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간에
- 오 샘 이야기
오 샘은 제멋대로 하는 편이라 가끔 적을 만든다. 적이라기보다는 피하려는 상처받은 족속들이 생긴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오 샘은 만날 때마다 불평불만을 쏟아붓는다.
“아, 정말 짜증나 죽겠어. 정말,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어. 일을 그렇게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멋대로 하라고 해.”
이런 식으로 업무 부서면 부서에서 하는 일에 대해, 수업에 들어가면 은근히 비꼬고 드는 학생들과의 신경전에 대해 명쾌하게 자신이 불쾌할 수밖에 없음을 입증해낸다. 상황에 대한 뛰어난 묘사(아,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이유는 그거였구나! 상황에 대한 뛰어난 묘사는 요즘 내가 즐겨보는 주현영의 상황극, 혹은 캐릭터 모사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와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한 분석까지. 그런데 학교가 작은 공간이다보니 뒷담화는 곧 당사자에게 전해지고, 갈등 상황 또한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므로 자신의 잘못은 쏙 빼놓고 상대의 약점을 옮기는 오 샘이 좋을 리가 없다.
또 한 가지 만사 귀찮은 냉정함. 어느 해 3월에 신규 교사가 오 샘과 같은 3학년부에 배정이 되어 총무를 맡게 되었다. 오랜 임용고시 준비 끝에 된 자리인 만큼 하고싶은 것도 많은 꿈많은 초임교사였다. 타고난 성품도 싹싹하지 얼굴도 한 미모해서 사회성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골고루 타고난 그녀는 부서 선생님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생파를 하겠으며, 그러므로 각자 회비를 내주시면 되겠다고 발표했다. 부서 선생님들은 어찌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신규 샘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것을 반대할 만큼 싫었던 것은 아닌지라 자연스럽게 추진하는 쪽으로 되었던 것 같다. 공교롭게 오 샘은 그 자리에 없었고. 오 샘은 다른 일로 인해 –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3월의 고3 담임교사는 전쟁통에서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 뜨악한 표정으로 교무실에 들어왔다. 얼굴도 마음씨도 사회성 만렙 장착한 국어과 신규 최 선생님은 정말로 마음에 요만큼도 시련을 예상치 못하고 여차저차하니 생일 축하를 위한 회비를 달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생일? 아, 참 내. 생일은 무슨 생일? 내 생일, 남편 생일도 챙길까 말까 하는데 어쩌다 1년 같이 하는 선생님 생일을 축하한다고?”
그 뒷말은 구시렁 구시렁... 했는데 최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의 부드러운 지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최근 임고 패스에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에 떡, 하니 배정받은 데에서(성적이 안 좋으면 멀리 배정받을 수 있다.) 부풀려진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예측못한 데서 거절당해서인지, 아니면 여지껏 이런 거절을 한 번도 안 받아봐서인지, 오 샘 특유의 무표정 때문이었는지 그 마음은 알 수 없으나 오 샘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랬더니 아무 말도 없이 저벅저벅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무슨 종이 쪽지를 북북 찢더라.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생일 파티는 아예 없었던 일이 되었더라고.”
“그러니까, 왜 그랬어? 같은 국어과 선생님이 추진하는 일인데.. 거절이라도 곱게 하지...”
“아, 몰라 몰라. 일하기도 바쁜데 왜 다들 일을 더 만드나 몰라. 솔직히 말해 최 샘도 그거 하면 좀 힘들어?”
이런 식으로 안 만들어도 되는 적을 이리 저리 만드는 게 오 샘이었다.
오 샘은 결벽증이 있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샘? 응 나 오, 오랜만이에요. 샘 목소리 들으니 반갑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이번에 학교를 옮겨야 하는데, 샘 지금 있는 학교 말이에요. 응, 화장실 변기. 좌변식인가?”
“뭔 소리야. 요즘 좌변식 아닌 데도 있어?”
“그치, 내 말은 엉덩이 안 붙이고 볼일 보는 화장실 있냐고. 학생꺼든 교사꺼든.”
