠, 너무 빨리 가지 마.”

소진이가 뭐라고 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걷는 동안 소진이의 자전거를 대신 끌어주자 금세 화를 풀었다. 

‘같은 반 애들을 만나도 좋을 것 같아. 나 혼자 자전거 탈 때마다 그 애들이 가족들과 함께여서 부러웠는데.’

창민이는 어깨가 쫙 펴졌다.      

“많이 먹어.”

아줌마가 창민이에게 김밥을 건네주었을 때 소진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줌마는 웃으면서 얼른 소진이에게도 김밥을 건넸다.

“너도 많이 먹어.”

티슈를 건네주고, 캔을 따주고, 옷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는데 뭔가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웠지만 창민이는 싫지 않았다. 

‘엄마가 생기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처음부터 엄마가 있었던 애들은 이런 기분 모르겠지?’

“… 같이 드세요.”

아줌마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청둥오리다. 아기오리도 있어!”

소진이가 소리쳤다. 엄마 청둥오리 뒤에 새끼오리 여섯 마리가 줄지어 따라가고 있었다. 엄마오리가 헤엄치면 따라서 헤엄치고 걸으면 뒤뚱뒤뚱 따라 걸었다. 그중 한 마리는 물장난을 치느라 자꾸 뒤처졌다. 창민이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엄마 청둥오리는 한참을 무심하게 앞서가다가 잠시 멈춰 뒤돌아보았다.  

“꽥-”

엄마 청둥오리가 소리치자 정신이 들었는지 그 아기오리는 후닥닥 다른 오리들을 따라갔다. 엄마 말을 듣고 달려가는 품이 제법 빠른 것이 기특했다. 엄마 청둥오리는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들어 창민이네 가족을 쳐다보았다. ‘오, 보기 좋은 가족일세’ 인사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여섯 마리도 엄마오리를 따라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느라 버둥거렸다.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렸다. 아줌마가 창민이와 소진이를 찍고 있었다. 창민이가 브이를 그렸다. 아빠가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아줌마가 창민이 곁에 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빠는 사진을 찍다 말고 가슴이 벅찬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을이 하얀색 구름 곁에서 붉게 물들었다.      

“창민아, 다음 주 토요일에는 아줌마랑 둘이서만 영화 보러 갈까?”

“나두 나두!”

소진이가 응석을 부렸다. 

“나두 나두!”

아빠도 소진이를 흉내 내어 응석을 부렸다.

“그 영화는 12세 이상이라 소진이는 못 봐. 엄마 그거 꼭 보고 싶단 말이야. 오빠랑 보고 올게. 다음엔 꼭 같이 보자. 약속! 창민이 아빠는 그날 소진이랑 데이트하세요.”

아줌마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소진이를 잘 달랬다.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다. 창민이는 아줌마랑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오락실에도 들렀다. 영화는 보는 내내 웃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락실에서 창민이가 좋아하는 총 게임이랑 운전 게임을 했다. 식사는 창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 

“오늘 어떤 게 제일 재미있었어?”

“다 재미있었어요.” 

“다음 주에는 뭐 하고 놀까? 아이스링크 갈까? 스케이트 탈 줄 알아?”

“네, 인라인 스케이트 탈 줄 아니까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줌마가 손을 번쩍 들어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이파이프 하자는 뜻이다. 창민이도 손을 내밀어 살짝 부딪쳤다. 

“좋았어! 나도 스케이트 좋아해. 신난다. 아들 있는 친구들 엄청 부러웠는데 이제 나도 아들이랑 가면 되겠다.”

스케이트랑 아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줌마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창민이도 기분이 좋았다. 

“이크 소진이 올 시간 됐다. 뛰자.”     

