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게 대답하는 자는 입술에 입맞춤하는 것과 같다.(잠언 24장 26절)’는 성경 구절이 있다. 멋진 말보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대답이 더 좋다는 뜻일 거다. 교사도 그렇다. 화려한 무엇을 하는 것보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볼 줄 아는 눈과 해주는 손이 최고의 교사를 만든다. 적어도 자녀를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학부모로서의 마음은 그렇다. 그런 면에서 둘째 아들의 초등학교 첫 선생님이 최0경 선생님인 것은 아이나 나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즈음의 아들은 예민하고 불안이 높았다. 동네 태권도장이 주관하는 체험학습으로 따라간 워터파크에서 길을 잃은 후부터 낯선 곳을 싫어하고 사람 많은 곳도 싫어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체험학습도 가기 싫어했고 이 모든 요소가 종합된 운동회 같은 것은 그 일정이 발표된 날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징징거렸다. 그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좀 예민하고 불안이 높아요. 잘 부탁드릴게요."
이 한마디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격하여져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혼자 힘들어했다. 아들은 겉보기에는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품이 믿음직스러워보인다.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그 마음속에서 어떤 폭풍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나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사회 생활이 가정과 같지 않으므로 당연히 아이는 선생님의 무관심 속에서(악의적인 것이 아니라 30명의 아이가 앉아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것이 주어진 과업인 것을 알면서도 나 혼자 애달아하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잘 적응했고, 운동회 중간에 아이가 열이 나 급히 연락을 받고 조퇴처리했던 것 말고는 일 년을 무사히 지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는가 하면, 친구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어 그 아이가 초인종을 눌러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이에게 전해들은 학급은 여느 학급처럼 여러 가지 잡음이 많은 듯했다. 그런데도 예민한 아이가 잘 적응했던 것은 선생님의 섬세한 관찰과 도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아이들이 관계에서 문제 제기를 할 때 교사는 왜 그런지 방어적으로 나오기 쉽다. 너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는 식으로. 그런데 어수룩한 아들이 말많고 약은 어떤 아이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 선생님께 알렸을 때 최선생님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예민하게 그 감정에 반응하고 공감하려 했다. 어린 아이지만 아들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은 학기 말에는 아이들이 그린 일기와 글쓰기, 작품들을 모아서 학급 문집을 만들어주셨다. 그 문집의 끝자락에는 선생님의 편지가 들어있다. 그 첫 시작은 이렇다.
- 33명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기 위해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며 너희들 한 명 한 명과 추억들을 되새김질해본다.
그 사이에는 우리 아들에 대한 글도 있다.
- 헤헤 웃으며 맨 앞으로 뛰어오는 귀염둥이 00이.
어리기만 한 내 아이를 무사히 적응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도 2년씩이나요.(2학년 담임선생님이 또 최0경 선생님이어서 아이와 나는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