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즐거워야 한다!

- 둘째 아들 담임이셨던 백0민 샘 관찰기

by 향기로울형

스포츠머리에 얼굴이 조금 크고, 기름한 눈에 코가 조금 펑퍼짐하니 큰 편인데 입은 더 큰 편이라 딱 봤을 때 웃는 인상이다. 한 마디로 상대의 마음이 저절로 열리게 하는 인상이랄까. 피부결은 과거 진행형의 여드름과 몇 안 되는 현재 진행형의 여드름이 섞여 있어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 야구 선수 복장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SNS 프로필에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도루라도 하는 듯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사진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그 해 희망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다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아들은 그 야구장에 가지는 않았다. 남아라면 당연히 공 하나만 던져주면 얼마든지 놀 수 있고, 공 하나로 우정을 쌓고, 공 하나로 주먹다짐을 하며, 공 하나로 나라를 지키는 체력도 쌓을 거라는 나의 편견은 우리 아들들을 보며 깨졌다.

백 선생님은 둘째 아들 4학년 때 담임교사였다. 직장인들의 로망은 얼른 퇴근해서 자신의 워라벨을 찾아 헤매는 것일 텐데 이분은 굳이 주말도 마다 않고 체험 활동을 계획하고 주관하고 실천한다. 처음 담임교사 발표가 났을 때 그는 이미 우리의 정보망에서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것이다. 꿈많은 교사라면 다들 해봤음직하지만 유독 그가 하면 더 신이 나 보였다.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여름 무덥던 날, 물놀이를 하겠으니 물총도 좋고 바가지도 좋고, 페트병도 좋다고 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좋은데 물총이 딱히 더 유리하지는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은 비싼 물총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며 오히려 부모님께 당부했다. 우리 아이도 집에서 파란색 바가지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자신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사진을 여럿 갖게 되었다. 너무나 격렬하게 수전(水戰)을 치르느라 표정은 어느 백전노장의 포효를 담고 있었고, 머리부터 옷, 신발까지 모두 흠뻑 젖어 있었다. 사진을 보니 그 반 어느 누구도 예쁘게 뽀송하게 나온 사람은 없었다. 평소 수준 높은 독서를 자랑하는 작가 지망생 여학생도, 비판적 지성을 뽐내는 키 크고 예뻤던 여자아이도, 구부정한 자세로 눈을 힐끔힐끔하던 소심한 여자아이도 모두 그렇게 흠뻑 젖어 그날의 격렬한 즐거움을 입증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가지고 간 바가지를 군인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란 원래 이런 거지, 싶지만 왜 그런지 선생님이 주관하면 단순한 물놀이도 그렇게 즐거웠다.


또 기억나는 것은 북한산초등학교 학급 야영이다. 그곳은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폐교된 학교였는데 아직도 푸세식 화장실이 있어서 그야말로 특별한 공포심을 주었다. 그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모든 절차와 준비물을 알고 있었다. 조를 짜고, 야간 산책 코스를 짜고, 앞뒤에서 가이드 할 학부모님을 초청하여 그 밤에 나름 가파른, 그러나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적당히 무섭지만 그래도 안전한 북한산 둘레길 자락을 오밤중에 오르게 했다. 중간에 아이들은 무섭다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신나한다.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산 마루에서 기타 귀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타 귀신은 노래를 좋아하여 노래를 불러주면 학생들을 내려보내주고 아니면 잡아먹는다. 아이들은 4학년이라 당연히 그 기타 귀신이 백 샘인 것을 안다. 그래도 서로 조금씩 아닌 척, 그런 척하며 노는 것이다.

“자.... 노래를 부르실까요? 노래 제목은?”

“스승의 노래 하겠습니다.”

“잉? 스승의 노래? 좋아요. 그럼 해 보죠.”

남자 아이들이 기타 귀신의 반주에 맞춰 ‘스승의 노래’를 부른다. 음은 기타 코드에 맞지 않아서, 백 샘은 피식 웃고 말았다. 살짝 살짝 음에 맞게 노래를 불러주지만 이미 흐름을 탄 아이들은 고집스럽게 이탈된 음으로 깊은 밤 북한산을 울리는 것이다. 학부모인 내게도 너무나 즐거웠던 밤, 아이들은 어땠을까?

모둠과 동행하는 내 역할과 달리 숙소에 남아 있던 엄마들은 어묵을 삶아 놓았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김이 솔솔 나는 어묵을 먹고 난 뒤 장기자랑을 하러 가고 우리들은 뒷정리를 한다. 선생님은 엄마들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 감사해요. 쓰레기봉투는 저 앞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획 도시면 버리는 곳 있습니다.”

그리고 총총 다음 행사를 하러 간다. 공자님이 잘하는 놈보다 더 고수가 즐기는 놈이라고 했던가. 아이들과 어울려 놀 때 그의 표정이 생각난다. 뭔가 장난끼가 어린 듯, 아이들의 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엔돌핀이 돈다는 듯한 그 표정은 두고 두고 마음에 새길 일이다. 물론 그도 하다가 삐진 적도 있다. 그는 그것도 감추지 않았다.

“00야, 선생님은 너희들이랑 즐겁게 놀아보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00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기운이 쫙 빠지면서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고 해. 선생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엶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여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다. 백 샘이 학부모 공개 수업 때 토론수업으로 그만의 흥미로운 수업도 재미있었으나 여기까지만 적는다. 내 컴퓨터 어디엔가 그날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 영상이 있을 텐데 세월이 많이 흐르기 전에, 아직은 SNS에서 선생님 찾는 것이 가능할 때에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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