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 빌리지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나도 가해자입니다.
"여기 최00 선생님 계신가요?"
내가 어느 학교에 가든지 융이는 나를 찾아오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죠? 선생님과 제가 담임교사와 제자로 만난 게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그때 선생님 첫째아들이 다섯 살이었으니까 이제 선생님 아들은 스무살이 되었네요. 참, 세월이 빠르네요."
아무리 바빠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커피를 타서 융이와 학교 어디 조용한 곳에서 담소를 나눈다. 융이가 나를 만나면 하는 레파토리는 항상 이것이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아들이 몇 살이 되었는지를 계산한다. 그 계산이 정확하다.
융이는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이였지만 부모님이 굳이 장애 판정을 신청하지 않아서 일반 학생으로 분류된 학생이다.(이후 군입대 문제 등 중요한 기로에 서서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말을 할 때 문장은 잘 구사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주제들이 섞여 있었다. 수업 태도가 바르고 종종 손을 들어 발표도 했지만 엉뚱한 대답일 때가 많아 교사가 요령껏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해 주어야 했다.
융이를 만나면 나는 그해가 소환되기 때문에 그애가 돌아간 뒤에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그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그해 겨울에 나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사이에 태어났어야 할 아이를 잃었다. 계류유산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있어서 수능장을 한창 꾸려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수술을 하게 되어 애먼 부담임 교사가 그 일을 하는 바람에 나는 몸도 아팠지만 몹시 민폐를 끼친 교사가 되었다.) 그래도 나를 만나러 김포에서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온 융이를 푸대접할 수는 없다.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부모님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꼭 묻는 말이 있다.
"직장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없니?"
"네! 없어요."
이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이렇게라도 융이의 안전장치가 되고 싶다. 그해 융이는 몹시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해 아이들이 별났다. 교실에 화분을 가져다 놓으면 화초를 칼로 갈기갈기 찢어놓는 애가 있었고, 교실 전등 스위치 밑에 조그맣게 ‘담임년’이라고 쓴 아이도 있었다. 가슴이 서늘했으나 누가 그랬는지 추적하기엔 너무 할일이 많았고 지쳐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툭하면 융이를 괴롭혔다. 점심시간에 자기 먹고 남은 밥을 퍼서 융이 식판에 얹어놓기도 해서 점심 먹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그렇게 하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융이를 괴롭힌 사건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했다. 어떤 날은 대여섯이 모여서 융이를 가운데 놓고 춤을 춰보라고 한다. 여자아이가 주동이 되어 꾀듯 하면 그 안에서 융이가 춤을 춘다. 그걸 보면서 낄낄낄 웃다가 내가 쳐다보면 슬금슬금 흩어진다.
"네가 나한테 이거 안 빌려주면 000 음악 선생님이 너 싫어한다."
융이가 지난해 좋아했던 음악 선생님을 들먹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빼앗기도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야. 졌다고 억울해하거나 선생님한테 이르기 없기다."
가위 바위 보에 미숙한 융이를 이용하여 팔뚝을 물어뜯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 사실은 어머니가 나중에야 울면서 이야기해서 알았다. 나는 몰랐다. 융이가 팔뚝이 시퍼렇게 되어 그 멍이 다 사라질 때까지도 융이는 내게 말하지 않았다. 약속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긴 우직한 아이였다.
반복되는 학폭과 처벌, 끝없는 잔소리에 지쳤을까? 어떤 학생의 글 속에 이런 것도 있었다.
- 선생님께서도 융이에게 복도를 닦게 시키셨잖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융이는 정말 우직해서 복도 닦는 것을 부탁하면 정말이지 반짝 반짝 빛이 나게 닦았다. 나는 그것이 기특하여 어쩌다 복도가 지저분하면 융이에게 복도 청소를 부탁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애 보기에는 다른 애들이 심부름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은 잔심부름이 필요할 때 융이를 부려먹었던 것이다.
끔찍하게 가슴 아픈 영화가 있다. <도그빌>이라고. 영화인데도 연극 작품을 촬영해 놓은 듯한 기법을 사용한 그 영화는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어떤 사연 있는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말못할 사연이 있어 이 마을에 숨어 있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흔쾌히 허락한다.
"대신 우리 마을을 위해 일해주는 게 어때?"
여자는 그러겠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집에 가서 보모 역할을, 노인이 있는 집에 가서 간병인 역할을, 과수원이 있는 집에 가서는 과일을 따주었다. 그러다가 그 요구 정도가 더 심각해져서 착취 수준에 이르고 심지어 성착취까지 일어난다. 여자가 마을을 떠나고자 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 누구도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악당의 잔인함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기서 반전, 영화의 마지막에 여자의 정체가 나온다. 여자는 영화 내내 상상케했던 중차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마피아 보스의 철없는 딸로 아버지 품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사랑스런 딸을 찾아냈을 때 딸은 기꺼이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그리고 그 마을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눈에 보이는 폭력, 욕하고 때리고,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 것. 교묘한 폭력, 융이를 꼬드겨 약속하게 해서 폭력인 것은 알지만 신고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것이 폭력인지 모르고 하는 도그빌리지 폭력(도그빌이 도그빌리지로 읽히는 건 나만 그런건가?)....
융이는 아직도 이야기한다.
"그때 연중이가 저한테 욕을 했던 것은 잘못된 거죠? 그런 일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응. 융아, 당연히 그래. 나에게라도 얘기해주렴. 그리고 그것 말고도 너의 선량함을 이용해서 너에게 심부름이나 걸레질을 더 시킨 사람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
"재미있어요. 팝콘도 튀기고, 그리고 영화관 자리도 정리해요. 바쁠 때는요."
일 년에 두 번만 찾아오라고, 내가 수업에라도 들어가면 못 만나게 되니까 오기 전에 전화를 주고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해도 불쑥 어느 날 생각이 나면 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융이.
그때 나의 미숙함에 대한 참회로 그때 했어야 했던 질문을 또 한다.
"융이가 벌써 서른이 넘었다니 세월 참 빠르네. 운동도 열심히 하니까 점점 멋져지네.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힘든 일 시키는 사람 있으면 선생님께 얘기해.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