창민이는 엄마가 있다면 장미반 선생님처럼 얌전한 사람일 거라 상상했다. 장미반 선생님은 긴 생머리에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했다. 말도 예뻤다. 언제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바깥 활동을 할 때는 손을 잡아주셨다. 그런데 아줌마는 뭐랄까, 좀 장난꾸러기 같았다. 우선 머리 모양부터. 짧은 단발머리가 뛸 때마다 나풀거렸다. 긴치마가 펄럭이는 게 불편할 것 같은데도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뛰었다. 저만큼 앞서가더니 뒤돌아서 창민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는 사람 꿀밤 맞기!”

“그럼 동시에 출발해야죠!”

창민이가 따라가며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어.”

뛰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준비”

창민이와 눈싸움을 하고 나서 

“어! 저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켜 창민이가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

“출발!”

외치고, 달려 나간다.

“어!”

창민이는 주춤하다가 따라간다.  

“헉, 헉, 뭐야. 내가 진 거야? 앙, 억울한데.”

창민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웃었다.     

드디어 4월 마지막주 토요일, 이삿날이 되었다. 할머니 집은 시장 골목 뒤편에 있고 아빠 집은 골목을 나오면 큰 길가에 있다. 아빠한테 들은 대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그 짧은 사이에 아줌마가 달려와서 문을 열어주는 게 창민이는 기뻤다. 

“창민아, 어서 와! 소진아 오빠 왔네”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가 웃으며 인사했다. 이삿짐은 거의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

“많이 먹어.”

아줌마는 닭볶음 접시를 창민이 쪽으로 밀어주었다.

“처음 볼 때는 엄청 싸했는데 막상 같이 일해보니 사람이 너그럽고 좋더라. 낯선 회사에 잘 적응하게 도와준 것도 고맙고. 내가 자전거만 알지 계획서, 보고서, 품의서 이런 거는 하나도 몰라 힘들었는데.”

“누구 이야기하는 거야?”

아줌마가 물었다.

“소진이 엄마 이야기 하는 거지.”

아빠가 말했다. 아줌마는 싱긋이 웃었다.

밥을 빨리 먹은 아빠가 사과를 먹으며 말했다. 사과가 사각사각 유쾌한 소리를 냈다. 아빠는 아줌마와 사내 커플이라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을 때 아빠는 말수가 적었다. 서로 얼굴을 보는 시간도 식사 때뿐이었는데 식사시간은 늘 딸그락 소리만 울렸다. 가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들렸다. 어쩌다 이야기가 터지면 그 이야기는 식사를 멈추게 했다. 오래된 페인트 가게를 하시는 할아버지는 이 직업 저 직업으로 떠도는 아빠가 맘에 안 든다고 했다. 자신의 페인트 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에 단골이 많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했다. 아들을 칠쟁이로 만들려 한다고 아빠는 싫다고 말했다. ‘칠쟁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할아버지는 입맛이 뚝 떨어지는지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막연한 꿈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워!”

할아버지의 약점이 ‘칠쟁이’였다면 아빠의 약점은 ‘막연한 꿈’이었다. ‘나이 마흔’이란 말도, ‘애 아버지’란 말도 아빠에게는 약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아빠는 벌떡 일어나 출근길에 나섰다.

그러던 아빠에게 지난해 행운이 찾아왔다. 이제 더는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바로 자전거 업계에서 제일 유명한 기업에 취직한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 개발자로. 자전거 파츠들, 자전거 휠들을 직접 사서 모으던 아빠는 자전거 박사님이었다. 인터넷에 자전거에 대한 정보들을 올리고, 영상도 올리고 관련된 소모임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전거 회사로의 취직은 할아버지의 기준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운 정도가 아니라 목표를 이룬 것이었다. 

이제 아빠는 좀 어둡고 말이 없던, 조용히 자전거만 만지던 아빠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살도 좀 붙고 부스스하던 머리 모양도 단정해졌다. 

“창민아, 새엄마 어때? 엄청 예쁘지 않아? 모레면 우리 결혼식인데 결혼하면 이제 엄마라고 불러야 한다. 소진이도 아빠라고 불러주세요.”

아줌마가 웃는 순간 창민이는 생각했다. 