요지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변기는 더러워서 앉을 수 없고, 화장실은 안 갈 수 없으니 반드시 사전에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보통 교사들이 옮길 학교를 찾아본다 하면 사전에 알아보는 것은 이것이다.
첫째 연말에 떠나는 사람이 있느냐? 있으면 몇 사람이냐, 그 사람은 몇 년을 달고 내신을 쓰는 것이냐?(2년이나 3년을 달고 내신을 쓰면 발령이 안날 수도 있으므로) 둘째, 학생들 분위기가 어떠냐? 공부를 잘 하느냐, 안 하느냐? 말썽을 피우느냐 아니냐. 그 끝에 학부모님들은 분위기가 어떠냐 그리고 셋째, 관리자는 어떠냐?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것과 예산이 묻어나오는 각종 연구 시범을 적극적으로 하느냐? (물론 안 하는 관리자를 좋아한다. 아마도?) 교사들의 독립성을 얼마나 보장하느냐? 등등 따져야 할 것이 많은 상황에서 오 샘은 단 하나 화장실을 묻는 것이다.
자신의 책을 빌려줄 때에는 맹세를 시킨다. 손에 침을 바르고 책장을 넘기면 안 된다. 책을 구기면 안 된다. 어찌해서 빌렸다가도 조심스러워서 일찌감치 돌려줄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제 발도 더러워서 까치발로 화장실로 직행해서 발을 닦아야 하는 사람.
공사가 다망하게 까칠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며 지내는데도 시간이 약인지,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 투덜거림 외에 딱히 다른 단점이 없어서인지 해가 묵으면 그녀에게는 나름 공고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 학교를 떠나서도 그녀와 지속적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만담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끌끌끌, 반은 혀를 차며 반은 웃으며 듣는 나 같은 골수팬도 생기는 거다.
몇 년 만에 전화를 해도, 어쩌다 서점에서 만나도 데면데면 하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건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결벽증을 가진 이 여자,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끝단이 우수수 떨어진 니트를 버리지 못하는 이 여자, 학생들이 ‘웬수’ 같아서 싫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의 추임새에 마지 못해 넘어가 웃어주는 이 여자, 눈을 뱁새 눈처럼 하고 요렇게 째려보다가도
“내가 진짜, 사방팔방 나를 싫어하는 사람뿐이잖아. 나도 알아 다 내가 그런 거. 그런데 진짜 샘의 그 평안한 웃음, 응 그거 방금 웃은 그거. 그 웃음을 보면 나도 좀 살 것 같다니까.”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무한히 욕심을 부리는 여자
“응? 무슨 책 읽어? 이거 재미있어? 참, 이번 도서관에 000작가 책 들어왔던데 아무도 못 읽게 내가 빌려와야지.”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표준화된 인간 너머의 어떤 유형을 보는 것 같아서. 욕을 좀 먹어도, 성질이 좀 까탈스러워도, 사회성 좋지 않고 인물 좋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게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본다면 오 샘은 그러겠지.
“뭐라고? 내가 사회성 좋지 않은 건 인정하겠는데 인물이 좋지 않다고? 정말 샘 그렇게 안 봤는데, 어이없네.”
에필로그
실제로 이 글을 오 샘한테 보냈더니 답장은 내 예상과 달랐다.
[오00] [오후 3:43] 두번째 문장,, 진실이라면 몰랐어요~
[오00] [오후 3:43] 전 타고난 귀염둥이라고 생각했는뎅.
[오00] [오후 3:50] 근데 오00씨가 넘 이상해요~ㅋㅋ
[최00] [오후 3:52] 표준화된 인간 너머의 인간이니까 ^^
오 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오 샘의 말대로 어느 분기점을 지나면서 오 샘의 귀여움을 발견했던 것도 같다. 그 기점이 자주 대화를 나눴던 나는 좀 더 빨랐고 업무로만 잠깐잠깐 만나는 사람들은 그 판단이 늦어졌던 것도 같다. 인간 관계도 감정의 손익분기점(비호감이 -, 호감이 +)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오 샘은 관계의 감정의 손익분기점이 좀 긴 편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