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의 끝이야. 이별 선물이잖아.

- 친구였을까

by 향기로울형


글을 쓰다 보면 내 마음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하나 하나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뭉쳐서 더 이상 손 댈 수 없는 것은 잘라서 과감히 버리고 그래도 일말의 상처는 남듯, 잘라낸 두 끝을 묶어 매듭으로 연결해 놓는다. 그녀와의 인연도 그렇게 잘라내고 하나의 상처는 남겨놓기로 하자.


나는 어리석기가 끝이 없어 나 좋다고 하는 사람을 덥석 믿고 따른다. 사람과 같이 있으면 즐거워하여 과히 애정 결핍이라 부를 만하다. 내 칭찬을 하면 마음이 구름 위로 날아간다. 나에 대해 나무라면 어떻게든지 그 단점을 고쳐보려고 노력한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래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00퍼센트 열린 마음의 나에게 그녀가 친절함으로 다가왔으니까. 사근사근 말을 잘하고, 맞장구를 잘 치고, 사람 마음을 소설 읽듯이 촘촘하게 따라 가고, 자신의 이야기도 조곤조곤 잘했다. 눙치는 것을 잘 하는 내 성격에 맞추어 유머 감각으로 대화 전반을 이끌어 나갔다. 그래서 내 이야기가 엄청 즐거운 이야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해서 유쾌했다.

‘아, 난 착하고 능력 있고 그리고 멋진가봐. 봐, 친구도 이렇게 잘 사귀잖다.’

그녀는 내게 잘 해주었다. 초과근무가 필요해 저녁식사를 혼자 해야 할 때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 하루 종일 고단하게 일하고 저녁 식사에 담소를 나누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나도 그녀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다.

퇴근길에는 내 차로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걷기에는 좀 멀고 버스 타기에는 좀 아까운 거리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져 몇 번이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수다를 떨다가,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헤어졌다.

그녀는 일에 있어서 좀, 몸을 사렸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몸을 사리지 않듯이 일에 대해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발령받은 첫해부터 무리하게 넘어온 일을 감당하느라 힘들었는데(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 외부에서 들어온 나에게 억지로 떠넘겨졌다. 교감선생님은 거절의 웃음을 승낙으로 해석하셨다.) 묵묵히 그 일을 해내자, 사람들은 대단해요, 하며 조금 더 일을 넘겼다.

“너밖에 없어!”

멋진 찬사에 현혹되어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업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엄청 공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측은하기 짝이 없고, 최선을 다하나 딱히 멋질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도 몇 년 동안 같은 업무를 했다.(그녀는 내가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등을 맞대고 앉은 자리에서 3년을 내리 같이 지냈다. 그녀도 자신의 일이 많다고 징징거렸다. 툭하면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을 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태도를 어이없어하며 대놓고 표정을 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다른 업무를 하세요.”

3년차가 되었을 때 나는 그간의 업무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했다. 거절이라고는 모르는 나로서는 참으로 웅장한 선언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농담처럼 인용했다.

“하하, 좋은 것은 돌아가면서 해야죠. 저만 하면 되나요?”

그 업무가 붕 뜨자 감님(교감선생님)은 그 폭탄을 아무에게나 던지려고 하셨다. 사람들은 잘도 피했다.

“아무도 안 한다고 하는데, 한해만 더 해주면 안 되겠어요? 최 선생처럼 일을 원만하게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틈틈이 나를 불러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그 업무가 그녀에게 제안되었다. 왜 그런지 이번에는 감님도 좀 냉정해져서 그녀가 반드시 이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쯤 사실, 나는 지쳐있었다. 왜 그런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버텨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2년 했는데 한 해 더 한다고 무슨 일 나나? 사람들이 안 해봐서 두려운 건데 너는 해 봤으니 못 할 것도 없잖아.’

‘아냐, 정신 차려, 업무를 차근차근히 봐. 너를 갉아먹고 있는 거라고.’

그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잠깐, 나 좀 봐. 감님이 나보고 자기가 맡았던 업무를 하라는 거야. 말이 돼? 자기 나 알지? 엄마도 아프고, 아빠는 요양병원에 계셔. 나도 불면증에 힘들고. 내 업무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내 일도 힘들어, 엄청 신경 쓸 게 많다고. 내가 여러 해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요? 제가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계속한다고 말씀드릴까요?”

“그럴 수 있어?”

“할 수 있죠.”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업무를 맡았다. 장감님은 너무나 황당해했다. 어디가 선회의 포인트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날 이후로 그녀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그 말을 꺼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이 그 일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다고 관리자에게 말하면 되지, 상의한답시고 나에게 말을 꺼내서는 안 되었다.

‘너가 안 한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봉변을 당하는 게 아니냐. 나보다는 그래도 네가 그 일을 하는 게 좋잖아.’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할 만하니까 하는 거지?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거니까.”


3년 차를 마치고 4년 차에도 그 업무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잆자 나는 아예 다른 지역으로 내신을 냈다.

“지역 만기가 곧 다가와서요. 빨리 나갔다가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헤어질 때에 사람들의 선물을 사면서 그녀의 선물을 살까, 말까 고민했다. 그간의 정이 있었고, 그 간의 상처가 깊었다. 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은 부지기수요, 나를 더 힘들게 몰아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왜 유독 그녀와의 관계만을 끊어내려고 했을까?

그녀에게 선물을 건넸다. 작고 예쁜 스카프. 다음을 기약하는 그녀에게 나는 웃으며 농담인 듯 말했다.

“아니, 이게 우리의 끝이에요. 이별 선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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