‘솔직히 엄청 예쁘지는 않아. 하지만 뭐랄까, 눈을 마주칠 때 표정이 예뻐. 장난감을 고르는 순간의 아이 같은 표정.’           


마당에서의 작은 결혼식


5월 1일 그날은 월요일이지만 휴일이었다. 큰아빠네, 고모네, 그리고 막내 삼촌까지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였다. 할머니네 집은 오래된 집인데 대문도 나무로 되어 있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직도 이런 집이 있네 하면서 구경할 정도다. 안방, 거실, 아빠방, 창민이방이 마당을 품고 기역자로 연결되어 있어 마당에 들어서면 안방 창문, 거실 미닫이문, 창민이방 창문이 보인다. 거실 미닫이문 앞에는 쪽마루가 붙어있다. 어른들은 마루와 거실에 앉아 있고 사촌 누나들과 형들은 안방에 앉아서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혼식은 주례도 사회도 없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결혼식 예행연습처럼 보였다.

하얀 원피스에 작은 꽃다발을 든 신부는 자연스럽고 예뻤다. 꽃다발은 꽃집에서 사 왔다기보다는 어디에서 꺾어왔다고 여길 만큼 작았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아빠가 실개천가에서 꺾어왔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양복을 입었고 창민이도 하늘색 남방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먼저 신랑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성혼 서약을 번갈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반지를 주고받았다. 

“이제 제 차례인가요?”

막내 삼촌이 마당으로 나오더니 기타를 치면서 축가를 불러주었다.     

 

사랑은 어둠 속의 촛불 같은 것

아프고 속상할 때마다

생각하면 위로가 되는 그런 한 사람

사랑은 작은 나무가 돼 주는 것

삶에 지쳐 힘이 들 때면

늘 그래온 것처럼 쉬어갈 수 있게     


큰아빠네 사촌 누나들은 걸그룹 댄스를 췄는데 진지했던 분위기가 금세 즐거워졌다. 아빠와 아줌마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잘랐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른들은 거실에 모여서, 아이들은 안방에 모여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엇이 즐거운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웃음소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야, 이렇게 참한 색시 데려올 줄 알았으면 진우 네 걱정 안 하는 건데.”

고모가 말해놓고 말끝에 눈물을 흘렸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을 염려한 고모부가 얼른 나섰다. 

“맞다. 진짜 처남 복 받았데이.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했지. 야~”

고모부는 말해놓고 또 말을 바꾸어 이렇게도 말했다.

“처남댁도 복 받은 거예요. 진우 이놈아도 사람 진국이거든.”

고모부는 마치 주례사라도 하듯이 두 사람에게 칭찬과 덕담을 건넸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도 순서 없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다. 

“행복하게 살아라.”          


오빠는 우리 엄마 아들 아니야     


창민이는 밥을 다 먹고 나자 할 일이 없어 마당으로 나와 자전거에 묻은 먼지를 닦고 있었다. 소진이도 심심한지 따라 나와서는 마당에 놓인 화분들을 구경했다. 머리는 꽃으로 장식하고 원피스를 입어 꼬마 신부 같았다. 작은 얼굴에 눈도 코도 입도 자그마해서 귀엽다.      

마당의 벽면에는 할머니가 기르는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커다란 화분에는 꽃 대신 여러 가지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이건 뭐야?”

소진이가 물었다. 소진이는 왠지 풀이 죽어 있었다. 

“대파”

창민이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창민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소진이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었다. 이제 동생이니까. 하지만 소진이는 알 만한 채소들의 이름을 일일이 캐물었다.  

“이건?”

“배추. 김치 알지?”

“이건 뭔데?”

창민이는 소진이가 물을 때마다 자전거에서 눈을 떼고 화분을 쳐다봐야 했으므로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상추. 바보냐? 방금 먹은 상추도 모르게?”

