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소문이 먼저 도착해 있다

- 품평하는 사람들에게

by 향기로울형

나는 5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데 생활 근거지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대부분 지난번 근무처 인근으로 이동한다. 그 때문에 직장 동료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여도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다. 아는 선생님의 남편이거나, 지난 번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과 전 직장 동료이거나....

이런 환경이다보니 학교를 옮기면 그 사람보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이 먼저 도착해 있다. 나이는 얼마, 성격은 어떻고, 이런 저런 실수로 인해 민폐를 끼쳤고, 아니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고 없고. 소문이란 게 사실보다는 과장되게 마련인데도 한 번 들은 이야기는 각인 효과가 있어 그 사람의 첫인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번은 정말 이상하고 괴팍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와 같이 근무하면서 그런 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했다. (마치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실험결과가 안 나온 느낌?) 한 가지는 찾았는데, 어느 날 회의시간에 부장님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부장님, 정말 그래야 합니까? 그게 애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검증해보셨습니까?”

그는 다소 무례한 질문으로 회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담긴 문제의식이 나에게는 참신해 보였다. 평소에 과묵하게 일하던 사람이 당돌하게 행동하니 심지어 순수해보이기까지 했다.

반대로 억수로 훌륭하다는 포장지와 함께 도착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가다듬어지긴 했지만 좀 꾸민듯하고, 뺀들뺀들한 것 같아 내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나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기대 역시 편견’이라는 이상한 공식을 만들게 되었고 기대도 편견도 없이, 그저 장점과 단점을 가진 한 사람일 것이라는 마음으로 새 사람을 맞는다. 나 역시 어떤 누군가에게 소개될 때 형편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러한 근거를 나도 세 개는 들 수 있다. 반대로 나는 굉장히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러한 근거 역시 세 개는 들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나는 언제나 이중적인 심리로 스스로를 괴롭히는데, 하나는 어떤 단체에 소속되길 바라는 외로운 어린아이의 심정이다. 이 아이는 강한 소속감을 필요로 한다. 이 아이는 언제나 단정하게 꾸미고 다른 사람에게 해맑게 웃으며, 친절한 목소리를 연습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을 하자가 없는 완벽한 제품으로 만들려는 공장장과 유사한 아이다.

그러나 내 안에는 또 한 사람이 사는데 그 아이는 바람 구두를 신은 아이로 땅에 척척 달라붙는 중력의 무게를 벗어나 머리와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싶어한다. 그 아이는 언제든지 고개와 팔의 방향을 바꾸면 쉽사리 선회할 수 있으며 방향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이 아이는 누군가와 눈 마주치는 것을 싫어하며 약속을 지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맞장구치는 것마저도 구속으로 느낀다. 걷고 싶을 때는 걷고 날고 싶을 때는 날 수 있다.

내게 있어 삶이란 결국 이 두 아이의 생떼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떨 땐 자유롭게, 어떨 땐 철저하게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내 스스로 통제할 일이지 그 지휘봉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품평하고 있는 그들의 삶도 그 중간 어디쯤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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