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좌절이 인간과 식물에게 끼치는 영향
- 파키라를 보면서 나를 떠올림
파키라의 좌절과 성장
파키라가 나에게 온 것은 2017년 봄이었다. 학교를 옮겼을 때 전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샘이 이별 선물로 주었는데 달걀 크기의 화분에 심어진 작은 나무였다. 책상 위에 올려놓기 딱 좋았는데 화분이 너무 작아서 물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아, 나랑 똑같은 게 있네. 이거 물 주기 어렵죠?"
마침 교무실을 순회하시던 교장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는 당신도 똑같은 에그팟이 있다면서 물주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과학 실험실에서 쓰는 스포이트가 딱이라면서 교장실에 여분이 있으니 시간될 때 내려오라고 하셨다. 스포이트로 주는 몇 방울의 물만 먹고도 파키라는 살았다. 시기를 놓치면 그저 가장 아래에 있는 잎 하나를 뚝, 떨굴 뿐 말이 없었다.(식물은 말이 없어서 슬퍼. 하지만 눈이 있는 사람은 식물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식물은 잎으로 말해. 뚝, 떨어뜨리면서.)
손이 정교하지 못한 나는 스포이트를 사용하는 게 속이 터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에그팟 속에 갇힌 파키라가 너무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서 망치로 에그팟을 깨뜨렸다.
'작고 예쁜 화분 따위는 필요 없어.'
그리고 집에서 제일 큰 화분에 옮겨 심어 주었다.
"자, 네가 가진 잠재력만큼 맘껏 자라렴!"
그때부터 보인 파키라의 폭풍 성장은 토요일 아침을 즐겁게 했다. 나는 식물의 종류를 묻지도 않고 연구도 안 하고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준다. 주중에는 생각도 나지 않고 돌봄을 실천할 힘은 더더욱 없다. 다행히 우리 집 식물들은 나의 적절한 무관심과 관심에 잘 자라고 있다. 화분을 크게 하고 물을 흠뻑 주는 것이 나름 비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잘 자라는 게 문제였다. 커다란 화분에 농사 지을 때나 쓰는 퇴비를 넣었던 것이 파키라의 무한 잠재력을 깨운 것이다. 4년 정도 지나자 그 작은 나무가 천장 가까이 자랐다. 어느날 친정 엄마가 그 나무를 보더니 꼭대기 부분을 뚝! 부러뜨렸다. 천장을 뚫기라도 할까 근심하셨던 것일까?
그게 파키라의 좌절이다. 새순이 꺾이자 나무는 오랫동안 삐져 말을 하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새순이 돋지 않았다. 밑에 남은 나뭇잎들도 시들시들 낙엽이 졌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 어느 날 부러진 가지 옆으로 순을 틔우더니 이번에는 더욱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잠시 멈추었을 뿐 성장 속도는 곧 회복되었다. 그런데 가지의 방향이 비뚤어졌다. 하늘 향해 곧게 자라던 가지 옆으로 난 새순은 줄곧 그 방향으로 자랐다. 3년이 되도록 가지는 90도 방향으로 휘어진 채 자라고 있다. 안쓰러웠다. 성장기에 겪은 좌절은 엉뚱한 방향으로 열정을 쏟게 한다.
엉뚱한 방향...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방송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방송반은 다른 동아리와 달리 선배들이 자체 모집을 하는 동아리였다. 이제 새내기가 된 나는 그것을 몰랐다. 뒤늦게 그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고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하자 담임선생님이 방송반 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하셨다. 방송반 선생님은 그러냐고, 그러자고 하면서 나를 방송반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러니까 일명 낙하산이었다. 그러나 방송반 언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학생들에게 그런 강단이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멋진 일이다.
"이미 신입생 모집 기간이 지났고, 합격자도 공지한 상태에서 추가로 받기는 어려워요."
방송반 선생님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결국 타협점이 응시 기회를 주는 것으로 결정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실기 테스트가 이어졌다. 선배들은 멘트를 읽어보라고 시켰고 급하게 응시하게 된 나는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선배들은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를 불합격시켰다.
그후 나는 다른 동아리에 들어서 즐겁게 생활했지만 방송반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소한 좌절은 나를 엉뚱한 방향으로 열정을 쏟게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교내 방송국에 들어간 것이다. 방송국 생활은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잠식했다. 지금 생각하면 잠식인데 그때는 물론 열정이 가득했으므로 힘든 것을 소신과 열정, 희생과 끈기, 근성이라고 생각했다. 강의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방송에 투자했다. 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밑천이 없는지라 선곡 하나도 힘들어서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그나마 음악 방송이 제일 쉬운 거다. 제일 어려운 것은 시사프로그램이다. 신문을 정독해 본 역사가 없었던 나는 신문이 언급하고 있는 팩트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거기에 논평을 가한다거나, 풍자를 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어쨌거나 청취자 중에는 지성이 돋보이는 날카로운 눈과 귀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학년이 올라갈수록 맡은 프로그램 수도 늘고, 내용도 어려워졌다.(물론 4년 내내 '클래식의 고향을 찾아서'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배들 트레이닝도 시키느라(아, 그때 진짜 뭐 좀 있는 선배인 척 하느라고 어려운 언론 관련 책을 읽고 서머리하고 소개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누가 보면 대학 교수인줄.) 전공 공부는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교직 이수 과정을 밟아서 교사가 되겠다는 계획이 있었으므로 공부도 최선을 다했다.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방송국에 남아서 공부했다.
문제는 목요일 5교시에 있었던 교직 과목이었다. 하필 그 학기 목요일에 낮방송을 내가 맡게 되었다. 방송을 마치고 최선을 다해서 뛰어도 이미 출석을 부른 뒤였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님의 눈총을 받았고 그 결과 교직 과목에서 B를 받고 말았다. 전공 공부가 아무리 뛰어나도 교직 50%, 전공 50%를 반영하는 교직 이수자 선정 기준에서 B 하나만으로도 순위가 아래로 주르르 미끌어졌다. 그래서 결국 교직 이수자에 들지 못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장학금을 내리 받던 내가 교직 이수를 안 하자 다른 학생을 위해서 포기한 줄 알았단다.
그 여파로 나는 동기보다 발령이 7년 정도 늦어졌다. 물론 바로 교육대학원을 진학했으면 3, 4년이면 될 수도 있었겠는데 어찌어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취직으로 이어지면서 세월이 길어졌다.
방송에 대한 중딩의 열정이 뭐 그렇게 대단하겠냐만, 한 번 꺾인 좌절은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삶을 몰아가기도 한다.
다시 파키라로 가서
휘어진 파키라 나무를 보면서 물었다.
"너는 그 엉뚱한 방향으로의 성장을 그대로 지속할 거니?"
파키라가 대답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휘어진 가지 반대 방향에서 싹이 났다. 비뚤어진 성장 3년 만에. 이 새로운 싹이 폭풍 성장한다면 기울어진 가지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아직은 의문이지만 지켜보련다. 파키라의 심장에 똑바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싶은 '천성'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혹시 이 글을 본 여러분, 마음속에 비뚤어진 성장이 있다면 지금 대답하세요.
"너는 그 엉뚱한 방향으로의 성장을 그대로 지속할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