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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Aug 09. 2024

우리 학교 이 선생님

이런 사람 어떤가요

같이 근무하는 이 선생님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어쩌고 저쩌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사무적인 전화를 받듯 평범한 말투로 응대하고 있었다.

"네, 네, 그렇군요. 아이고 그렇게 좋은 기회가 있을까요?"

그러자 옳다꾸나 싶었는지 상대방의 말이 길어지고 있었다. 듣다 못한 내가 불안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톡톡 그녀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쳤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보이스피싱 아니야?'

내가 입모양으로 속삭이자 그녀가 눈짓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녀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운 멀티태스킹 능력으로 자신의 일을 하면서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전화 응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실로 궁금했다. 이윽고 그녀가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좋은 것이면 선생님께서 하시죠. 뭐."

그러자 한참이나 공들인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느낀 보이스피싱범이 쌍욕을 날렸다. 그녀는 쌍욕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전화기를 끊고 자신의 업무를 계속했다.


이 선생님은 업무를 얼마나 확실히 하는지 전임자에게 묻는 법이 없다. 물론 이미 아는 게 많아서일 수도 있다. 일단 업무를 맡으면 지난해의 기안문을 좌악 검색하여 전임자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를 파악하고 업무 캘린더를 작성한다. 그리고 부장이 하자는 말 하기도 전에 미리 그 업무를 하고 있다.

"샘, 대단해요."

이렇게 부장교사가 감탄과 칭찬이라도 하면,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맡은 일을 한 것뿐인데 칭찬을 왜 하냐는 의미인 것이다.


이런 그녀의 정확성은 융통성이라고는 없어서 다른 사람이 대충 눙치려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업무도 일단 맡으면 내색하지 않고 잘하지만 다음 해에도 무리하게 업무 분장을 하려고 하면 얄짤없다.

"이 선생님이 이 업무에 최적화되셨던데요? 한해 더 하시면 어떨까요?"

이렇게 했다가는 싸다구를 맞을 수도 있다. 손싸다구를 맞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그것보다 더 싸해질 수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저만 할 수 있나요? 돌아가면서 해야죠."


그녀와 예전에도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십 년도 더 된 옛날이다. 그때에는 환경 미화 심사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학급 시상으로 상금도 있고 해서 은근히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도 싱숭생숭하여 화분도 사다 놓고, 게시판도 예쁘게 꾸미고 했었다. 그런데 5반 박 선생님이 너무 열혈이라 다른 선생님들은 갑자기 기가 죽어 참가에 뜻을 두기로 했다. 욕먹지 않은 선에서 하는 걸로. 응, 응. 박 선생님은 집에서 직접 드릴을 가지고 와서 거의 인테리어 수준으로 교실을 꾸미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토피어리가 된 아이비 화분이 매달려있었고 청소함 위에는 달항아리에 예쁜 꽃이 꽂혀 있었다. 교실을 들어서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마다 그 반에 들어가서 수업하고 싶다면서 한 번씩 그 교실을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환경 미화 심사 최우수상은 바로 4반이었다. 5반이 아니고. 4반은 바로 이 선생님 반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박 선생님은 걸걸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4반 교실과 5반 교실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었다. 심사 위원들은 위대했다. 이 선생님의 교실은 꾸민 것은 별로 없지만 정말로 깨끗하더라. 청소를 정성껏 하여 쾌적했다.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대회의 취지를 잘 살린 것은 바로 이 선생님네 반이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이 선생님은 특유의 시크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별거 안 했어요. 그냥 얘들아 환경 미화 심사 있으니까 청소 깨끗이 해. 이렇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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