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 조회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흥분해서 교무실로 들어왔다. 아이가 욕을 했다는 것이다.
“너, 뭐라고 했어?”
“혼잣말인데요.”
분명 자신을 향한 말이지만 학생이 혼잣말이었다고 하는데 뭐라고 우길 말이 없어 더 열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찌했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했냐고요? 저도 똑같이 욕해줬어요. 머리 빈 게 꼭 하는 짓도 저같이 한다고요. 아이들이 싸해지대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혼잣말이야! 라고요.”
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잘했다, 잘못했다 말할 틈 없이 저마다 욕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없다면 거짓말이다. 아이들은 정말 혼잣말로도 욕을 하고 교사 들으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제 일처럼 속이 뒤집어진다. 이럴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말할 수 없이 어렵다. 그러면서 더 침착해지는 습관, 더 내공을 가지려는 욕구가 생겨난다. 선생님들의 굳은 표정은 슬픔과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렇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와 같이 의연한 바위와 같이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단련해야 한다.
운전으로 인해 사고를 당한 사람이 그 사고로 인해 두려워서 운전을 못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 그저 잠시 사고를 당한 것처럼 그 느낌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를 급 우울하게 만드는 아이들, 우리를 잔잔하게 웃게 하는 아이들, 이러려고 교사가 되었지 보람을 주는 아이들, 그리고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왕싸가지들, 그들이 제자라는 이름으로 한꺼번에 묶여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지만, 분명 이 모두를 함께 끌고가야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숙명이다.
교통사고를 막으려면 방어 운전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종 그것만을 생각하면 여행의 기쁨은 누릴 수 없다. 사고 나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이 여행을 해야 한다. 선생, 먼저 태어난 사람. 조금 더 먼저 공부하고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가르쳐주는 사람.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조금 더 알지만 나머지는 마찬가지로 여리고 미숙한 사람.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거울처럼 비추기만 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