그러자 소진이가 창민이를 빤히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일까 말까 하고 있었다. 입도 자꾸 삐죽삐죽했다. 창민이는 새초롬한 소진이의 얼굴을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행동은 ‘메롱’하고 혀를 내밀었다. 소진이는 기분이 안 좋은지 더는 묻지 않고 화분만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간 조용히 있던 소진이가 샐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오빠는 우리 엄마 아들 아니래.”

창민이는 자전거를 닦다 말고 소진이를 쳐다봤다.

“뭐?” 

“나만 우리 엄마 자식이래.”

창민이는 소진이와 마주 보던 얼굴을 얼른 돌렸다. 창민이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소소, 팔에 소름이 돋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팔을 비볐다.

그 순간 거실에서 어른들 웃음소리가 퍼졌다. 

“하하하”

그 소리가 창민이를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창민이가 안 간다는구나. 응, 그래. 여기서 밥 먹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전화에 대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네 집에서 잠만 자고 모든 생활을 아빠네 집에서 하기로 했던 처음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결혼식 후 일주일이 다 되도록 창민이는 아빠네 집에 가지 않았다. 어쩌다 아빠랑 통화가 되면 창민이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랐다.      

토요일이 되었다. 창민이는 좋아하던 자전거도 안 타고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었다. 

“창민아!”

아빠가 마당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불렀다. 

“오늘 소진이 생일인데 같이 축하해 주러 가자.”

아줌마가 말했다. 소진이의 소원이 동네에 새로 생긴 뷔페에 가는 거라고 해서 지금 가는 중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새로 샀는지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창민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쌔근쌔근 숨소리가 거칠었다.  

“안 가요.”

“왜? 맛있는 뷔페 갈 건데.”

소진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거들었다. 

안 간다고 우기는 창민이를 뒤로하며 사춘기 어쩌고 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갑자기 쇠심줄 같은 고집을 부릴까?”

할머니도 돌림노래 하듯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 아빠가 창민이가 있는 할머니 댁에 들렀다. 

“창민아, 아빠 좀 보자.”

아빠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는데?”

창민이도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핸드폰 사주세요.”

“뭐? 그것 때문이야? 아빠가 다음 달에 사주기로 했잖아.”

“다음에 다음에! 핸드폰 사주기로 한 게 언젠데? 왜 핸드폰도 안 사주고 그 여자애한테만 잘해주시는 건데요? 걔는 아빠 자식도 아닌데!”

“뭐?”

아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창민이도 물러서지 않고 아빠를 노려보았다. 약속을 지키라며, 그게 아빠가 할 일이라며 말을 마구 쏟아냈다. 아줌마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자식도 아닌 애와 놀러 갔다는 말에는 아빠도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세게 헤집더니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빠는 그 애를 딸로 여기는지 몰라도 그 여자는 나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창민이는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뜨거운 눈물이 창민이의 손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눈물을 찍어내고 창민이의 손을 이끌고 핸드폰 가게를 찾아 나섰다. 창민이의 최신폰은 그렇게 갖게 된 것이다.              

창민이는 긴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너 그거 기억나?”

“뭐?”

“유치원 때 네가 나한테 애정 결핍이라고 했던 거.”

“응?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그렇게 어려운 말을 썼다고?”

“응.”

경원이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때 너한테 물총 쐈던 것만 기억나는데? 혼났던 거랑.”

“응. 그날 맞아. 네가 물총을 쏘면서 나한테 그랬어. 애정 결핍이라고.”

“헉! 심했다. 그래서 그렇게 벌을 심하게 받았구나.”

그 순간 경원이의 머릿속에 그날의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날 경원이는 장미반 선생님이 백합반 선생님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말했다.

“음. 창민이, 씩씩해서 좋은데 뭔가 짠해. 애정 결핍인 거 같아서.”

경원이는 결핍이란 말의 뜻을 몰랐지만 뭔가 안 좋은 거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말을 창민이한테 했던 거다. 무슨 뜻인지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뜻밖에 상황이 심각해졌다. 창민이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애가 물었다.

