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교사, 힘이 되어준 학부모

0강이 엄마

by 향기로울형

새로 부임한 학교장님은 야심가였다. 한 학기정도는 탐색전을 벌일 만도 한데 학교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에 전교생을 강제 야자 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아이들이 집중하기 힘들어하므로 전 교실 감독자 임장을 두 번째 원칙으로 세웠다. 전 교실 감독자 임장이라 함은 담임교사 혹은 비담임교사가 붙박이로 교실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비담임 교사들은 다들 사정이 있어서 비담임을 하는 것이고, 비담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많은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 담임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야자 감독을 시키는 것은 무리,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담임이 남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보통 3월 한 달은 아이들 상담과 야자 분위기 형성을 위해 담임들이 남고는 했는데 그 한 달만으로도 나는 응급실에 갔다. 다른 것은 아니고 변비 때문에. 너무나 바쁜 신학기에 앞뒤 가리지 않다 보니 자꾸 뒤로 밀리는 것이 화장실. 자신이 며칠이나 화장실을 안 갔는지도 잊어버렸다가 갑자기 복통이 극심해져서 응급실에 간 후에야 나는 화장실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문제였다. 아이들은 학원에도 가야 하고, 과외도 해야 했다. 또, 아예 학업에 뜻을 두지 않는 아이들 – 수업 시간에도 겨우겨우 남아 있는 아이들 –을 밤 9시까지 붙잡아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 00고 녀석들아! 똑바로 해! 늬들이 잘해야 우리 집값 올라간단 말이다."

간혹 술 마시고 학교 담장 밖에서 소리치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장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뒤숭숭했다. 학교장은 교사들의 문제 제기에 학부모 감독을 제안했다. 각 학급에서 학부모 감독을 지원받아 그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첩첩산중이었다. 아이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학부모님께 고스란히 노출하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 해의 엉망진창 담임기.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찾아왔다. 학원을 가야 한다, 과외를 해야 한다. 태권도를 가야 한다. 병원을 가야 한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사정이 있었지만 어느 것을 승낙하고 어느 것을 거절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실랑이가 벌어졌다. 특히, 신영이.... 신영이는 사유가 없었으나 정말로 진실된 사유가 있었다.

"집에서 공부가 더 잘 돼요. 학교는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의자도 불편하고... 편하게 집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것은 100퍼센트 진실이었다. 신영이는 공부에 진심인 아이였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사유로 보낼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내가 보내고 나면 옆반애들이 그 반 담임들을 잡는다.

"옆 반은 보내주는데 선생님은 왜 안 된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신영이를 달래어 교실에서 일주일만 버텨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하고 돌려보냈다. 아예 찾아오지 않고 일명 ‘째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무단으로 빠지는 아이들을 혼내느라 조회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싫어했고 교사인 나도 학교가 싫었다. 날마다 학년에서 학급별 야자 인원을 학교장에게 보고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그때 만난 분이 강이 엄마다. 강이는 우리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남학생이었다. 성격이 남자답고 아이들과 두루 잘 지냈다. 특히 우르르 어울려 다니는 예닐곱의 남학생들은 모두 순둥순둥하고 한 사람이 이렇게 하자 하면 한마음이 되어 그렇게 했다. 친구와 함께라면 야자도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를 가지고 석식 시간에 우르르 운동장에 나갔다가 야자 시간이 되면 상기된 얼굴로 교실에 우르르 들어왔는데 강이가 그 무게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과학 영재 학급이 있었던 학교라 강이는 학원 갈 틈 없이 토요일에도 학교에 와서 과학 실험 및 수업에 참여했다.

학부모 감독을 어머님들께 요청했을 때 강이 어머님이 지원하셨다. 강 맘은 그때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았지 싶다. 그때 우리 집 아이가 다섯 살이었으니 아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말이다.

"네, 저는 언제든지 되니까 감독이 필요한 요일에 미리 연락 주세요."

