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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Oct 12. 2024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16화

16화 버스

버스가 다가왔다. 재영은 그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으나 마음과 별개로 몸은 이미 버스에 타고 있었다. 재영은 버스 기사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으므로 버스 기사가 자신을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긴, 애써 친절하게 인사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누가 버스 기사의 얼굴을 본단 말이냐.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은 다음 힐끔, 운전석을 보니 아빠가 아니었다. 그제야 재영은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어렸을 때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서 아빠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아빠가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아빠 월급 통장 내역을 봐.”

어느 날 아빠는 재영을 불러놓고 말했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은행 어플을 열어서 입출금 내역을 보여주었다. 단 한 번의 입금과 무수한 지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재영의 학원비와 집주인이라고 쓰인 문구가 재영의 눈에 아프게 걸렸다.

“한 달에 딱 한 번! 딱 한 번 들어오는 월급으로 이 무수한 지출들을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이 얼마나 위대한 줄 알겠지? 만약 그 수입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 들어왔다가 안 들어왔다가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니 재영이 너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 해. 한 번을 벌어도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하니? 그게 몇 퍼센트나 될 것 같아? 아빠가 부자라서 네 뒷바라지해주고 작곡가도 붙여주고 음반도 내고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해주는 게 현실이야. 그러니까 너도 현실에 발을 딱 붙이고 살아.”     


그 한 번의 월급을 위해 아빠가 핸들을 돌린다. 염치없이 끼어드는 앞차에 크랙션을 누른다. 손잡이를 잡지도 않은 채 서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끼얹는다.


어떤 노인이 재영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어느 시골 버스에서나 볼 법한 낡은 짐꾸러미를 재영이 자리 옆에 내려놓았다. 재영이가 별말 없이 일어서자 노인도 말없이 자기 자리인 양 앉았다. 에구구 소리와 함께. 서너 정류장쯤 지났을 때였다. 노인이 하차 벨을 누르고 슬금슬금 내릴 준비를 했다. 바로 전 정류장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올라탄 탓에 버스 안은 혼잡해져 있었다. 노인은 불안한 듯 손을 까딱까딱하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끼익,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내렸다. 노인은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갑자기 휙, 등을 돌려서 뒷걸음질로 버스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노인의 움직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히 계단을 내려간 노인이 이번에는 짐보따리를 내리기 위해 손에 힘을 주는 찰나, 버스가 움직였다.

“기사님!”

"아저씨!!"

"여기요!"

사람들이 소리쳤고 동시에 노인이 길거리로 나동그라졌다. 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운전석을 떠나 거리로 나왔다. 노인은 발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발목도 손목도 겨울을 나고 있는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왜 그랴, 왜 그랴, 나 아직 안 내렸는디....”

버스 기사는 헤어진 모친을 만나기라도 한 듯 그 노인을 끌어안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지, 노인을 안심시키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렇게 모진 상황을 잊은 채 노인을 끌어안고 울고만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 없이 열린 앞문을 이용해 빠져나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떠나버렸다.


현실이란 이런 건가요.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아빠는 그래서 행복하신가요? 가족을 위해서, 매달 딱 한 번 나오는 그 월급을 위해서? 아니, 아니지. 매달 수십 번의 지출을 감당할 그 한 번의 입금을 위해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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