“애정 결핍이 뭐야?”

그때 또 다른 애가 말했다. 

“애정 결핍은 엄마가 없다는 뜻이야. 창민이는 공개수업 할 때마다 할머니가 오시잖아.”

그날 장미반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창민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무엇이 미안한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집에서 엄마가 ‘애정 결핍’이란 말이 얼마나 아픈 말인지 말해주었고 다음날 경원이는 창민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후 둘은 모든 것을 잊고 친하게 지냈다. 애써 잊은 것이 아니라 노는 사이에 저절로 잊혔다. 해가 바뀌고 반이 바뀌자 다른 친구들과 노느라 경원이는 창민이를, 창민이는 경원이를 잊어버렸었다.      

“네 말이 맞았어. 난 애정 결핍인가 봐. 아줌마한테도 너무 빨리 마음을 열었어. 안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을 텐데…….”           


경원이의 글쓰기 공책     


“창민이가 안 왔네? 누구 이유 아는 사람 있니?”

담임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경원이는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경원이는 어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 걱정이 되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창민이네 집 근처에 사는 사람 없니? 오늘 꼭 전해줘야 할 게 있는데.”

경원이가 손을 들었다. 창민이네 집 근처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몇 번 가봐서 집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대문이 열려있었다. 작은 마당의 풍경을 보자 예전에 놀았던 게 기억나면서 경원이는 대상을 알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쪽마루에 할머니와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창민이의 할머니와 새엄마인 것 같았다.

“창민이 친구 경원이에요.”

경원이는 꾸벅 인사했다.

“아, 창민이 친구구나.”

창민이는 아픈 게 아니었던지 집에 없었다. 경원이는 창민이에게 전해줄 것이 있어서라고 용건을 밝히고 선생님이 주신 것을 건넸다. 

“경원아, 아줌마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줌마는 창민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수업 시간은 어떤지, 급식은 거르지 않고 먹는지, 최근에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괴롭히는 애는 없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별 내용도 없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아줌마의 표정은 걱정과 슬픔이 가득했다. 창민이만 아픈 게 아니었다. 

‘이 두 사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창민이가 오해한 건가? 아니면 창민이가 그 여자애의 말을 잘못 이해한 건가?’

경원이의 추리는 의심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소진이라고 하는 그 여자애가!’

경원이는 가방을 열어 어떤 공책을 꺼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이 생길 때마다 경원이는 글을 썼다. 어제는 창민이 이야기를 썼다. 유치원 때 자신의 잘못과 그로 인한 창민이의 상처에서부터 핸드폰 이야기까지 쓰다 보니 세 페이지나 되었다.

“제 얘기보다 이걸 읽어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아줌마는 이마에 힘을 주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조용히 글을 읽었다. 어느 부분일까? 손으로 입을 막더니,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줌마는 한 줄이라도 더 빨리 읽겠다는 듯 눈을 꼭 감아 눈물을 흘리고는 다시 읽었다. 마지막 부분을 읽고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참았던 눈물을 마저 흘렸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창민이가 나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네. 뭐가 문제인지 몰랐는데… 경원아, 고마워.”

경원이는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다.

‘빨리 가서 뒷이야기를 써야겠다. 내 추리가 맞는지 나중에 창민이에게 물어봐야지.’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날 아침 할머니가 깨웠을 때 창민이는 아프다고 학교에 못 가겠다고 했다. 잠은 벌써 깼는데 뭉그적거리는 게 정말 몸살이라도 난 것 같았다. 

“늦게라도 가야지.”

할머니의 재촉에 창민이는 11시가 다 되어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섰다. 시장을 돌아다녔다. 오른쪽을 구경하고, 되돌아서 그 반대편을 구경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실개천을 따라 걸었다. 청둥오리들이 오늘은 창민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창민이는 자신의 키만큼 자란 억새잎을 뽑아서 청둥오리들에게 던졌다. 푸드덕 청둥오리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날아갔다. 억새잎에 베였는지 손바닥이 쓰렸다.