그리고 책 한 권을 들고 오셔서 조용히 감독하면서 책을 읽으셨다. 학교에 오시는 횟수만큼 눈에 보이는 것도 많고 말씀하고 싶은 것도 많으셨을 텐데 한 번도 말씀을 안 하셨다. 다만 너무 교실이 휑할 때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하실 뿐이었다.

"오늘,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었나 보네요."

강이는 장난도 잘 치지만 학급에서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몇몇 남학생들에게 정색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내공과 품성을 같이 갖추었다. 나는 공부만 잘하고 자신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그런 아이들보다 강이처럼 전체를 잘 이끌어가는 학생이 진짜 멋진 학생이라는 인재상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해 겨울에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서 결근해야 했을 때 학급 일을 부탁할 수 있는 아이도 강이었다. 답장은 심플하게 왔다.

-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부탁한 일을 정확하게 할 것을 나는 믿었다.

7년쯤 흘러 내가 인근에 있는 학교로 전근 가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반가운 얼굴이 학교 급식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나오시는 거다. 강이 어머님이었다.

"그 사이에 영양교사 자격증을 따서 제가 영양교사가 되었네요."

잘 어울린다고, 축하드린다고, 반가움을 맘껏 표현했다.

그즈음에 강이도 한 번 찾아왔다. ROTC 제복을 입고 왔다. 강이는 의젓한 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멋진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한 번은 함께 어울려 지내던 예닐곱의 그 아이들이 우르르 연락이 되어 삼겹살 집에서 만났다. 아이들은 군 생활 중이거나 군을 제대하고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포병으로 동반 입대했다가 고생이 심하여 곱던 손이 무지막지 거칠어진 성민이부터, 경찰병으로 운 좋으면 저녁에 치맥도 가능한 꿀보직의 제자까지 모두들 멋지게 자라 나는 기뻤다.

지금 강이는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SNS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은 것을 보니 인기 만점 선생님이 된 것 같다.

그해는 내게 정말 힘든 한 해였다. 그렇지만 그 힘겨운 시간을 지탱해 준 아이들이 문득 생각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도 해야겠다. 얘들아, 학교장의 무리한 요구를 막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 내가 너무 미숙했던 것 같아. 너희들을 기준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나를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


대통령이 바뀌면 교육의 지침이 바뀐다. 코앞에 예정되어 있던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가 선거 결과에 따라 전면 취소되어 배송 중이던 시험지가 전량 폐기되기도 한다. 교육감이 바뀌어도 교육 현장의 지침이 바뀐다. 그리고 학교장이 바뀌어도 그렇다. 예전에 이런 공동체 놀이를 한 경험이 있다.

"가운데 1번 학생이 섭니다. 그 사람은 양팔을 쭉 펴세요. 각각의 손바닥에 2번, 3번 학생이 이마를 댑니다. 이제 이마를 댄 사람은 1번의 손바닥만 따라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2번, 3번 학생도 양 팔을 펴세요. 2번 학생에게 4번, 5번 학생이 붙고, 3번 학생의 양손에는 6번, 7번 학생이 붙습니다. 4번, 5번은 2번 학생의 손을 따라서만 움직여야 합니다."

이렇게 전 학급이 서로 연결되게 한 다음. 1번 학생에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보라고 한다. 1번 학생이 오른손을 움직이자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움직인다. 1번은 조금 움직였을 뿐이지만 마지막에 붙은 학생은 엄청난 파장을 겪는다. 몇 번만 움직여보면 1번 아이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간혹 장난꾸러기가 1번 역할을 맡게 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끝에 붙은 아이들은 넘어지기도 한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패러다임 속에 우리 아이들은 가장 끝자리에 해당한다. 교사는 그중 몇 번에 해당할까. 가장 끝자리 바로 앞자리.... 1번, 혹은 2번, 3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가락 각도를 조금만 움직여도 그 끝에 닿아있는 아이들에게는 파장이 엄청나다. 교사는 그 파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두뇌로 판단하고 거르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최전방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은 그것을 느껴야 한다. 생각, 생각, 생각을 해야 한다. 아직도 무수한 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검증되지 않은 채 공문으로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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