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바라는 부모님께
찬에 대한 사전정보는 이랬다. 복학생, 잦은 무단결석과 지각, 조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음. 1학년 때 문제아들과 싸움에 휘말린 적 있음. 개학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찬이 학교에 왔을 때 나의 최대 전략은 이것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기. 내가 어떤 교사인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너무 빡센 인상을 주면 아예 도망갈 것이므로. 너무 친절하게도 안 한다.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므로. 찬에 대한 나의 태도 두 번째!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기.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할 수도 있지, 그런 것은 혼날 거리도 아니라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고 마치 제 시간에 등교한 학생들 맞이하듯이
“응, 왔어? 우리 처음 본다. 그치? 인사는 해야겠기에 수업 시간이긴 하지만 살짝 불렀어. 괜찮아? 혹시, 들어가서 수업 들으면 좋겠어? 괜히 방과후에 상담하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 변명인 듯 배려인 듯 의견을 묻고 상담을 한다. 그게 찬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런 태도가 찬의 마음을 샀는지 원래 찬이 그런 아이였는데 소문이 잘못 돌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찬은 조금 내성적인 듯 말을 꺼내기 전에 몇 초씩 침묵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꺼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이미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선입견을 갖지 않고 부드럽게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 몇몇 아이들과 화장실에서 폭력 건에 얽혔다는 것도 실상은 이러했다.
“저는 담배를 안 피워요. 그런데 그냥 제가 좀 늦게 등교하고 수업시간에도 잠만 자니까 반에서 노는 애들, 저는 진짜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 싫거든요. 그런 애들이 저를 담배 피우는 애로 봤나봐요. 화장실에 갔는데 저보고 담배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없다고 하니까. 그럴 리가 없다면서요. 그러다가 시비가 붙은 거에요.”
어쩔 수 없이 시비에 붙는 거고 자신은 결코 센 사람이 아니라고. 상담을 통해 얻은 결론은 찬은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심성이 여린 부적응 학생에 가까웠다.
불량학생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리고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잘 해보자는 쪽으로 그날의 상담을 마무리지었다. 내내 안 나오던 것에 비하면 찬은 많이 좋아졌다. 심지어 아침 일찍 오는 날도 있었다.
“어떻게 일찍 왔어?”
“아, 밤에 안 자다가 아침에 잠이 들면 못 오는데요. 오늘은 잠 안 자고 그냥 왔어요. 졸려 죽겠어요.”
무단 지각이나 결석이 반복되면 어쩔 수 없이 선도처분이 되고 학부모님도 학교에 오셔야 하는데 그 일로 나는 찬의 어머님을 두 번, 그리고 아버님도 한 번 뵈었다. 두 분은 세상에 그럴 수가 없을 만큼 정중하고 좋은 분들처럼 보였다. 아버님은 중저음에 댄디한 패션의 옷을 입고 오셨고 아들 문제로 인한 교사의 불편을 못내 죄송해하며 자신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되었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교사랍시고 나름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찬은 사실 엄청 바른 아이인 것 같아요. 자신이 하는 것이 게으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너무 자신을 얽매고 있어서 오히려 더 힘에 부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적당히 껄렁껄렁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면 좋을 텐데요.”
그때 찬의 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는...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는데요.”
찬의 어머니도 차분한 말투와 중년 특유의 품격이 묻어나는 차림이 인상적인 분이었다. 찬이 그렇게 되었던 것은 자신과 남편이 미국 유학을 가면서 찬을 데려갔던 것이 화근이라고. 처음에는 잘 적응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입을 닫더라고. 그래서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귀국했는데 귀국해서도 사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사실, 자신은 상담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므로 내가 건네는 찬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지식이 적용되지 않는 아이라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 그러다가 문득 나는 문제의 고리를 발견했다.
“어느 날 새벽 두 시쯤인가 세 시쯤인가,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나는 거에요. 그래서 나가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잖아요. 그 애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로 서서 무엇인가를 와구와구 먹고 있는 거에요. 하루종일 잠만 자던 애가 남들 다 자는 새벽에 냉장고 문도 닫지 않고. 그 불빛에 먹고 있는 아이가... 아,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나는 말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뭐가 정상이 아니에요. 정상이죠. 하루 종일 자느라 밥을 못 먹었잖아요. 배가 고프죠. 밤이 되었지만 잠은 많이 잤으니 더 이상 졸립지 않고 배는 고프고, 가족들이 깰까 봐서 불은 못 켜고 냉장고를 열어 놓고 무엇인가를 먹는 게 정상 아닌가요?”
처음 그 애를 만났을 때 내가 능구렁이처럼 심드렁하게 그애를 대했을 때 그애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토록 바르고 멋진 부모님은 자신의 바른 교육관대로 자라지 못한 찬을 문제아로 보고 있었다. 사람은 지치면 자고 싶고, 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고, 힘들면 학교에 오기 싫은 거다. 정상인데 그것을 비정상이라고 이상한 한숨으로 안 그래도 힘든 아이를 더 힘들 게 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요.”
“저 그런 애 아니거든요.”
너무나 반듯하고 멋진 부모님 밑에서 찬은 정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멀고도 멀어서 주저앉았던 것은 아닐까?
찬은 어느날부터인가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상담을 할 때 아르바이트 이야기만으로도 나름 활기찬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대청소시간이었는데 반은 놀고 반은 청소하는 그 틈바구니에서 그 애가 쓰레기를 정리하는 품이 놀라웠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야무지게 앉아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쓰레기를 모두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보통 그 일은 내몫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도 하지 않고, 시키느라 진땀빼느니 마지막 뒷정리는 내가, 하고 끙, 봉투를 묶어서 자, 누구에게 이걸 갖다 버리라 하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 몫을 온전히 찬이가 했으니 나로서는 놀랍고 감동일 수밖에. 아마도 아르바이트하면서 손에 익은 것이겠지 했지만 그래도 나는 가슴 한켠이 뿌듯해졌다. 아르바이트에서 자기 몫을 확실히 할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와, 찬! 고마워!”
해가 바뀌고 나는 그 근처 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어느 날 찬에게 연락이 왔다.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다시 만난 찬은 이 학교에 여자친구가 다니고 있어서 여자친구도 보고 선생님도 뵙고 싶어서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쩐지... 하며 찬에게 핀잔주는 웃음을 건넸지만 그래도 나는 기뻤다. 우선 여자친구에게 찾아뵐 정도로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만큼 의욕이 있는 것도, 또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진 것도.
찬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나는 마음으로 안수기도했다.
‘그래, 그렇게 살면 돼. 일하고 사랑하고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