창민이는 엄마 얼굴을 모른다. 세 살 때인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세 살이면 어렴풋이 기억도 날까 싶어 기억을 뒤로 돌려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진으로 남은 엄마는 뭔가 비현실적이어서 볼 때뿐이고 눈을 감고 생각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다. 얼마 보지도 않은 아줌마 얼굴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풀거리는 단발머리, 웃지 않아도 예쁜 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흔들던 손, 그 표정까지.

창민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학교를 마칠 시간이 다 되어 창민이는 편의점 벽돌담에 기대어 앉아 핸드폰 게임을 했다. 성능은 좋아져서 하는 게임마다 잘 돌아가는데 창민이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설마 선생님이 전화하시는 않겠지?’

점점 더 일이 꼬이는 것 같았다. 

‘아빠나 할아버지한테 알려지면 엄청 혼날지도 몰라. 아,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창민이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할머니 집도 자기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당에 들어가자 마루에 앉아 있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창민이는 도로 집 밖으로 나가려고 등을 돌렸다. 

“창민아!”

아줌마가 창민이를 불렀다. 목소리가 이상하다. 화가 난 목소리. 창민이는 돌아보았다. 아줌마는 입술을 꼭 깨물어서인지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이리 와. 집에 가자.”

“……”

“네 옷도 다 챙겼어. 너를 떨어뜨려 놓는 게 아닌데, 미안해.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자.”

창민이는 말없이 발끝만 쳐다보다가 슬쩍 아줌마를 보았다.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달리기 출발 자세였다. 지난번 같이 달리기 시합하던 생각이 퍼뜩 떠올라 창민이는 코끝이 시큰했다. 창민이는 들리는 듯 마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원룸이라 불편할 것 같은데요….”

“불편해도 가족이면 같이 살아야지. 불편해도 좀 참을 수 있지? 내가 미안해. 아직 엄마 될 자격이 부족하다. 그치? 창민이가 조금만 봐주라. 응?”

창민이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엄마 될 자격’이란 말이 가슴에 아리게 스며들었다.      

대문을 나섰을 때 창민이는 그동안 했던 행동이 미안해서 그런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런지 느릿느릿 따라갔다. 하지만 골목길에서 앞서가던 아줌마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재촉하자 겅중겅중 달려갔다. 엄마 소를 따라가는 송아지처럼.           


소진이 오빠 창민이     


다음 날 창민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학교에 왔다. 경원이는 톡톡 창민이의 책상을 두드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창민아, 이따가 고래놀이터에서 잠깐 볼까?” 

창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웃었다.      

고래놀이터에 간 경원이와 창민이는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소진이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창민이가 먼저 말했다.

“꿀밤 한 대 때리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할까?”

“아니. 거짓말하는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야지. 네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소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이 말이야.”

경원이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소진이가 그 말을 한 게 두 분이 결혼한 날이라고 했지? 그날은 너희 가족들만 모였고 말이야. 너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소진이는 그중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거 아니냐.”

“하긴… 엄청 불편했겠다. 나도 부산에 있는 아줌마네 가족들이랑 식사하기로 되어있는데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더라고. 소진이네 외할머니, 외할아버니, 외삼촌, 이모들, 으…”

경원이가 말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소진이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거야. 엄마를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

“아… 그렇네. 생각해보니 소진이는 이사도 오고, 전학도 오고, 가족들도 바뀌고 너무 많은 게 바뀌었어.”

창민이는 그제서야 그날 소진이의 표정들이 이해되었다. 외톨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창민이가 말이 없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소진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원이가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갑자기 경원이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아니야.”

“왜?”

경원이는 방금 본 창민이의 표정이 어제 본 창민이 새엄마와 같다고 생각했으나 그 비밀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네 표정이 어디서 본 표정이라. 하하하.”     

경원이는 애정 결핍이란 게 사랑을 받는 데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창민이를 보고, 그리고 지금 자신을 보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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