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맡도록 기다리다

by 향기로울형

어쩌다 돌린 TV 채널에서 동물훈련사 강형욱 씨가 문제 동물의 집에 방문할 때 한 행동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는 전문가로서의 위세를 자랑하듯 씩씩하게 들어가서 한방에 개들을 휘어잡았던가? 아니다. 그는 마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냄새를 맡도록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개들이 적응이 되었을 때 천천히 한 발씩 들어갔다. 낯선 사람이 올 때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던 개들이 짖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긴장하고, 작은 행동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적인 감각은 사람에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려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같은 서울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는데 그때마다 학교도 옮겨야 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동네 아이들과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무난하게 적응했다. 그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의 패턴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인내가 필요했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나로서는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이사 온 다음 날,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논다. 그럼 나는 그 근처에서 서 있는다. 아이들은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논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이 더 필요한 순간이 온다. 예를 들면 짝이 맞아야 하는 놀이에서 한 명 더 필요하다든지, 아니면 같이 놀던 친구들이 가버린다든지.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내게 다가온다.

"같이 놀래?"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중요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쁜 마음을 티내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래"

그날부터 우리는 친구가 된다.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내게는 적정 기술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의 태도에 조금 불쌍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강형욱 씨 하는 행동을 보니 꼬맹이였던 그때의 내가 기특해졌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올 때 움찔, 하는 면이 있다. 너무나 씩씩하게 "반가워"하며 악수라도 청하면 내 마음은 슬쩍 한 발을 빼게 된다.

옷을 파는 매장에서 점원이 내가 만지는 옷마다 코멘트를 하면 그것이 친절이라고 해도 나는 매장을 떠난다. 나에게 최고의 점원은 근처에서 조용히 먼산 보듯 서 있는 사람이다. 그 직원은 내 질문에만 대답하고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탐색할 수 있을 때 옷을 산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도 해맑게 웃고, 씩씩하게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에게 탐색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지 않고 서서히 서로의 말과 표정, 행동을 보고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도 알았던 그것을 어른이 된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반성해 본다. 아마도 그 근간에는 오만함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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