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좁쌀만 한 것이 붙었는지 불편하다. 기르는 새가 흘린 모이인가, 아니면 밥주걱에서 떨어진 밥풀떼기 마른 것인가, 생각하며 쓱 다른 발 바짓단에 문지르고 바삐 움직인다.
'청소를 해야 해.'
서랍을 열어도, 김치냉장고를 열어도, 냉장고를 열어도 늘 같은 느낌이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느낌, 하나를 찾으려면 풀숲을 헤치듯이 뒤적뒤적하다 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오랜만에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나도 청소를 한다. 로봇청소기는 소파나 침대 밑까지 들어가서 청소하는 기특함이 있지만 닿지 않는 부분은 내가 도와야 한다. 발동이 걸리고 보니 내친김에 걸레질도 하자. 그렇게 청소를 깨끗하게 했는데...
이상하다. 다음날 아침, 바닥에 굴러다니는 좁쌀을 또 밟았다.
'아, 뭐야.'
노랑이(우리 집 앵무새 이름)를 한번 째려보고는 쓱 바짓단에 한번 더 문지른다. 바짓단에 허옇게 먼지가 묻었을 것을 생각을 하니 더럽다.
"제발 모이를 파헤치면서 먹지 말라고! 그냥 예쁘게 먹으면 안 돼? 자기 마시는 물통에 똥이나 싸는 녀석아!"
노랑이도 나를 이쪽 눈으로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려 저쪽 눈으로 한 번 보고 짹, 하고 개긴다.
어쩜 이렇게 내 인생을 닮았느냐, 청소해도 청소해도 지저분해지는 이 상황이.
"아, 진짜!"
바닥에 주저앉아서 발바닥을 보았다. 며칠째 반복되는 그 불편감에 도대체 뭐가 붙었는지 한 번 봐야겠다. 밥풀떼기이면 내가 유죄, 좁쌀이면 노랑이가 유죄. 노랑이 네가 유죄면 가만두지 않겠어!
놀랍게도 나도 노랑이도 유죄가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 발바닥에 생긴 티눈이었다. 티눈이 걸을 때마다 꼭 좁쌀을 밟은 것처럼 콕, 콕, 콕, 콕 찔렀던 것이다.
어쩜 이렇게 인생을 닮았느냐.
내가 느끼는 불편감이 다른 사람 때문일 거라고 탓하고, 원망하고, 섭섭해했던 것이 얼마던가.
내 안에 티눈이 콕 박혀서 그런 줄도 모르고. 발바닥에 아니, 마음에.